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혜영 기자

등록 : 2017.03.20 04:40
수정 : 2017.03.20 04:40

“심상정 남편으로 불리는 것? 영광이죠!”

[인터뷰] 심상정 후보 배우자, 이승배 마을학교 이사장

등록 : 2017.03.20 04:40
수정 : 2017.03.20 04:40

이번 대선에서 유일한 여성 후보인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의 남편 이승배 마을학교 이사장은 "진보정당이 바르게 서야 정치권이 민심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정치인 심상정'을 응원한다"고 했다. 왕태석 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아내 자랑은 모자란 짓’이란 말은 틀리다. 심상정(58) 정의당 상임대표의 배우자인 이승배(61) 사단법인 마을학교 이사장은 “제 처가 세상에 긍정적 기여를 하도록 옆에서 돕는 게, 저의 존재 이유의 핵심”이라고 밝히는 데 거침이 없다.

이번 대선에서 심 대표는 유일한 여성 후보, 이 이사장은 유일한 영부군(令夫君), 퍼스트젠틀맨 후보다. 그런데 그의 아내 자랑이 그저 정치인 배우자의 내조형 발언에 머물지 않는다. 가사와 육아의 역사, 진보정당사, 한국사회의 미래 등의 주제를 종횡무진하며 ‘심상정 자랑’을 이어가는 그는 “심상정을 만나며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진 지 오래다. 그런 허위 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시대는 아니지 않냐”며 누구보다 진보적인 부부상의 보여주었다.

그렇다. 대통령 배우자가 늘 '영부인'이란 법은 없다. 이 이사장은 남자여서가 아니라 아내의 정치인 삶을 적극 지원한 경험으로 인해 전혀 새로운 대통령 배우자상을 보여줄지 모른다. 엘리트코스로 통하던 경기고, 서울대(동양사학과 75학번)를 거쳐 노동운동을 하던 그는 2004년부터 집안 살림을 ‘1차적으로 맡아서’ 꾸려왔다. 심 후보가 공적 역할에 전념하게 해주고 싶어서다. 2015년부턴 이웃 주민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하는 사단법인 마을학교에서 일했다. 심 후보의 공약으로 경기 고양시에 마련된 법인이다. 1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난 이 이사장은 “심블리가 더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미래를 꿈꾼다”고 했다.

젊은 시절, 가을 나들이를 즐기고 있는 심상정 대표와 이승배씨 부부. 정의당 제공

-부부의 첫 만남은.

“심상정이라는 이름을 처음 마음에 담은 것은 85년이다. 심 후보는 서울노동운동연합(이하 서노련) 사건으로 수배상태였고, 저는 운수 쪽 노동운동을 할 땐데, 박노해 시인이 어느 날 말하더라. ‘문수 형(김문수 전 경기지사)이 심상정씨하고 자네하고 맺어주면 좋겠다고 그러던데.’ 그런 얘기는 마음에 콕 남지 않나.(웃음) 얼마 후 서노련 재건모임에서 처음 봤다. 수배자 신분이라 눈에 띄거나 두드러지지 않는 차림, 평범한 신입 사원 같은 모습이었다.”

-‘내 짝이다’ 싶었나.

“지금 생각해도 그렇지만, 노동운동사에서 1985년 구로동맹파업이라는 건 정말 획기적이지 않나. 공단에서 못 버티거나 버티더라도 가시적 성과를 낸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데, 심지어 동맹파업을 주도했으니, 심상정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싶었다. 듣던 대로 자기 주관, 가치관이 정돈된 단단한 여성이라고 느꼈다. 그러고 보니 처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 나만 일방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건가.(웃음)”

-결정적으로 이끌린 매력은.

