저소득층ㆍ맞벌이 아이 돌보는 여성들 잇단 체불 사건서 인정 못 받아… "지휘ㆍ감독 없어 근로자 아니다"
노동계 "아이돌보미 조직화 우려한 공안당국 판단에 정부 입장 바뀌어"
정부가 민간에 위탁해 저소득층이나 맞벌이가정의 아이를 돌봐주는‘아이돌보미’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기존 입장을 뒤집고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일ㆍ가정 양립과 경력단절여성의 재취업을 도와주기 위해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 놓고서도 노동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꼼수’를 부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30일 공공비정규직노동조합에 따르면 광주고용노동청은 지난 1월 아이돌보미 박모(52)씨가 여성가족부 아이돌보미 위탁사업자인 광주서구 건강가정지원센터를 상대로 지난해 1월부터 1년치 수당(연장ㆍ휴일근로ㆍ주휴수당) 595만7,000원을 지급하라는 임금체불 진정사건에 대해 “박씨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이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20일 통보했다. 광주고용청은“박씨가 센터와 근로계약서를 체결하는 등 형식적으로 일부 근로자성이 해당된다”면서도 “센터가 지휘ㆍ감독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워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판단 근거를 밝혔다. 대구고용청 역시 지난달 말 대구의 다른 아이돌보미 2명 낸 수당 등 임금체불 진정사건에 대해 “근로자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통보했다.
아이돌보미 사업은 만 12세 미만 아동을 둔 저소득층 및 맞벌이 가정에 아이돌보미를 파견하는 제도로 비용 일부를 국고 지원한다. 여성가족부가 2007년부터 시행해왔으며 올해는 전국 4만8,500 가구를 지원할 예정이다. 여성부는 ‘지침’으로 시급 6,000원과 경력자들을 위한 활동지원금(월 10만원)만 급여로 책정해 놓고 있다. 이에 전국 1만7,000여 명의 아이돌보미는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연차ㆍ연장ㆍ주휴 수당 등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결정이 고용부의 기존 입장과 배치된다는 점이다. 고용부는 2013년 아이돌보미 근로자성에 대한 여성부의 질의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부인하기 어렵다”라고 행정해석을 내렸다. 이에 따라 여성부는 4대 보험과 퇴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서울 고용노동청도 아이돌보미 2명의 주휴수당 체불사건에서 “체불이 맞다”고 판단,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같은 달 노동문제 준사법기관인 전남지방노동위원회도 광주서구 건강가정지원센터의 부당노동행위 사건에서 아이돌보미는 근로자가 맞다고 결정했다.
공공비정규직 노조는, 예산이 늘 것을 우려한 정부부처와 아이돌보미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조직화할 것을 우려한 공안당국의 판단 때문에 고용부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보고 있다. 진정 사건은 검찰의 지휘 없이 고용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이 처리하는 게 관례지만, 광주와 대구 아이돌보미 진정 건은 지방검찰청이 직접 수사를 지휘해 7 개월이나 시간을 끌다 이처럼 결정했다. 대검찰청 공안부가 두 사건을 직접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 측도 사실상 이를 시인했다. 고용부 근로개선정책과 관계자는 “기소권이 검찰에 있기 때문에 고용청은 검찰의 수사 지휘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이번 결정으로 기존 고용부 행정해석은 무력화됐다”고 말했다.
아이돌보미가 근로자가 아니라면 4대 보험과 퇴직금 지급도 불투명해진다. 김가로 여성부 가족지원과장은 “4대 보험과 퇴직금은 앞으로 계속 주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부는 아이돌보미를 근로자로 인정하는 데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고용부 관계자는 “처음부터 아이돌보미를 근로자로 보고 이에 맞게 수당 등 예산을 편성해 사업을 추진했어야 했지만, 이 사업은 급조돼 그런 부분이 반영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민철 광주ㆍ전남 노동상담소 노무사는 “아이돌보미 이용 가정은 정부가 이들을 선발, 교육해서 연계해준다는 점을 믿고 아이를 맡긴다”며 “그런데 이들이 근로자가 아니라고 하면 정부의 관리ㆍ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져 부모들의 불안이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