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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영어가 당락 좌우’ 이공계 전문연구요원 선발제도, 확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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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영어가 당락 좌우’ 이공계 전문연구요원 선발제도, 확 바뀐다

입력
2018.06.21 13:55
수정
2018.06.2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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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대학원생들 사이에 원성이 높았던 전문연구요원(전문연) 선발 과정이 대대적으로 바뀐다.

20일 교육부에 따르면 정부는 국가 과학기술 발전과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이공계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전문연 선발제도를 내년 상반기부터 대폭 개선한다. 윤소영 교육부 학술진흥과장은 “지금처럼 전공과 무관한 영어 점수가 당락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각 전공 분야별 연구계획으로 연구원을 선발하도록 제도 개선안을 준비 중”이라며 “내년 상반기 안에 새로운 개선안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문연구요원은 매년 전기, 후기 두 번에 걸쳐 이공계 석사학위 이상 취득자를 대상으로 선발하는 병역 특례 제도다. 요원으로 선발되면 군 복무 대신 병무청이 선정한 기관에서 3년간 연구개발을 한다.

그러나 선발 과정에 문제가 많아서 이공계 대학생들 사이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석사과정 학점과 민간자격 국가공인 영어능력검정시험인 텝스(TEPS) 점수를 절반씩 반영해 뽑는 점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텝스 점수의 합격선이 날로 올라가다 보니 공대생들 사이에 전공보다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고려대학 이공계 석사과정 수료생인 박우용(가명ㆍ26)씨는 “대학원생들의 학점은 편차가 크지 않아 점수 폭이 넓은 영어가 요원 선발의 당락을 좌우한다”며 “정작 전공보다 영어 공부에만 매달리게 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호소했다.

이 때문에 전문연 시험 통과가 어려워지면서 병역이 해결되지 않아 박사 과정을 포기하고 진로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공계 인재 양성을 위한 제도가 거꾸로 이공계 인재들의 진로를 바꾸게 만드는 셈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텝스 점수

연구요원 선발을 맡은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2015년 전기 수도권 합격자들의 평균 텝스 점수는 990점 만점에 750.34점이다. 그러나 2017년 후기 수도권 합격자 평균 텝스 점수는 849.5점으로 약 100점이나 뛰었다. 이 점수를 인터넷에 공개된 텝스-토익 환산표에 따라 토익(TOEIC) 점수로 환산하면 940점 이상이다.

전문연 선발과정에서 텝스 점수가 치솟은 까닭은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2011년 이전까지 전문연은 서울대 공대 박사과정이 3년 연속 정원을 채우지 못할 만큼 이공계의 인기가 없다보니 경쟁이 덜했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취업난 속에 이공계 선호 현상이 증가하면서 대학원 진학자가 늘어 전문연 경쟁률은 한국연구재단 집계 결과 2012년 1.61 대 1에서 2015년 4.38 대 1로 상승했다.

전문연구요원의 분야 및 권역별 합격자 평균 점수. 한국연구재단 제공
전문연구요원의 분야 및 권역별 합격자 평균 점수. 한국연구재단 제공

덩달아 텝스 점수 합격선도 매년 상승했다. 수도권 대학원생들의 전문연 텝스 합격 안정권 점수인 849.5점은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 지원 기준인 텝스 점수(600)점보다 약 250점 더 높다.

이에 따른 과도한 영어 공부가 오히려 전공 연구를 가로막고 있다. 서울대학 공대 석ㆍ박사 통합과정 6년 차인 이상훈(27)씨는 전문연 선발 시험에서 세 번이나 고배를 마시고 박사 수료를 한 학기 미룬 뒤 네 번째 시험에 겨우 합격했다. 이씨는 “너무 힘들어서 지도 교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모든 학업과 연구를 중단한 채 3개월 간 하루 종일 영어만 공부했다”고 말했다. 고려대 공대 박사과정인 박규호(가명ㆍ27)씨도 "휴학을 하고 반년 간 영어 공부에만 매달려 간신히 전문연에 합격했다”며 “하지만 복학 후 연구실 업무와 학업에 다시 적응하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인재 양성 가로막는 선발 제도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대학원 입시 기준을 초과하는 것도 모자라 영어 점수로 공학 연구 인력을 선발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서울대 공대 박사과정중인 최민우(26)씨는 "연구와 큰 상관이 없는 영어 때문에 학생들이 연구에 전념하지 못하고 심지어 진로까지 바꾸는 상황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에서도 이를 문제로 보고 있다. 그래서 서울대는 지난 1월 전문연구요원 제도에 관한 기획 연구 보고서를 냈다. 곽승엽 재료공학부 교수가 진행한 '전문연구요원 제도 운영 및 선발의 현황과 성과 분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서울대ㆍ카이스트(KAIST)ㆍ포스텍(POSTECH) 소속 이공계 대학원생 1,565명과 교수 8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내용이 들어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텝스 점수를 통해 전문연을 선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56.9%(‘매우 부적절’ 31.9%, ‘부적절’ 25%)였다.

전문연구요원 선발 방식에 대한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인식. 서울대학교 제공
전문연구요원 선발 방식에 대한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인식. 서울대학교 제공
전문연구요원 편입 준비자가 현재 하고 있는 활동(중복 포함). 서울대학교 제공
전문연구요원 편입 준비자가 현재 하고 있는 활동(중복 포함). 서울대학교 제공

따라서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선발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대 자연과학대 박사과정인 김재운(28)씨는 "전문연 선발에 합격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연구 성과가 올라가는 평가 방법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공대 석ㆍ박사 통합과정인 이상훈씨는 "영어 점수보다 학회 발표나 학술지 투고 경력 등을 참고해서 이공계 발전을 위해 더 많이 연구하고 노력한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좋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대학들은 국가고시제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4월 23일 서울대학 공대학장, 자연과학대학장, 농업생명과학대학장,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공과대학장들이 서울대에 모여 전문연구요원 문제에 대해 논의했는데, 이 자리에서 전문연구요원을 국가 고시 제도로 선발해 국방 연구 개발에 관여할 수 있게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서울대 공대 학생부학장인 신상준 교수는 "큰 틀에서 생각은 비슷한데 학교들마다 처한 입장이나 상황은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서울대학교는 전문연구요원 제도 개선안에 대한 준비를 마치면 정부 관계부처와 논의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 개선안 마련… 영어점수 폐지는 안될 듯

정부도 전문연 선발 제도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선발 과정에서 연구계획을 평가하고 면접 평가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개선안을 마련했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이공계의 학문 분야 별로 대학원생들의 연구계획을 평가할 교수들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할 계획이다. 윤소영 교육부 학술진흥과장은 "학문 분야별 전문가들이 대학원생들의 연구계획을 평가하면 예산이 꽤 들 것"이라며 "내년부터 예산을 확보해 시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문연구요원 선발 기준 개선은 병역법, 병역법시행령 및 병역법시행규칙의 개정 없이 부처 내부에서 개선할 수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개선안은 국방부 등 관계부처와 별도 협의를 거치지 않아도 병무청에 통지하면 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에서는 완전한 영어점수 폐지를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역량 평가 위주로 선발 과정이 바뀌지만 이공계 연구를 하려면 기본적인 영어능력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윤과장은 "개선안에서는 공인영어시험에서 일정 점수를 받으면 모두 통과시키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지만 합격 기준점을 아직 정하지 못했다"며 "적정 기준 점수를 찾기 위해 고심 중"이라고 밝혔다.

황수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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