“자주 만나게 된 것은 제가 노동운동단체협의회(이하 노운협)에서, 심 후보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노협)에서 일하며 협력할 일이 많아졌을 때다. 이 사람은 하여튼 열심이었다.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철저했고 사회적 약자들이 인간으로 충분한 권리를 누렸으면 한다는 지향점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물론 사랑을 토대로 했지만, 이런 사람과 삶의 동반자가 되면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성(性) 의식이 아직도 관념적이었을 거다. 당시엔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도 남자가 뭔가 열심히 하면 여성이 지원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겼다. 심상정이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그런 허위의식이 완전히 깨졌다.”

서울노동운동연합 사건으로 경찰에 쫓기던 시절의 심상정 대표. 그의 수배생활은 9년이나 이어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결혼 과정은.

“이 사람 주변에 독신을 권하는 선배들이 많았다. ‘지금 같은 여건에서는 결혼을 하면 심상정이 갈 길은 꺾인다’고. 다행히 본인은 그런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청혼을 하니 흠칫하긴 하더라. 그러곤 몇 달 간 답이 없었다. 회의에서도 마주치는데 쑥스럽더라. 현실과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 92년 여름에 제가 다시 연락을 해 결혼을 계획했다.”

-‘알콩달콩’한 데이트도 누렸는지.

“89년부터 사귀었는데, 시간이 없어 쪼개서 만났지만, 가난한 연인들이 다 그렇듯 주로 차 한 잔하고 이야기하며 걸어 다니는 게 대부분이었다. (심 후보가) 9년간 수배 생활할 때 몸이 많이 상했다. 불안하고 초조하니까. 나중엔 거의 탈진 상태로 지방 암자에 누워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같이 술을 마시거나 하지도 않았다. 한 번은 제가 노운협 일로 안기부에 연행됐을 때 ‘심상정을 아냐’길래 모른다고 했더니, ‘같이 다니는 거 다 찍혔는데 뭔 소리냐’ 하더라. 데이트가 사찰을 당한 거다. ‘알콩달콩’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둘 다 낯간지러운 것은 잘 못한다.(웃음)”

-‘심블리(심상정+러블리)’인데 그럴 리가.

“막내 딸인데다 꼬임 없고 밝은 성격인 것은 맞다. 사진을 보면 대학 초반에는 멋쟁이 여대생이다. 그런데 본인이 멋지게 생각했던 사람은 다 운동권 남학생이었다고 하지 않나. 노동운동을 하면서 인생을 전면적으로 돌아봤던 것 같다. 주로 활동했던 분야가 금속노조니 40~50대 남성 노동자들 속에서 일을 해나가는 가운데 강직한 성격도 형성된 것 같다. 긍정적인 성격이 삶 속에서 단단함을 더한 거다.”

1992년 11월 결혼식 당일, 주례 앞에 선 두 사람. 주변에 널리 알리지는 못했어도 만혼인지라 하객이 꽤 많았다. 정의당 제공

결혼식 피로연에서 심상정 대표 부부가 하객 노회찬(오른쪽) 현 정의당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정의당 제공

-역경이 많았는데.

“수배생활이 끝난 게 전노협 결성 무렵 연행되면서다. 선고 공판 때는 만삭이었다. 제가 따라다녔다. 재판관이 혐의 내용만 보고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만삭 여성이 나오니 ‘당신이 진짜 심상정이냐’ 묻던 게 기억이 난다. 집회에서 화염병이 나온 걸 가지고 집단방화사주 같은 혐의를 걸었었다.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신혼 땐 각각 노동운동, 출판업을 했는데.

“92년 당시 노동운동이 세계정세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나. 동유럽, 구 소련 붕괴 이후 많은 분이 노동운동 현장을 떠났고 제가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노운협도 분열됐다. 국장직을 그만두고 누가 내놓은 출판사를 인수했다. 그 뒤 결혼을 한 거다. 꼭 출판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단, 심 후보가 계속 운동을 해나간다면 내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싶었다. 전심전력을 다해도 될까 말까인데 세상 물정을 모르고 덤볐으니 고생은 했다. 그러다 외환위기도 겪고.”

