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대는 종목마다 대박 행진, 지분 보유 공시하면 주가 들썩
감성보다 합리적인 원칙 따르고 기업가치 높은 종목 장기 보유해야
500억 굴려도 점심은 콩나물국밥, 카이스트의 현인이 돼라 하더군요
‘5일 공시: 김봉수, 아이즈비전 지분 5.07%(79만9,652주) 보유.’
이 짤막한 공시에 해당 종목은 상한가 2번에 4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급기야 12일엔 단기과열로 거래정지를 당했다. 이전에도 지분 보유 공시에 ‘김봉수’란 이름 석자만 뜨면 그 주식들은 에누리없이 날개를 달았다. 심지어 ‘봉수 효과’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정작 당사자인 김봉수(57)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는 “무조건 나 따라 사면 망한다”고 일갈했다. ‘4억원을 10년 만에 500억원으로 만든 슈퍼개미’ ‘손대는 종목마다 대박을 터뜨린 미다스의 손’ 등 화려한 별칭으로 불리는 개미들의 우상은 기대와 달리 시종일관 원칙과 합리를 설파했다. “종목 콕 찍어달라”는 은밀한 부탁이 쏙 들어갈 정도로.
그는 “아인슈타인을 꿈꾸다 워런 버핏이란 경쟁자를 만났다”고 호언할 만큼 자신감이 충만하다. 국제특허만 70개가 넘는 일생의 연구 성과보다 자신이 번 돈에만 귀를 여는 세상이 못내 서운하다고 했다. 시간에 쫓겨 사느라 시계 6개가 곳곳에 놓인 그의 대전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투자철학을 들어봤다. 김 교수는 거침없이 솔직했다.
-주식을 한 계기는.
“직장생활 17년, 오십 가까워(47세) 두 딸 대학등록금 결혼비용 노후자금 등을 따져보니 암담하더라. 월급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왔다. 돈 문제로 연구에 제약 받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미국 교수들처럼 언덕 위 하얀 집에 살고 싶고, 외제차도 갖고 싶었다. 게다가 1996년부터 10년 정도 간접(펀드) 투자를 했는데, 어찌나 수수료를 많이 떼가던지 내가 직접 투자하기로 했다.”
-돈이 있었나.
“누나한테 빌리고, 1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도 은행에 맡기고, 퇴직금담보대출도 받아 4억원을 마련했다. 6개월간 주식관련 책 200권을 읽고, 2005년 당시 종합주가지수(800)를 보니 집을 팔아서라도,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투자해야겠더라. 지적 탐구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해 결단했다. 일반 투자자는 절대 나처럼 빚내서 하지 마라.”
-어떤 종목에 투자했나, 수익률이 엄청 나더라.
“삼광유리, F&F, 메가스터디 등이다. 모두 4배에서 10배 이상 올랐다. 2005년 첫해 수익률은 200%, 이후 연구가 바빠 몇 년간 투자를 거의 못했을 때는 연 30%, 2014년 다시 투자를 해서 연 300% 수익을 냈다. 10년 전체를 따지면 연 수익률이 40~50% 정도다.”
-종목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
“메가스터디는 딸들 과외를 시켰는데 해당 교사들이 나보다 더 잘 가르치더라. 비타500, 유기농산물 등 아내가 자주 사오는 제품들을 눈여겨보다 해당 종목에 투자한다. 2007년엔 보험회사에서 보험료를 80% 올린다고 전화가 왔길래 엄청 싸우고 다음날 보험회사 주식을 샀고, 2009년엔 제네시스를 샀는데 너무 좋아서 현대자동차 납품업체에 투자했다. 피터 린치의 생활 속 발견에 견줘 내 투자 방식을 ‘생활투자’라 부르고 싶다.”
-투자 원칙은 뭔가.
“기업의 이익창출능력(ROE)이 높고, 주가가 장부상 순자산가치(청산가치)보다 낮은(실질 PBR이 낮은) 회사에 투자한다. 정부와 대주주의 의도를 파악한다. 장기 보유한다. 가능하면 다수의 반대편에 선다.”
(업계에선 김 교수의 투자 원칙이 아주 특별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대형주를 주로 분석해 투자하는 기성 금융투자회사들과 달리 소형주 위주로 유망 종목을 연구하고 발굴해 옥석을 가리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한다.)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투자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주변에 많다.
