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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온 시골소녀가 꾸민 올망졸망 정원… "옥상이 환해졌어요"

입력
2015.08.2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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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에 온 꼬마 원예사 아가씨가 정성껏 빚어낸 옥상 정원. 수선화, 국화, 튤립이 촘촘하게 물들였다. 웅진주니어 제공
낯선 도시에 온 꼬마 원예사 아가씨가 정성껏 빚어낸 옥상 정원. 수선화, 국화, 튤립이 촘촘하게 물들였다. 웅진주니어 제공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걸음이 느려진다. 철 따라 옷 갈아입듯 간판과 꾸밈새가 바뀌는 가게들 틈에서 용케도 버티고 있는 허름한 밥집이다. 가게 앞에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올망졸망하다. 크기도 종류도 제각각인 화분에선 봉숭아나 분꽃, 옥잠화가 피기도 하고 상추나 치커리, 부추 따위가 싱싱한 자태를 뽐내기도 한다. 흰 꽃이 피었던 스티로폼 상자에는 고추가 조랑조랑 맺혔다. 살뜰한 손길에 무럭무럭 자라는 초록 식물들은 쫓기듯 종종걸음 치던 이들을 한눈팔게, 미소 짓게 만든다. 가끔 꽃 이름이나 기르는 법을 묻는 이들, 씨앗을 얻거나 화분을 두고 가는 이들도 있다. 집이란 마땅히 나무 한두 그루, 화초 몇 포기쯤 가꿀 뜰이 있어야 한다고 믿던 시절이 그립다.

리디아의 정원 사라 스튜어트 글ㆍ데이비드 스몰 그림ㆍ이복희 옮김 시공주니어 발행ㆍ30쪽ㆍ8,500원
리디아의 정원 사라 스튜어트 글ㆍ데이비드 스몰 그림ㆍ이복희 옮김 시공주니어 발행ㆍ30쪽ㆍ8,500원

베란다텃밭이며 옥상정원, 옥상텃밭에 관심이 높다. 송곳 꽂을 땅도 없다는 도시의 삶이 짜낸 묘책이다. ‘리디아의 정원’은 옥상정원을 만드는 이야기다. 집안 형편이 기울어 외삼촌 집에 살러온 리디아. 화초와 채소 가꾸기가 취미인 시골 소녀 리디아가 맞닥뜨린 건 매정해 보이는 낯선 도시, 뜰은커녕 풀 한 포기 없는 집, 무표정한 얼굴로 온종일 일만 하는 외삼촌이다. 그러나 집을 떠날 때도 꽃씨부터 챙기고 크리스마스선물도 씨앗과 알뿌리로 받는 꼬마 “원예사 아가씨”는 숙제를 하고 집안일을 돕는 짬짬이 씨앗 심을 ‘땅’을 열정적으로 찾아낸다.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에, 깨진 보도블록 틈새에 내려앉는 풀씨처럼,

공터에서 퍼온 흙과 여기저기 내버려둔 먼지 풀풀 날리는 화분, 깨진 컵과 찌그러진 깡통, 망가진 물뿌리개, 낡은 상자와 물 새는 욕조로 만들어낸 ‘뜰’. 이 뜰에서 무와 양파와 상추가 자라고, 수선화와 튤립과 수레국화가 꽃을 피우고, 고단한 삶이 쫓아낸 미소와 활기와 인정이 되살아난다. 허섭스레기 나뒹구는, 도시의 황폐한 내면 같던 옥상을 꽃향기, 풀내음 그윽한 초록 뜰로 바꾼 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이의 열정과 “절대로 일손을 놓지 않”는 풀물 든 초록 손가락이다.

100억원 넘는 예산을 쏟아 부은 서울 시내 공공건물 옥상정원은 겨우 3년 만에 넷 중 하나는 쓰레기와 잡초투성이로 방치되었단다. 세상을 바꾸는 건 언제나 마음이 담긴 부지런한 손이다.

최정선ㆍ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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