-나중엔 가사노동을 전담했다고.

“2003년 하반기, (심 후보가) ‘일생일대의 자기결단이 필요한 때’라고 고민을 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유망주들이 노조에서 당으로 와야 한다는 요청이 있었던 때다. 그렇게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갔을 때, ‘내 개인의 길은 접어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의 역사가 처음 시작되고, 원내 선배도 없이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집에는 처하고 저하고 아들놈이 있는데, 다 ‘나 몰라라’ 하고 내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싶었다. 나는 심상정이라는 사람에게 밑받침이 돼주고, 다른 고민 없이 더욱 자기 일을 잘하도록 돕는 게 우선이라 여겼다. 가정 일은 제가 1차적으로 맡아 하고, 운전수, 보좌진 역할도 틈틈이 했다. 당시엔 초창기라 당의 시스템이 있어도 가족들이 메워줘야 할 부분이 있었다.”

이승배씨는 "슈퍼우먼방지법은 정치인이자 엄마 심상정의 눈물, 콧물이 담긴 공약"이라며 "육아와 가사를 오직 개인이 감당할 몫으로 보는 시선이 깨져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왕태석 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주부 애환을 잘 알겠다.

“가사노동은 단순반복 노동이 많고 해도 티가 안 나는 건 잘 안다. 열심히 치웠는데 ‘여기 왜 이러지?’같은 말만 들어도 덜컥하는 심정 아니냐.(웃음)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정욕구가 있는데, 가사노동만 가지고 그 인정욕구를 모두 채우긴 쉽진 않은 구조다. 특히 요즘 주부들은 얼마나 교육수준이 높나. 우리사회의 다종다양한 건강성을 위해서도 결코 과소평가할 일이 아니다.”

-육아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처음엔 각각 노조, 출판 일을 하면서 맞돌봄의 자세로 잘해보자 했는데 정말 어려웠다. 어린이 집에 맡겨도 엄마 입장에선 퇴근 때는 버스 안에서 엄청 초조하고 눈물 콧물 쏟았다. 데리러 갈 때마다 우리 애만 남아 있고. 결국에는 처갓집 신세를 졌다. 초등학교 때는 방과 후에 후배 집에도 맡겼다. 그땐 아들이 많이 위축돼 보였다. ‘슈퍼우먼 방지법’ 공약은 그런 경험을 토대로 나온 거다.”

-어떤 엄마, 아빠인가.

“아들은 늘 판단에 앞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롤모델로 삼는 것 같다. 외아들이니 저는 형제 대신으로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착하다. 중ㆍ고등학교는 대안학교에 다녔는데 또래들하고 어울리면서 구김살이 펴졌다. 학교에서 올바른 삶에 대한 자극을 많이 주니까 인간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고 해서 철학과에 진학했다. 졸업반이 된 요즘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사회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꽤 하는 것 같다.”

아들 우균씨의 어린이집 야유회 날, 경기 광주 어느 야영장에서 포즈를 취한 가족. 정의당 제공

심상정 대표도 종종 요리를 한다. 찌개를 맛 본 아들 우균씨와 남편 이승배씨가 감동 받은 표정을 짓고 있다. 심상정 페이스북

-‘심상정 남편’ 역할이 섭섭하진 않았나.

“심상정 남편? 한 마디로 ‘그게 뭐 어때서? 영광이지!’하는 생각이다. 심상정의 남편으로 살아가는 게 민심을 제대로 대변하는 진보 정당이 성장하는 데 기여하는 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제 처가 긍정적 기여를 하도록 옆에서 돕는 게, 제가 살아가는 존재조건의 핵심일 수도 있다. 인간인지라 아쉬운 점이 없다곤 못해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결국 사람들이 눈 여겨 보지 않는 우리 사회의 아픈 곳에 따뜻한 시선을 주고, 실질적 생활의 변화를 만들어주지 않나. 나머지 사적 아쉬움은 제가 감당해야 될 게 아닌가 싶다. 그게 제 세계관이다.”

