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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별로 갈라진 팬심… 기이한 '아이오아이' 증후군

입력
2016.05.0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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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보다 중요한 건 멤버다. 내가 뽑은 멤버가 주목 받지 못하면 그룹도 소용이 없다. 10개월 시한부로 활동하는 걸그룹 아이오아이가 보여주는 독특한 팬덤이다. Mnet 제공
그룹 보다 중요한 건 멤버다. 내가 뽑은 멤버가 주목 받지 못하면 그룹도 소용이 없다. 10개월 시한부로 활동하는 걸그룹 아이오아이가 보여주는 독특한 팬덤이다. Mnet 제공

걸그룹 아이오아이(I.O.I)로 활동하는 가수를 소속 연예인으로 둔 기획사 관계자 A씨는 지난 5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그룹 데뷔 앨범 ‘크리설리스’ 발매 관련 쇼케이스를 보다 깜짝 놀랐다. 팬들을 위해 연 행사인데, 특정 멤버에 질문이 쏠리자 일부 팬들이 내뱉는 탄식을 들어서다. 아이오아이의 데뷔를 축하하기 위해 휴일에 행사장을 찾는 수고까지 자처한 팬들 입에서 탄식이라니.

A씨의 말을 듣고 믿기 어려워 온라인에 올라 온 팬 쇼케이스 전체 영상을 확인하니 아이오아이 멤버인 김소혜가 플라스틱 박스에서 팬들이 사전에 적은 질문지를 뽑은 뒤 “소미한테 왔는데요”라고 하자 객석에는 “아”라는 탄식이 크게 터져 나왔다. 전소미에게 두 번의 질문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조용했는데, 세 번째도 그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다른 멤버를 좋아하는 팬들이 아쉬움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특정 멤버를 향한 팬들의 질문 코너가 끝난 뒤 멤버들이 돌아가며 질문지를 뽑고 답을 차례대로 말할 때는 객석에서 단 한 번도 탄식이 나오지 않았다. 그룹 내에서 누가 그리고 얼마나 주목 받느냐를 팬들이 그만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정작 그룹보다 멤버 개인에 대한 팬들의 애착이 더 커 벌어진 일이다. 기존 아이돌 팬덤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기도 하다.

아이오아이의 남다른 데뷔 과정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아이오아이는 지난달 종방한 Mnet ‘프로듀스101’을 통해 100% 네티즌의 투표에 의해 11명의 데뷔 멤버가 결정됐다. 자신들이 직접 데뷔 시킨 그룹이라 생각해서인지 팬들의 멤버 관리는 소속사 사장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아이오아이 팬들 사이에선 그룹 타이틀곡 ‘드림걸즈’의 무대 센터 분량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드림걸즈’ 방송을 보고 멤버 별로 무대 중앙에 나와 얼마나 조명을 받았는지를 초 단위로 계산해가며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1980년대 유행했던 일본 애완동물 육성 게임 ‘다마고치’하듯 좋아하는 멤버를 챙기며 그룹 활동에까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이돌 제작자로 10년 넘게 일한 한 기획사 대표는 “여러 아이돌 그룹이 모이는 콘서트에서 좋아하지 않는 그룹이 나올 때 야광봉을 끄거나 침묵을 해 팬들끼리 신경전을 벌인 건 봤지만, 같은 그룹 팬들 사이 이렇게 경쟁을 벌이는 모습은 처음”이라고 신기해했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아이오아이는 내년 1월까지 시한부 활동을 하니 팬들의 애착이 개별 멤버들에게 더 쏠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네티즌이 직접 멤버 뽑고 관리하는 ‘다마고치 아이돌’의 증가

이 기이한 풍경은 네티즌이 그만큼 아이돌 데뷔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펼쳐진 일이다. 요즘 가요계에는 네티즌의 손에 의해 데뷔하는 일명 ‘다마고치 그룹’이 늘고 있다. 아이오아이뿐만 아니라 지난해 데뷔한 걸그룹 트와이스도 사실상 네티즌 ‘손’에 의해 태어났다. JYP엔터테인먼트가 그룹 멤버를 결정할 때 방송(Mnet ‘식스틴’)을 통한 네티즌 투표 결과를 적지 않게 반영했기 때문이다. 7월 데뷔할 신인 보이 그룹 펜타곤도 비스트를 키운 큐브엔테테인먼트(큐브엔터)와 네티즌의 ‘공동 작품’이다. 큐브엔터는 펜타콘 예비 멤버 10명 가운데 네티즌의 영상 조회수를 기준으로 데뷔 멤버를 최종 확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깜짝 공개를 통한 신비감을 포기하고 데뷔 전부터 그룹 멤버들의 얼굴을 네티즌에 알리고 제작에 관여하게 해 친숙함으로 승부하겠다는 의도다. 네티즌의 ‘입맛’에 맞는 멤버를 데뷔시켜 대중성을 빠르게 끌어올리겠다는 셈법이 작용했다. 일본에서 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걸그룹 AKB48이 팬들의 총선거로 무대에 설 위치까지 정하는 것과 비교해 한 걸음 더 소비자 권력에 힘을 실어줬다.

노골적인 상업화 전략 ‘예술적 가치’ 휘발… 통일성도 약점

기획사와 방송사들은 “인터렉티브 콘텐츠”라고 포장하며 의미를 부각하지만, 네티즌 참여 방식의 그림자를 감출 수 없다. K팝 시장의 노골적인 상업화 풍경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K팝이 기획사에서 생산되는 ‘음악 상품’인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곡을 넘어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까지 일부 네티즌의 입맛에 맞춰 ‘맞춤 그룹’으로 제작한다는 건 기획사가 기획의 책임마저 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비친다. K팝이 지닌 일말의 예술적 가치마저 휘발하고, 일회성을 가속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10개월 동안 정해놓고 활동하는 아이오아이의 탄생은 인스턴트화된 K팝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일부 ‘아이돌 덕후’ 들의 환호를 대중성으로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고 말했다. 음원 시장 점유율 30%를 웃도는 멜론의 9일 차트를 보면 아이오아이가 지난 4일 낸 앨범 수록곡 중 톱10에 오른 곡은 단 한 곡도 없다. ‘프로듀스 101’이 방송될 때는 화제를 뿌리는 듯했지만, 정작 곡에 대한 대중적인 평가는 좋지 않은 셈이다.

그룹 결성도 기획의 일환이다. 네티즌의 손길에만 의지해 뽑은 그룹은 그 팀만이 지닌 특색과 통일성이 약할 수 밖에 없다. 김성환 음악평론가는 “AKB48도 멤버 결정은 기획사에서 전적으로 정해, 그룹의 색을 내부적으로 먼저 정해두는데 팀 내 멤버들의 역할이 다를 수 밖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평론가는 “아이오아이는 멤버별 특성이 충돌해 아쉽고, 이 점이 기획사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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