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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좀 관리해주세요” 호소하는 젊은이들

입력
2016.09.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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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20대 초반, 전두엽 기능 발달 못해‘문제’

타인 간섭ㆍ통제 익숙… 자기조절ㆍ집행관리능력 부족

최근 공무원시험, 취업학원 등이 인기다. 청소년기에 부모와 입시학원에서 관리를 받다 보니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전두엽 기능이 약해진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공무원시험, 취업학원 등이 인기다. 청소년기에 부모와 입시학원에서 관리를 받다 보니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전두엽 기능이 약해진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공무원 시험에 두 번 떨어졌다. 이젠 혼자 공부해서는 합격할 수 없을 것 같다. 한 달에 300만원을 내면 시험까지 관리를 해주는 합숙학원이 있다는데 들어가야겠다. 힘들어도 방법이 없다.’

최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L(28)씨의 사연이다. 대학졸업 후 2년간 공무원시험을 준비한 L씨는 연거푸 공무원시험에 낙방한 후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해준다는 합숙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을지 상담했다. 재수생도 아닌, 대학까지 졸업한 그는 왜 합숙학원에 들어가 공무원시험 준비를 할 마음을 먹었을까.

공무원시험학원, 취업학원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젊은 층의 취업난이 가중되고 있고, 1,000명 이상 경쟁자를 제쳐야 합격이 가능한 공무원시험이기에 이를 준비하는 전문학원이 등장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대학까지 졸업한 성인이 남에게 통제를 받으면서 취업과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현실은 정상적이라 할 수 없다.

어려서부터 과잉보호ㆍ관리중독 빠져

취업과 시험 준비 과정에서 자신이 아닌 타인에 의한 간섭과 통제를 원하는 행위는 성공하기 위한 노력보다 실패와 낙오에 대한 불안심리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마음드림의원 원장)는 “돈으로 불안을 해소하려고 하지만 임시방편이기에 곧 더 큰 불안이 와서 더 큰 비용을 지출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면서 “독립심이 약할수록 불안한 상황에서 집단에게 의지하려 하는데 합숙까지 하는 것은 신경증적 행태”라고 꼬집었다.

어려서부터 입시학원 등 관리에 길들어져 성인이 돼도 ‘관리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와 학원에서 집중적으로 관리를 받았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계획을 짜거나 실천하는 것이 부족한 것이 요즘 세대”라면서 “청소년기에 자기 스스로 계획을 세워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인이 돼서도 타인의 간섭과 통제가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취업과 시험까지 합숙을 해야 성이 풀리는 문화가 자리를 잡은 것은 부모의 양육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면서 “혹여 자식들이 시험이나 취업에 떨어질까 두려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용을 투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어려서부터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겉보기와 달리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들이 많다”면서 “이렇게까지 해서 공무원시험이나 취직이 된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엔터(enter)’키 하나만 누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사회?문화적 환경도 문제다. 나해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어려서부터 쉽게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하다 보니 스스로 어떤 일을 해결하거나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져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전두엽 기능 약화

뇌에서 충동을 억제하고, 계획을 추진하는 역할을 하는 전두엽 기능이 약화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정석 건국대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전두엽 기능이 약해져 자기관리능력을 상실한 것”이라면서 “초등학교부터 성적만 잘 받으면 인정받는 삶을 살다 보니 인내력은 물론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능력이 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실천하는 역할을 하는 전두엽은 청소년기와 초기 성인기에 고도로 발달된다. 이때 전두엽이 발달해야 장래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계획을 세워 인생의 목표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와 학원 등에 의해 관리를 받다 보니 전두엽이 발달될 기회를 놓치게 된 것이다. 나 전문의는 “우리 뇌가 전반적으로 기능이 떨어진 것보다 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에 기능적으로 발달을 하지 못하다 보니 집행수행능력이 떨어진 것”이라면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경험을 하지 못해 성인이 돼서도 남에게 통제와 간섭을 받는 것이 편하고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뇌는 한번 길들어지면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하지 않으려 한다”면서 “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에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경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인이 돼도 남에게 의존하고 관리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인 청소년기에 자신이 내린 결정으로 시행착오를 경험해야 전두엽 기능이 고도로 발달될 수 있는데 입시경쟁 때문에 한번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할 시간도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혼자 떨어져 있으면 불안하고, 과정은 없이 결과만 좋으면 그만인 사회ㆍ문화적 병태도 문제다. 서 교수는 “술자리에도 남들이 자기 욕을 할까 봐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면서 “집단화 결과로 우리 뇌는 혼자 있으면 불안한 뇌가 됐다”고 씁쓸해했다. 김 교수는 “합숙은 군대 등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곳에서는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합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과는 낮은 수준의 기능밖에 없다”면서 “최근 ‘창조’‘창의’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부모의 과잉보호와 합숙에 길들어진 젊은이들이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체를 모르는 것이 문제”라면서 “이런 사람들이 공무원ㆍ의사ㆍ판사 등 사회를 이끄는 리더가 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암담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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