-응원한 보람이 있었나.

“요구만 하는 것이 진보의 모습은 아니라면서, 국민들이 잘 살려면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면서, 처음부터 기획재정위원회를 가더라. 참 잘하고 있구나 싶었다. 집권을 했을 때 어떤 경제정책을 펼 것인가, 실물적인 점검을 해야 한다면서 늘 열심이라 뿌듯함이 있었다.”

-18대 낙선은 서운했을 텐데.

“본인이 가장 힘들었을 거다. 지역구 돌파, 즉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선출된다는 일이 그만큼 엄숙하고 소중하다는 걸 다 같이 배웠다. 본인이 깊이 집중하고 연구하고 노력도 많이 했다. 19대 당선, 20대에서는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모습이 진보정당 소속 다른 의원들에게 참고가 되리라고 본다.”

4·13 총선 사전투표 첫날인 8일 오전 심상정 당시 정의당 상임선대위원장과 가족이 경기 고양시 식사동주민센터에서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당사도 복잡했는데.

“다른 나라에선 진보정당이 원내에 들어가면 대개 다음 선거에서는 의석수도 늘고 제1야당도 되지 않나. 노선 논쟁으로 고생한 점은 어찌 보면 분단의 산물이다. 그렇게 쪼개지는 역사가 불가피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시행착오 끝에 찾은 길, 정의당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많은 분이 애쓰고 계시고 일에 집중하기엔 훨씬 좋은 조건 같다."

-조언도 많이 하나.

“후보의 문제는 공적 체계인 당 안에서 해결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사적 조언을 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 정책단위, 조직단위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 맞고, 그래야 그 과정에서 훌륭한 인물들도 양성된다. 간혹 심 후보가 와서 가족들 의견을 묻는 경우에 같이 고민하는 정도지, 조언에는 금도가 필요하다는 주의다. 제가 조언하기엔, 당 안에 이미 유능한 분들이 많다.”

-대통령 배우자가 된다면 어떤 역할을 하려 하나.

"대통령이 공적 책임자로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배우자를 포함한 가족이 과도한 역할을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임무를 하려고 할 때, 가족들의 어떤 행동에 저해되는지를 정확히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도움 주는 일은 책임을 진 많은 인재들이 잘 하시지 않겠나. 어쨌거나 저로선 지금까지 심 후보가 걱정 없이 활동하도록, 가정 문제나 여타 사적 문제로 시간 뺏기지 않도록 하는 데만 신경 썼다.”

-‘있는 듯 없는 듯’인가.

“그간 우리 역사에 대한 검토와 반성을 바탕에 두고 얘길 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많은 대통령의 문제가 자녀, 친인척이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몰라서 생기지 않았나. 국가권력을 사유화하지 않도록, 가족들의 인식이 투철해야 한다. 절대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주어진 심부름을 하는 선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남편이 보는 심 후보의 장점은 뭔가.

“노동운동 25년, 진보정당 13년이라는 삶의 경험 속에서 형성된 철학, 사회적 약자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세계관이 분명하다. 그걸 위해서 가장 절실한 일, 민주적 진보적 정당을 꾸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사회는 21세기에 와있는데 과거 우리나라 정당이 전근대적이지 않나. 인물 따라 이합집산한다. 심상정은 소신과 목표가 뚜렷하다. 정당이 이 땅에 제대로 서야 촛불민심, 직접민주주의의 요구가 왜곡되지 않는다. 촛불민심을 배반해선 안되니까.”

-자랑하고 싶은 공약이 있다면.

“슈퍼우먼방지법은 육아를 개인 책임으로만 맡겨두지 않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출산휴가도 길어지고 남성도 맞돌봄의 자세로 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혼자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 슈퍼우먼을 강요하는 것은 허위의식이다. 그런 껍데기 의식을 가지고 여성들에게만 ‘출산율도 낮은데 왜 낳지 않냐’는 식으로 접근하니까 예산을 80조 들여서도 안 풀리지 않았나. 우리사회가 고민하는 ‘어떻게’에 대한 답을 주는 좋은 공약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강점인 노동 공약 외에는.

