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보완” 안ㆍ홍ㆍ유 “시행 유보” 입장
심 후보만 “예정대로 내년 시행”
2년 유예 불구 “준비 부족” 이유
“종교계 표 의식 선심성 후퇴” 비난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종교인 과세에 ‘비상등’이 켜졌다. 유력 대선주자 5명 가운데 무려 4명이 “보완책이 필요하다”거나 “시행을 유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수년간 숱한 진통 끝에 마련된 ‘사회적 합의’가 선거철 표심 앞에 또다시 무력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6일 본보가 문재인ㆍ안철수ㆍ유승민ㆍ홍준표ㆍ심상정 대선 캠프에 종교인 과세에 대한 입장을 질의한 결과, 후보들 대다수는 내년 1월부터로 예정된 종교인 과세에 ‘시행 유예’ 또는 ‘수정’ 입장을 나타냈다. ‘국민 개세주의’ 원칙에 따라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 측을 빼면, 나머지 4명은 모두 “종교인 과세에 제도상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은 “과세 유예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시행기준이나 절차 등이 미비해 하반기 세법 시행령을 개정할 때 다각적으로 검토해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측은 한 발 더 나아가 “종교인 과세에 찬반이 있는 만큼 좀 더 의견수렴을 거쳐야 한다”며 “시행 유예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답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측은 “과세 시 종교인의 지위가 근로자로 분류되는 등 쟁점이 많다”며 ‘유보’ 입장을 취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측은 뚜렷한 의견을 밝히지 않았으나, 지난 12일 기독교 단체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의 공식 질의에 “회계처리, 세무교육 등 인프라 먼저 구축하고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한 점에 비춰 역시 유보적인 입장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대선주자들의 분위기는 사실상 ‘개신교계 표심’을 의식한 결과다. 앞서 지난 2015년 12월 여야가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 근거를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당시에도 ‘2년 유예(2018년 시행)’의 단서조항이 추가돼 “총선(다음해 4월)을 의식한 꼼수”라는 비판이 높았다. 이미 봐줄 대로 봐준 과세 조항에 더 이상 손 볼 여지도 없다는 지적이 높다. 종교인 과세는 지난 2012년 박재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처음 공론화한 뒤, 수년간 합의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각종 ‘납세 특혜’가 법에 다수 반영됐다. 김광윤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행 소득세법은 종교인 소득을 지급하는 종교단체의 원천징수 의무에 예외를 허용하고, 과세당국의 종교단체 장부 확인도 종교인의 소득 관련 부분으로 한정했다”며 “이런 수준인데도 종교인 과세를 또 미룬다는 건 표를 의식한 ‘선심’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고 꼬집었다.
대선주자들이 시행 유보의 근거로 내세우는 “종교 단체들의 준비 부족” 또한 설득력이 낮다. 법 통과 이후 2년간의 유예기간 자체가 이미 종교계에 준비기간을 준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기획재정부는 내년 과세 시행에 발맞춰 작년 초 관련 시행령 개정을 마치고 올 하반기엔 종교단체 대상의 설명회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에도 종교인 과세가 시행되지 못하면 앞으로 종교인 과세는 영영 불가능해 질 거란 우려도 적지 않다. 선거 때마다 비슷한 핑계로 시행 연기 주장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여론으로도, 조세형평성으로도 과세 유보의 명분이 없다”며 “후보들이 오히려 종교인 과세에 적극적인 입장을 밝히는 게 선거전략 측면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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