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사진이 신문에 많이 실리고 있습니다. 중앙은행 총재의 한 마디 말이 지니는 위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박근혜 2기 정부 실세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애간장을 많이 태우고 있어서라는 게 보다 정확한 이유일 것입니다. 24일 기재부가 발표하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온갖 경기부양책을 담아낼 예정인 최 부총리에게 현재 가장 필요한 게 있다면 이 총재가 이끄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인하 결정입니다. 보통 단행 후 3~6개월 정도 지나야 시장에서 영향을 드러내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게 금리 결정인 만큼, 경제정책 성과가 연내에 가시화 되기 위해 금통위가 내달 기준금리를 ‘반드시’내렸으면 하는 게 최 부총리의 속내일 것입니다.
최 부총리 취임 후 지난 일주일 가량, 그가 한 발언과 동선을 살펴보면 얼마나 한은의 통화정책 변화를 바라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에 출석한 최 부총리는 “경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까지 충분히 전달했다고 본다”며 듣기에 따라 필요 이상으로 강하게 금리 인하의 시급함을 강조했습니다.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고 보여집니다.
지나쳤다 싶은지, 21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만난 이주열 총재에게 그는 깍듯하게(이 총재는 최 부총리의 대학 5년, 한은 입사 선배) 대하며 직설적이지 않게 조심조심 정책공조를 요청했습니다. 기관장 가운데 가장 먼저 조찬 회동 상대로 이 총재를 선택한 최 부총리는 가장 끄집어내고 싶었던 ‘금리 인하’라는 네 글자를 끝내 언급하지 않으면서 “금리 결정은 한은의 고유권한”이라고 까지 말하는 등 상견례 자리에서 만난 사돈 대하듯 했다고 합니다.
사실 한국은행이 디플레를 걱정해야 하는 저성장 시대에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한,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이라는 외부의 비판을 모르지 않습니다. 정부의 재정정책과 발을 맞춰 적극적인 통화대책을 시행할 수 있는 ‘힘’을 보여주고도 싶어 합니다. 매파(통화긴축) 성향이던 이주열 총재가 금리 인하의 가능성을 열어놨고, 경기부양에 사활을 건 기재부가 추천한 금통위 위원이 이미 7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 의견을 밝혔으며, 한 위원은 아베노믹스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금통위원 7명 가운데 3명이 잠재적인 비둘기(통화완화)성향을 드러낸 만큼, 그 ‘힘’을 사용할 준비도 갖춰진 셈이죠.
한국은행은 어쩌면 이 힘을 발휘할 명분을 필요로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독립성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 통화정책의 위력을 움직일 그럴듯한‘멍석’말입니다. 22일 경제동향간담회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지금까지 나온 것들을 감안해 판단하시라”고 한 이 총재의 대답은 ‘할 말(시그널)은 다 했으니 8월 금통위 결과를 기다려 달라’는 속내로 읽힙니다. 명분이 쌓이면 통화정책으로 응답할 준비가 됐다는 뉘앙스이기도 합니다.
최 부총리의 경기 부양책 종합 선물세트인 경제정책방향 발표가 이뤄지는 24일 같은 시간, 한국은행은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발표합니다. 이날 정부와 중앙은행의 두 발표는 ‘부양이 시급하다’는 최 부총리의 메시지를 증폭시키는 한편, 이 총재를 움직이게 할 ‘명분’이 되어줄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이튿날 신문지상에선 “금리 인하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문장을 많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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