“개인적으로는 목적세로 사회복지세를 신설하는 방안에 관심이 갔다. 교육, 노인, 청소년, 청년실업자 등 복지 수요가 매우 많은데 예산 부족으로 진행이 더딘 상황을 긴급한 우리 사회 현안으로 생각하는 공약이다. 저성장의 위기, 서민 가계의 위기감이 크고 경제 호전의 전망도 높지 않은데 국가가 돌봐야 할 어려운 분들에 대한 복지를 현실로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 같다. 당장 채택이 안되더라도, 높은 지지율이 나오면 사회복지의 필요성이 널리 공감을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지를 망국병처럼 취급하는 풍토가 과거에 비해선 줄었지만, 앞으로도 더 변해야 할 여지가 많다.”

지난해 총선 당시 선거 유세를 돕던 이승배씨가 창에 걸터 앉아 쉬고 있다. 당시 캠프는 이 사진을 드라마 마지막 장면처럼 패러디 해 SNS에 올렸다. 심상정 페이스북

지난해 4월 제20대 총선, 경기 고양갑 당선 유력 결과에 심상정 대표와 남편 이승배씨가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철의 여인, 심블리 등 별명이 많다.

“각각 의미가 각별해서 감사하다. 별명을 붙여준다는 것은 관심이 있고 좋아한다는 거니까. 철의 여인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느낌이고, 심블리는 귀엽다는 거고. 앞으로 더 많은 분들에게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심블리가 제일 마음에 든다.

저한테 직접 지어주라면 청렴한 모습을 생각해서 눈 속에서 피어나는 꽃, ‘눈꽃’이라고 해주고 싶다. 수배생활, 현장생활, 정당에서도 정말 곡절과 시련을 엄청 겪었다.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도 봄이 되면 꾸준히 자기 길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게 못한다던 알콩달콩 아닌지.

“어느 분들은 ‘진보 수애’, ‘2초 김고은’이라고 하시는데, 그 배우를 사랑하는 분들께 미움 받을 수도 있으니 부화뇌동하지 말라고 해줬다.(웃음)”

-촛불집회에 개근했다고.

“청년, 대학생, 중고생, 어린이까지 거리로 나오는 걸 보면서 그 모습이 아른거려서 안 갈 수가 없었다. 어른들이 도대체 뭘 했길래 아이들까지 힘들어야 하나 싶었다. 어른 된 자의 도리를 한 거다. 집회는 우리사회가 만든 거대한 공동예술작품 같더라. 공통된 정신은 ‘불의는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는데, 자기자리에서 정확히 서있지 않은 대통령은 설 자리가 없다는 걸 확인한 거다. 중요한 숙제는 정치권이 그 뜻을 가로채거나 배신하지 않는 일이다.”

이승배씨는 "노동자를 대변하고, 제대로 된 정당 활동을 통해 민심을 받들겠다는 아내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청바지와 하늘색 셔츠 등 옷차림은 "아들이 고심해 골라줬다"고 한다. 왕태석 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그 과정에서 치르는 이번 대선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나.

“국민들 입장에선 겨울은 갔는데 봄이 온 듯 안온 듯한 마음일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갔지만, ‘내 삶이 달라져야 하는데, 내가 행복해야 하는데’라는 고민이 남지 않나. 많은 분들이 기성의 질서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민심의 요구는 올라오는데 그걸 감당할 준비는 안돼 있는 분위기도 있다. 심상정은 ‘도대체 어떻게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준비가 돼 있다. 자신감이 있다. 여러 현실적 조건은 있지만, 당당하고 올바른 길을 걸어온 만큼, 한 걸음 한 걸음 최선을 다할 것이라 믿는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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