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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누가 난민 위기를 불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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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누가 난민 위기를 불렀나

입력
2015.10.0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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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장애물을 헤치고 나아가는 난민들의 절박한 모습은 참혹하다. 급히 설치된 철조망, 성질 고약한 국경수비대, 잔뜩 화난 현지인들과 맞서야 하는 난민들의 모습은 유럽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상황은 이웃 중동이 ‘완전하고 자유롭고 평화롭지’ 못하다면 유럽도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냉혹하게 상기시켜준다. 그렇다고 해서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들을 비난하는 것이 전적으로 온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난민은 생기기 마련이다. 대학살을 피해 도망가는 민간인이 없는 전쟁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쟁을 일으키는 건 무엇인가. 어떤 전쟁은 정권 교체에 대한 요구 때문에 일어난다. 정부를 무너뜨리려 하면 결국 정권은 잔인해진다. 또 전쟁을 치르지 않고서는 물러나려 하지 않는다.

이 같은 불변의 과정이 시리아처럼 명백한 곳도 없다. 소수인 알라위파에 기반을 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수년간 잔인한 독재정치를 지휘했다. 그는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조금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종파적이지 않은 정부를 구성하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정부 조직의 어떤 자리도 내주지 않았다.

사실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아버지이자 전임 대통령인 하페즈 알아사드가 1971년 대통령직에 오른 뒤 시작한 정권의 연속이다. 하페즈의 통치 방식은 아들보다 훨씬 잔인했다. 1982년 시리아 무슬림형제단 봉기 진압을 위한 하마 포위 작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를 증명한다. 하페즈는 무자비한 독재정치에 맞선 이슬람 저항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수십 년간 힘을 쏟았다. 하페즈는 비종교 바스당(범아랍주의)의 이데올로기로 다양한 시리아 공동체 사이의 구분, 특히 수니파와 하페즈가 속한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 사이의 구분을 흐리려고 애썼다.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분열은 1,300년간 이어져 왔는데 수백 년 간 이런 분열은 대체로 감춰졌거나 소강 상태였다. 2003년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이 바스당의 다른 독재자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무너뜨렸을 때, 수니파-시아파 사이의 분열에 새롭고 치명적인 변화가 생겼다. 사담 후세인 정부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이라크의 소수 수니파가 다수 시아파에게 권력을 뺏긴 것이다. 시아파가 엄격한 종파주의적 통치를 시행하자 정부에 대한 폭력적인 저항운동이 불타 올랐다. 많은 이들이 소수 수니파의 통치를 감추는 방편으로 여겼던 후세인의 바스당을 무너뜨린 뒤에도 시아파 지도자들은 충격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이라크 전역에서 볼 수 있었다.

중동에서는 다른 나라를 탓하며 비난하는 일이 언제나 많다. 미국이 중동에 새로운 종파주의를 만들어낸 걸 비난하는 이들은 이전부터 있었던 종파주의와 그것의 주기적인 속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미국은 여전히 시리아의 비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1년 7월 미국과 프랑스는 하마에 자국의 대사를 보냈다. 엄청난 유혈사태가 있었고 시리아 정부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한 지역이었다. 그들을 보낸 건 정부에 반대하는 이들, 그러니까 당시만 해도 평화로웠던 무슬림형제단에게 아사드 정권에 대항해 연합하라고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시리아 정권 교체를 위한 노력이 극에 달했던 그 방문 이후 아사드 대통령(싫든 좋든 그의 가족은 수십 년간 시리아를 통치했다)과 대화나 협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두 국가의 대사는 이후 다마스쿠스에서 누구와도 만날 수 없었다.

프랑스와 미국 지도자들은 아랍의 봄 이후 시리아에 드리운 전쟁의 기운을 잘못 짚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드디어 시리아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초기 신호로 본 것이다. 반대파들을 결집시키고 정부를 타도하면 나라 전체의 통치 시스템과 통치에 접근하는 방식을 변혁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믿었다.

프로이센의 군사이론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심각한 결말에 이르는 심각한 방법(a serious means to a serious end)이라고 했다. 오늘날 시리아의 파괴적인 상태와 수백만 국민들이 요르단, 레바논, 터키, 서유럽으로 피난 가는 것이 증명하듯이, 그것은 정권 교체 정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분명 시리아가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은 아사드 정권에게 물어야 한다. 하지만 2011년 의미 있는 정치적 절차가 없었던 상황에서 정권 교체를 바라던 외부의 요구는 아사드 정부와 극단주의 수니파 테러리스트 조직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되고 말았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말한다 해도 생각이 부족한 행동이었다. 좀더 심사숙고했더라면, 아사드와 그의 동료들은 시리아 정권 교체 요구에 귀 기울여 자리를 내줄 듯한 어떤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수십만 시리아 난민들은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해 어떤 위험도 감수하고 있다. 4년 전 정권 교체를 지지했던 이들은 헝가리나 세르비아 같은 나라 비판에 동참할 게 아니라(이런 나라들은 내부 문제에 시달리는데다 시리아 전쟁을 조장한 적도 없다) 자신들의 선택을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들은 난민을 돕는 데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시리아의 끔찍한 내전을 끝내는 데 도움될 포괄적인 정치적 구조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전 차관보ㆍ덴버대 코벨국제대 학장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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