“감성에 치우쳐서 그렇다. 투자는 이성이 지배해야 한다. 단기적인 주가 흐름에 휘둘리지 말고 적어도 한 달은 공부하고 사야 한다. 인내도 필요하다. ‘우량 기업의 주식을 산 뒤 수면제를 먹고 몇 년간 푹 자라’(앙드레 코스톨라니)는 투자 격언을 명심하라. 좋은 주식을 사 3년간 묻어두고 3배 수익을 얻는다는 게 내 원칙이다. 늘 단타만 하니까 개미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실패한 경험은 없나.
“100번 중에 한 번 있다. 내가 일부 사사한 슈퍼개미의 말만 듣고 샀다가 8년 만에 10분의 1 토막이 났다. 나도 감성에 휘둘려 원칙과 합리를 버려서 망했다. 묻지마 투자는 실패하게 돼있다.”
-지분 보유 공시를 하면 개미들이 따라 사던데.
“추격 매수 역시 망하는 길이다. 내가 가진 주식은 좋은 후보가 될 것이다. 다만 본인이 납득이 될 때까지 투자를 미뤄라. 나는 최소 3년을 보고 투자하는데, 지분 보유 공시로 급등하는 주식을 샀다가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인터넷에 ‘작전으로 개미 등쳐먹는 교수’라고 하던데 억울하다.”
-개미들에게 조언을 해달라.
“‘봉수 효과’ 얘기도 하던데, 개인투자자들이 기업의 가치를 확인하고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게 가장 좋다. 뻔한 소리 같지만 그게 정도(正道)고 돈을 버는 길이다. ‘기업가치보다 할인된 주식을 사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유한다’는 BUY&HOLD 전략은 벤그레이엄에서 워런 버핏으로 이어지는 정통적인 투자 철학이다.”
-현재 포트폴리오는.
“고려신용정보 부산방직 아이즈비전 동양에스텍 세진티에스 코리아에스이 아이에스동서 F&F 정도다. 예컨대 아이즈비전은 탄탄한 본업(알뜰폰), 비전 있는 자회사(500억원 규모), 경영능력(롯데홈쇼핑 지분 차익 900억원)을 보고 샀다. 높은 ROE, 낮은 PBR에도 부합한다. 더 이상은 노코멘트다.”
-증시 전망은.
“미국의 경우 대형주장세와 소형주장세가 6~8년의 시차를 두고 번갈아 온다. 우리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7년간 대형주장세였다. 이제부터는 소형주 중심의 장세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투자 전략은 일관되게 유지하는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전략을 쓸지 나도 잘 모른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게 내 전략의 핵심이다. 자연과학을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레 몸에 뱄다.”
-본업에 소홀할 것이라는 시기를 받을 것 같다.
“천만에. 2011년 대한화학회 학술대상도 받았고, 특허는 70개가 넘는다. 200편의 논문을 썼고, 내 논문 인용 횟수가 7,000번이다. 작년엔 노벨상위원회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이 왔을 정도다. 나노 기술을 탑재한 질병진단키트도 개발했다. 곧 관련 사업을 할 생각이다. 평생의 연구도 잘 마무리하고 싶다. 연구 성취가 이렇게 많은데 주식 투자 전엔 관심도 없더라.”
(김 교수는 2010년 1월 세계 최초로 초탄성 무결점 금속 나노 선 개발에 성공한 손꼽히는 화학자다. 카이스트에서 국제특허를 가장 많이 등록한 교수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돈을 벌어서 행복한가.
“돈은 불행을 막는 도구일 뿐이다. 500억원을 굴리고 있지만 여전히 점심은 콩나물국밥 먹고, 주차는 무료로 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외제차 한대 사고, 딸들 명품 가방 선물하고, 아파트 평수 넓힌 게 전부다. 그리고 어느새 돈이 내겐 공장이더라. 공장 뜯어서 소비하는 사장은 없는 것처럼.”
-목표는.
“원래는 아인슈타인처럼 노벨상을 받고 싶었는데, 이제 워런 버핏처럼 세계 최고 투자자가 되고 싶다. 참, 슈퍼개미라는 명칭은 싫다. 과거 왜곡된 금융시장에서 파생된 단어라 그렇다. 주변 환경에 초연하면서 생활 속 장기보유 종목을 찾는 합리적 투자에 능하다는 의미로 ‘투자계의 메타세쿼이아’라고 불리면 좋겠다. 그 나무는 3,000년을 산다더라. 지인들은 워런 버핏에 빗대 ‘카이스트의 현인(賢人)’이 되라고 하더라. 하하.”
그래도 뭐(종목)라도 찍어달라고 했더니 카이스트의 현인이 되물었다. “지금까지 헛들은 거요?”
대전=고찬유기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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