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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윤성효가 단 3명뿐인 영구결번에 이름을 올린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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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윤성효가 단 3명뿐인 영구결번에 이름을 올린 사연

입력
2017.07.1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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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번을 달고 드리블하는 현역시절의 김주성. 한국일보 자료사진
16번을 달고 드리블하는 현역시절의 김주성. 한국일보 자료사진
수원 삼성 시절 윤성효. 한국일보 자료사진
수원 삼성 시절 윤성효. 한국일보 자료사진

프로스포츠에서 영구결번은 은퇴 선수들에게는 빛나는 ‘훈장’이다. 선수시절 기량이 좋았다고 해서, 또 스타였다고 누구나 영구결번 대상자가 되지 않기에 그 가치는 더욱 크다.

최근 프로야구 LG 이병규(43)가 은퇴하며 구단이 그의 등 번호 9번을 영구결번 했다. 우승을 한 번도 못한 ‘무관’ 선수의 영구결번이라 더욱 화제를 모았다. 이병규는 프로야구 통산 13호 영구결번 선수다. 이에 비해 프로축구는 영구결번이 희귀한 편이다. 1983년 출범 후 34년 동안 수많은 스타가 배출됐지만 16번 김주성(51), 38번 윤성효(55), 18번 김은중(38) 등 3명이다. 등 번호 21번을 21년 간 비워놓기로 한 ‘한시적 영구결별’인 최은성(46)을 합쳐도 4명뿐이다.

프로축구 1호 영구결번의 주인공은 ‘아시아의 삼손’ 김주성이다. 1987~99년까지 부산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다. 프로축구 최초로 은퇴경기를 소화한 이도 김주성이다. 이에 반해 윤성효는 김주성처럼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포항(1987~93), 부산(1994~95), 수원(1996~2000)을 거쳤는데 가장 오래 뛴 포항이 아닌 수원이 그의 등 번호를 영구결번 한 사실이 흥미롭다. 구단은 윤성효의 ‘헌신’과 ‘희생’정신을 높이 샀다. 당시 수원은 창단 팀이라 서로 다른 팀에서 온 스타가 즐비했지만 기강은 약한 편이었다. 윤성효가 규율반장이었다. 매일 밤 선수들 방 앞을 딱 지키고 서, 딴 짓을 못하게 했다고 해서 별명이 ‘방범’ ‘룸 타이거’였다.

대전 시티즌 시절 득점 후 환호하는 김은중.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전 시티즌 시절 득점 후 환호하는 김은중. 한국일보 자료사진.
상대 돌파를 저지하려는 대전 시절 수문장 최은성. 연합뉴스
상대 돌파를 저지하려는 대전 시절 수문장 최은성. 연합뉴스

김은중은 중학교 때 날아오는 공에 맞아 왼쪽 눈을 실명하고도 피나는 노력으로 최고 선수가 됐다. 프로통산 444경기 중 대전에서 184경기를 소화했다. 프로 데뷔 골, 마지막 골도 모두 대전에서 터트렸다.

1997년 대전의 창단 멤버로 처음 프로무대를 밟은 골키퍼 최은성은 2011년까지 대전 골문을 지키며 464경기에 출전한 ‘소나무’ 같은 수문장이었다. 대전은 최은성이 2009년 프로 통산 402경기에 출전해 신태용(47) 국가대표 감독이 보유하던 단일팀 최다 출전 기록을 새로 썼을 때, 향후 21년 간 그의 등 번호 21번을 한시적 영구결번하기로 했다.

소리 소문 없이 영구결번이 철회된 사례도 있다. 부산은 2002년 한ㆍ일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소속 선수 송종국(38)의 등 번호 24번을 영구결번하기로 했다. 당시 송종국은 부산에 입단해 두 시즌을 채 소화하지 않은 신예여서 논란이 빚어졌고, 결국 ‘조용히’ 취소하는 촌극을 빚었다.

야구에 비해 축구의 영구결번 선수가 적은 이유가 있다. 축구의 경우 에이스는 10번, 가장 빠른 선수는 11번 등 번호가 포지션을 대표하거나 특별한 상징성을 지닌다. 이를 영구결번으로 묶으면 후배들의 선택 폭이 너무 좁아진다. 국가대표 영구결번은 더 어렵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국가대표 등 번호로 1~23번만 사용하도록 허가한다. 1번은 반드시 골키퍼다.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디에고 마라도나(57)를 기념하기 위해 1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한 뒤 2002년 한ㆍ일 월드컵 엔트리에 10번을 제외하고 명단을 제출했지만 FIFA로부터 거부당했다.

이 때문에 축구단들은 영구결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팀에 기여한 선수를 기린다.

수원은 2003년 입단해 줄곧 한 팀에서 뛰다가 지난 3월 유니폼을 벗은 곽희주의 등 번호 29번을 영구결번하려 했지만 선수가 정중히 거절했다. 수원 관계자는 “29번을 달고 자기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후배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게 곽희주 바람이었다”며 “연간회원권에 곽희주의 얼굴을 새겨 그를 예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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