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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멤버 없는 그룹 NCT의 등장이 말하는 것

입력
2016.04.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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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가 멤버 수 조정 가능…약해진 아이돌 멤버 권력

A&R팀에 박진영도 심사 대상… ’K팝 공장화’ 이끌어

SM엔터테인먼트(SM)가 제작한 신인그룹 NCT 유닛(소그룹) NCT U. 도시별로 팀이 다르고, 멤버수도 제한이 없다. SM 제공
SM엔터테인먼트(SM)가 제작한 신인그룹 NCT 유닛(소그룹) NCT U. 도시별로 팀이 다르고, 멤버수도 제한이 없다. SM 제공

“여기는 NCT입니다.” SM엔터테인먼트(SM)가 지난 9일 첫 선(음원 공개)을 보인 신인 보이그룹 NCT의 유닛(소그룹) NCT U의 인사법이다. 다른 보이그룹 빅뱅이나 슈퍼주니어처럼 “우리는”이 아니라 “여기는”이라고 소개하는 게 특이하다. 멤버들이 주체가 된 게 아니라 장소가 주체가 됐기 때문이다. NCT란 브랜드 아래 서울ㆍ도쿄(NCT U), 상하이 등 대도시별로 따로 활동하는 색다른 그룹 콘셉트를 내건 영향이다. 지역별로 활동 그룹을 둬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다.

생명공학책에나 나올 만한 네오컬처테크놀로지(NeoCulture Technology·NCT)란 ‘첨단’ 팀 이름에 걸맞게 이들의 데뷔는 가요계 패러다임 변화를 보여준다. NCT에는 고정된 팀의 개념이 없다. 멤버수가 정해져 있지 않은 개방형 그룹이라서다. 이 틀에서 SM은 그룹 안에 어떤 멤버든 자유롭게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다.

이 뿐 아니다. NCT는 곡마다 부르는 멤버도 다르다. NCT U가 낸 두 신곡을 보면 ‘일곱 번째 감각’은 태용, 마크, 재현, 도영, 텐이 부르고, ‘위드아웃 유’는 재현, 도영, 태일이 부른다. SM 관계자는 13일 “곡에 따라 멤버를 기억하는 팬들이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정된 멤버가 없다 보니 팬덤은 자연스럽게 NCT란 브랜드와 곡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다.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는 “아이돌 멤버의 리스크(위험)관리를 위해 기획사가 시도한 아이돌 체제의 새로운 변화”라고 해석한다. 고정 멤버란 인식을 없애면, 계약 문제로 소속사와 갈등을 빚고 팀을 떠나거나, 연기를 하고 싶다며 가수 활동을 중단한 멤버들로 인해 생길 팀의 균열을 최소화할 수 있다. 아이돌 멤버의 권력은 약해지고, 기획사의 힘은 더 막강해지게 된다.

신인그룹 NCT는 곡 마다 노래를 부르는 멤버가 다르다. 이젠 팀이 아니라 곡으로 멤버를 기억해야는 시대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신인그룹 NCT는 곡 마다 노래를 부르는 멤버가 다르다. 이젠 팀이 아니라 곡으로 멤버를 기억해야는 시대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NCT란 브랜드의 등장은 기획사의 곡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도시 별로 활동하는 팀을 이끌기 위해선 그만큼 많은 곡이 필요한데, 이를 해결할 시스템을 기획사가 갖췄다는 얘기다. 이런 배경의 중심에 A&R(Artist & Repertoire)팀이 있다. 아티스트 발굴을 비롯해 해당 아티스트에 맞는 곡을 계발하고 앨범을 제작하는 일을 하는 팀이다. SM을 비롯해 JYP엔터테인먼트(JYP) 같은 대형가요기획사에서 A&R팀은 핵심 부서다. SM은 약 30명, JYP는 15명 정도의 규모다. JYP를 설립한 박진영도 곡을 발표하려면 A&R팀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JYP관계자에 따르면 A&R팀 평가에서 곡에 내한 평가가 80점을 넘지 못하면 곡을 낼 수 없다. 심사 점수에 따라 앨범 제작 예산비도 달리 책정된다. 점수가 높을수록 제작비를 많이 쓸 수 있는 구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획사 내 권력 구도도 변했다. 가수들의 데뷔 및 컴백 여부는 소속사 대표나 프로듀서에서 A&R팀의 손으로 넘어갔다. 1990년대 1세대 아이돌 보이그룹 H.O.T를 만든 이수만 SM 회장이나, 걸그룹 핑클을 만든 이호연 DSP미디어대표처럼 소속사 대표가 직접 기획ㆍ제작하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 유영진(SM)이나 테디(YG)처럼 곡을 직접 만들어 기획사 내 2세대 권력자로 불린 개인 프로듀서들도 산업화 되가는 기획사 내에서 독보적인 힘을 내기 어렵다. 홀로 만들 수 있는 곡이 한정될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를 수록 유행에도 둔감해져 ‘핫’한 상품(곡)을 꾸준히 뽑아내는 게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작사가와 작곡가들도 대형기획사의 A&R팀과 접촉하려고 애를 쓴다. SM과 JYP A&R팀의 눈에 들면 자신의 곡을 대형기획사 아이돌의 노래로 내 더 큰 유명세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벽’도 높다. 가장 까다로운 곳은 SM이다. SM A&R팀과 접촉해봤다는 작곡가 A씨는 “SM의 A&R팀은 기획사가 원하는 곡의 콘셉트를 구체적으로 외부 작곡가나 작사가에 요청하기도 한다”며 “걸그룹 에프엑스의 ‘일렉트릭 쇼크’를 예로 들면 작사가에 ‘전기충격 4행시’ 콘셉트까지 구체적으로 요구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철저한 주문 생산인 셈이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한 PD는 “이런 주문 생산 방식으로 대형기획사의 음악 품질은 일정하게 유지되는 건 같지만, 기획사의 음악적 색깔만 더 강해지고 소속 가수들의 개성은 예전보다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있다”고 봤다. ‘아이돌의 공장(기획사)화’가 가속화 돼 “여기는 NCT”까지 만들게 된 K팝의 또 다른, 쓸쓸한 자화상이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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