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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등록 : 2016.03.22 13:06
수정 : 2016.03.22 14:34

[이정모 칼럼] 프랑스 엉덩이를 훔쳐라

등록 : 2016.03.22 13:06
수정 : 2016.03.22 14:34

지난 일요일 폐막한 파리 국제도서전의 주빈국은 대한민국이었다. 올해로 130주년을 맞는 한국-프랑스 수교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서구 열강과 우리나라의 수교는 슬픈 역사의 산물이다. 우리의 주체적인 의지와 역량이 아니라 서구 열강의 침략의 결과인 것이다.

묘하게도 한국과 프랑스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책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 1866년 조선이 프랑스 선교사를 처형하자, 프랑스 극동함대는 하필 조선 왕실의 국가기록물 보관소인 ‘외규장각’이 있던 강화도를 침략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문화라면 둘째 간다고 하면 서러워할 사람들 아닌가. 침략자들은 외규장각에 보관된 책들의 높은 가치를 한눈에 파악했다. 그들은 색상이 화려한 책들을 중심으로 340권을 챙김으로써 자신들의 문화적 소양을 과시하는 한편, 나머지 5,000여 권의 책을 불태움으로써 자신들이 ‘침략자’임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나마 다행히도 340권의 외규장각 도서가 2011년 ‘영구임대’ 방식으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한다. 그리고 프랑스 극동함대가 침략한 지 150년이 지난 2016년에는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이 자발적으로 주요 서적들을 싣고 파리로 날아왔다. 프랑스는 비용을 들여 한국 작가 30명을 초대하여 한국 작가들의 책과 사상을 프랑스 시민들에게 자유롭게 소개하게 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조선을 침략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작가들을 초대했을 때도 문화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수요일 저녁 개막식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부스를 직접 찾아왔다. 이날 여러가지 면에서 놀랐다. 우선 대통령에 대한 경호는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기자들과 개막식에 참석한 출판인과 작가들이 카메라와 핸드폰을 들고 올랑드 대통령의 동선을 방해했지만 경호원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올랑드 대통령은 자신이 특별히 부탁해서 모여 있던 한국의 작가들 몇 미터 앞까지 왔지만 결국 카메라의 장벽에 막혀 한국 작가들의 손도 잡아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더 놀라운 일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올랑드 대통령은 성내지 않았다. 대통령이 성을 내지 않다니! 참으로 낯선 풍경이었다. 원래 대통령은 자신의 맘대로 되지 않으면 찌릿찌릿한 눈빛으로 겁을 주어야 하는 자리가 아니었던가.

대신 올랑드 대통령은 한국관 방명록에 “문화를 향해 같은 열정을 나누는 프랑스와 한국의 독자들에게”라고 글을 남겼고, 오드리 아줄레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프랑스에서 문화는 심장과 같다, 그 문화의 한가운데에 책이 있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대통령과 전시장을 찾은 다양한 분야의 장관들이 ‘경제’를 거론하는 대신 한결 같이 ‘문화’와 ‘책’이라는 한가한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프랑스의 문화 역량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차리는 데는 충분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책이라고 했지만 더 근원적인 것이 따로 있었다. 파리도서전의 특징은 유달리 많은 강연이 열린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물론 인기 작가의 흥미로운 강연도 있겠지만 청중들의 표정을 보건대 대부분은 평범한 작가들의 지루한 강연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프랑스 사람들은 거의 모든 강연장을 가득 채웠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중간에 일어서지 않고 끝까지 경청한다는 사실이다. 누가 강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아도 볼거리가 많은 도서전에서 시간낭비 하고 싶지 않을 텐데도, 마치 자력이나 중력으로 꼼짝하지 못하는 것처럼 프랑스 사람들은 끝까지 앉아 있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엉덩이가 무겁다. 프랑스 사람들의 체형을 상상하려 들지는 마시라. 그들의 체구는 오히려 우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엉덩이는 정말 무거워서 한번 앉으면 좀처럼 일어서지 못한다.

책이 좋아서 도서전에 오는 사람들만 엉덩이가 무거운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번에 파리에 체류하면서 라빌레트 과학관과 파리 자연사박물관도 틈을 내어 다녀왔다. 우리와는 분명히 다른 점이 눈에 보였다. 우선 전시물의 설명 패널의 글자가 작고 길었다. 그리고 동영상도 길이가 보통 5분이 넘었고 심지어 7분, 11분짜리도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작은 글씨로 길게 쓰여진 패널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동영상도 3분이 넘으면 보지 말라는 것과 같다.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은 그 긴 설명을 찬찬히 읽는다. 상영 중인 동영상 앞에 온 사람은 우선 중간부터 본 후 동영상을 다시 틀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다. 중간에 일어설 것 같은데 끝까지 본다. 왜? 엉덩이가 무겁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의 무거운 엉덩이는 부모로부터 유전자로 물려받은 것(nature)이 아니다. 양육된 것(nurture)이다. 도서전과 마찬가지로 과학관과 박물관에 아이들을 데려 온 부모와 조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차분함을 몸소 보여줌으로써 가르쳤다. 때로는 강제적으로 아이들을 주저앉히곤 했다. 이렇게 프랑스 아이들은 엉덩이에 자력과 중력이 더해져서 무거워지나 보다.

한국의 과학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관한 내 강의가 자신의 관심사였을 리가 없는 고등학생이 슬그머니 일어서려 하자 힘으로 주저 앉힌 엄마, 기껏해야 초등학교 1, 2학년밖에 안 된 두 아이에게 찰스 다윈의 따개비 연구에 관한 지루한 이야기를 힘들여 읽어주며 설명하던 백발의 할아버지가 프랑스 문화 융성의 근원인 것 같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단 3년 만에 구글의 인공지능을 뛰어넘겠다는 호기로운 순발력보다는 지루한 이야기도 한 시간쯤은 끈덕지게 들어줄 수 있는 무거운 엉덩이를 만드는 게 먼저 아닐까. 150년 전 프랑스는 우리에게서 책을 훔쳐갔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무거운 엉덩이를 훔쳐올 차례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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