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51) 경기도지사가 “내년에 치러질 차기 대선이 ‘국가의 대토론장’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10일 여의도에 있는 경기도 서울사무소에서 한국일보ㆍ김호기 연세대 교수를 만나 나눈 ‘2017 도전하는 리더들, 시대정신을 말하다’ 대담에서다. 자신의 대선 도전 여부와 관련해선 “현재 고민 중이며 내년 초 결정할 것”이라고 확답을 피하면서도 “대선에서 권력구조, 경제체제 등 국가적 어젠다를 두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도록 (주자로든, 킹 메이커로든) 역할은 반드시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남 지사는 기존에 정치권에서 언급돼온 대기업 규제 중심의 경제민주화를 두고는 “반쪽자리”라며 “시장에서 실력이 아닌 인프라 때문에 생기는 부당한 불공정 요소를 정부가 해결해줘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경기도에서 펴고 있는 ‘공유적 시장경제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 9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에게는 “영남당, 부자당, 금수저당 같은 새누리당에 쏟아졌던 비판을 일거에 깰 수 있는 스토리를 가졌다”며 “2022년 대선에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국민을 보는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덕담했다. 이 대표에게 덧씌워진 ‘친박’이라는 테두리를 스스로 깨는 긴 호흡의 정치를 하라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남 지사는 자신이 정치를 하는 이유에 대해선 “명백히 국민 개인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며 “대한민국을 리빌딩(rebuilding)해 국민 행복 시스템을 만든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밝혔다.
다음은 남 지사와의 일문일답.
-국회의원에서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변신해 시도한 경기도의 거버넌스(협치), 즉 연정에 대해 관심이 높다. 추진한 배경이 뭔가.
“권력은 나누면 커진다는 명확한 소신이 있다. 권력은 집중되면 썩는다. 권력은 나누면 감시 받고 감시 받을수록 커지고 맑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합의로 ‘연합정부’를 꾸려 야당이 참여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저출산, 청년실업, 양극화, 노후 불안, 자영업 몰락 등은 도지사 4년, 대통령 5년으로 해결 될 문제가 아닌 중장기 과제다.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하든 20~30년 동안 지속 가능하게 정치적 합의를 하고, 실천되게 하는 게 연정이라는 거버넌스의 힘이다.”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서 야당과 ‘연정합의서’를 썼다. 저와 김진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공약 중 공통 사안 20개 항목을 뽑았다. 합의서에 따라 야당의 부지사를 추천 받았다. 인사추천권과 예산권도 야당에 할애해 도정을 운영해왔다. 여야 도의원 중 지도급 도의원들을 ‘지방장관’ 형식으로 추천 받아 도정에 참여하게 하는 내각제적 운영도 해보려고 한다. 지금 2기 연정합의서를 쓰고 있다.”
“먹고 사는 데엔 보수ㆍ진보 따로 없더라”
-시대정신이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가치의 집약일 텐데, 남 지사가 생각하는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명백하게 개인의 행복이다. 개인의 행복 이상 가는 가치는 없다. 개인이 행복하면 사회와 국가가 건강해진다. 개인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게 제가 꿈꾸는 정치다. 그러기 위해선 자유와 배려라는 두 가치가 잘 조화를 이뤄야 하고 안정적인 정치구조와 경제 시스템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행복을 말했다. ‘개인’의 행복을 강조한 게 인상적인데.
“국가주의보다 개인의 행복을 크게 해주는 게 목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데서 가치 충돌이 많이 일어난다. 시대적으로 봐도 대한민국이 역사적으로 성장해오다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에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양극화와 사회 불공정성이 커지면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지수가 점점 떨어졌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 리빌딩(rebuilding)이 필요하다.”
-‘정치인 남경필’은 ‘개혁 보수’를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 지사에게 보수란 그리고 개혁이란 무엇인가.
“언젠가부터 ‘개혁보수’란 표현을 잘 안 쓴다. 진영 논리에 갇힌 개념이라고 생각해서다. 앞서 말한 개인의 행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정책을 펴는 데는 진보적 가치든, 보수적 가치든 중요하지 않다. 굳이 나누자면 보수적 기반에서 해야 할 거다. 그런데 국회에 있을 때는 진보냐 보수냐가 굉장히 중요했는데 도정을 해보니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더라.”
-새누리당이 8ㆍ9 전당대회에서 이정현 대표를 새 대표로 선출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보나.
“전당대회 현장에서 이정현 당시 후보의 연설을 들었다. 나는 친박도 아닌데 찡하더라. 다른 이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이 대표는 영남당, 부자당, 금수저당 같은 새누리당에 쏟아졌던 비판을 일거에 깰 수 있는 스토리를 가졌다. 그게 대의원들의 마음을 많이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최고위원 5명 중 4명이 친박계 후보가 당선되는 걸 보고 우리 당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당청이 협력해야 한다고 판단했구나 싶었다.”
-이 대표와 새 지도부에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자신의 강점을 활용해 완전히 다른 리더십을 보여달라. 또 비서가 아닌 여당의 대표로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 재정립도 필요하다. ‘2022년에 대통령에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국민을 보는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협치라는 시대적 요구를 이 대표가 맡은 새누리당이 잘 실현해주기를 바란다.”
“부당한 불평등 없애야 완전한 경제민주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저성장과 불평등의 덫에 빠져 있다. 해법은 무엇인가.
“경기도에서 내놓은 대안이 ‘공유적 시장경제 모델’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게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공정하게 게임을 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여기 감자스낵이 두 개 있다고 생각해보자. 하나는 중소기업에서 만든 2,800원짜리, 다른 하나는 세계 최대 기업에서 만든 3,300원짜리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500원을 더 내고 3,300원짜리를 선택한다. 그런데 중소기업 제품의 가격에는 마트 입점료, 카드 수수료, 물류 비용, 마케팅 비용이 모두 포함돼있다. 이 한계비용을 제로에 가깝도록 정부가 뒷받침해주면 가격은 1,000원으로 내려갈 수 있고 세계 최대 기업 제품과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실제 경기도에서 ‘경기도주식회사’를 만들어 공유적 시장경제 모델을 전면 시행하려고 한다.”
-제레미 리프킨의 ‘한계 비용 제로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대한민국을 축구팀이라고 생각해보면, 현재 우리 팀에는 최전방 공격수 밖에 없는 상태다. 이래서는 강팀과 붙으면 6대 0으로 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 반칙 못하도록 규제만 하는 건 반쪽짜리 경제민주화다. 밑에 있는 중소기업을 위로 올려주는 것까지 해야 완전한 경제민주화다. 실력이 아닌 인프라 때문에 생기는 불평등을 없애자는 취지다. 정부가 다양한 형식으로 플랫폼을 깔아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아 차별 없이 공정한 게임이 이뤄지는 체제를 만드는 게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확신한다.”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으로 국내적으론 보수 대 진보 간 갈등이, 국제적으론 미ㆍ중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문제의 핵심은 중국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를 북핵 문제로 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빨리 우리 정부가 사드는 북핵 방어용이며 한반도용이라는 점을 미국과 협의해 중국에 분명히 설명하고 안심시켜야 한다. 조만간 열릴 미ㆍ중 정상회담에서도 사드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우리 정부가 역할을 해서 미ㆍ중이 합의에 이르도록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한다.”
-경기도에는 남북간 군사적 긴장을 생생히 체험하는 지역들도 포함돼있는데, 통일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가.
“개성공단을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적 협력 방안을 차기 정부가 세워야 한다. 군사 안보적인 면에서만 남북관계가 논의되면 안 된다. 사실 사회 변화는 경제로부터 나오는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보면 남북이 경제적인 체제로 묶이도록 다양한 협력을 하는 것이 남북 통일로 가는 준비다.”
-박근혜 정부 임기가 1년 반 정도 남았다. 정부에 바라는 것은.
“특히 협치를 잘 해주시길 바란다. 현재 닥친 정치 현실은 협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안 해 본 것 중에 제가 해본 일을 토대로 감히 고언을 드리자면, 권력은 나눌 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차기 리더 갖춰야 할 리더십은 공감능력”
-대선은 우리 사회의 분수령이다. 2017년 대선의 과제는 무엇인가.
“내년 대선이 ‘국가의 대토론장’이 되기를 희망하고 그렇게 만들어볼 생각이다. 과거 대선들은 결국 국가적인 어젠다 보다 후보의 흠집을 찾아내는 네거티브 전으로 흘렀다. 그러나 대선은 새로운 미래를 위한 담금질의 과정이 돼야 한다. 예를 들면 권력구조, 경제체제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무엇이 있는지 대선 때 시끌벅적하게 토론이 돼야 한다. 개헌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되면 개헌하겠다는 거짓말은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나? 구체적인 방향과 시점까지 제출한 사람만 테이블에 앉도록 하고, 토론 결과 당선된 사람은 약속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차기 리더가 갖출 리더십은 뭐라고 생각하나.
“공감 능력이다. 자기가 잘 났다고 생각하면 공감할 수 없다. 정치에서 공감은 바로 권력 분점이다. 그래야 진지한 대화와 협력이 가능하다. 그에 더해 구체적인 정책능력을 겸비해야 대한민국을 성장시킬 수 있는 리더라고 본다.”
-정치인 남경필은 어떤 사람인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웃음). 제 행복을 추구하는 만큼 다른 이들의 행복도 추구해드리고 싶다. 그걸 이룰 수 있도록 국가의 여러 요소를 바꾸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고 실질적인 수단도 준비하는 사람이다. 대한민국을 리빌딩 해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준 시스템을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내년 대선에 출마할 것인가.
“(웃음) 고민 중이며 내년 초에 결정하겠다는 게 공식적 답변이다.”
대담=김호기 연세대 교수
정리=김지은ㆍ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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