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앰풀 따는 순간 가루 발생, 정맥 통해 체내 유입, 배출 안돼
폐·간 등 장기 손상 가능성 병원들 필터주사기는 비싸 꺼려
제약업계선 "부작용 없다" 강변, 식약처는 알고도 사실상 방치
병원에서 주사 맞을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 미세한 유리파편이 인체 내에 흡수되고 있다. 주사제 용기인 유리앰풀 절단 시 나온 작은 유리 조각들이 주사제와 함께 인체 내 들어와 환자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문제점을 알면서도 수년째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주사제 보관용기인 유리앰풀은 구조적으로 유리파편 발생을 막지 못한다. 유리앰풀은 윗쪽 목 부분이 잘록한 유리관으로, 주사 전 목 부분을 절단해 내용물을 주사기로 빼내 사용한다. 그런데 목 부분 절단 시 미세한 유리파편이 주사액에 섞여 들어가 체내에까지 흡수되고 있다. 유리앰풀은 고온 밀봉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개봉 시 감압 상태의 공기가 급팽창하는 과정에서 유리파편이 주사액 속으로 혼입되고 있다.
유리 앰풀 개봉 시 미세 유리파편 체내 유입
주사제에 혼입된 유리 미립자들 중 큰 입자는 바닥에 가라앉지만 작은 입자들은 떠다니다가 주사기로 흡입할 때 빨려 들어와 환자의 혈액 속으로 들어간다. 박광준 전 서울대병원 소아약제과장은 “앰풀의 목 부분을 따는 순간 유리파편이 발생해 일부는 앰풀 밖으로 떨어지고 일부는 주사액 안으로 떨어진다”며 “현미경 사진으로 주사액을 찍어본 결과 많은 유리파편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남궁형욱 분당서울대병원 특수조제팀장은 “유리앰풀이 예측 불가능하게 절단되면서 유리파편이 다수 발생한다”면서 “이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V자형 홈을 낸 OPC(One Point Cut) 앰풀을 사용하고 있지만 미세한 유리파편이 주사기를 통해 체내에 흡수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맥을 통해 인체 내로 들어온 앰풀의 유리파편들은 녹지도 않고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로 인체 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혈전 생성, 패혈증 유발 등 환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인체 내 흡수된 유리파편은 가장 먼저 폐에 이르고 이어 간, 비장을 거쳐 최종적으로 신장에 도달한다. 유리파편이 폐 비장 신장 골수 뇌 등에 축적될 경우 내피세포를 손상해 혈전이나 육아종을 생성시킬 수 있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이재준 한림대춘천성심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유리파편이 혈관 내 유입되면 미세혈관을 막아 신생아괴사성장염은 물론 유리파편에 박테리아 오염이 일어나면서 패혈증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충격적인 연구결과도 있다. 2006년 10월 대한간호학회지에 게재된 ‘유리엠플 개봉 관련 요인에 따른 주사용액 내 유리조각 혼입 정도 비교’ 논문에 따르면, 1989년 미국에서 토끼에게 유리조각으로 오염된 정맥주사를 매일 투여한 결과, 32일째 토끼의 폐 모세혈관에서 유리파편이 발견됐다. 폐 모세혈관과 정맥의 출혈, 혈전 등도 관찰됐다. 또 유리조각에 오염된 정맥주사를 간헐적으로 실시한 결과 344일째 토끼의 폐에서 만성규폐증에서 볼 수 있는 크고 분리된 형태의 결핵결절양병변이 나타났고, 간은 물론 신장 비장 장벽에서도 거대 다핵세포가 유리파편과 함께 발견됐다.
폐 간 등 곳곳에 파편, 암환자도 위험
전문가들은 정맥 내 체외 이물질인 유리조각이 장기에 머무르게 되면 잠재적 위험성도 높아진다고 경고한다. 피하나 근육주사 시에는 유리조각이 주사부위에 머물러 있지만, 정맥주사 시에는 유리파편들이 혈류를 따라 여러 장기로 이동해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암환자들도 유리파편이 위험에서 예외가 아니다. 박광준 씨는 “척수에 주사하는 앰풀형 항암제 주사의 경우 유리파편이 척수액으로 들어가 주사를 통해 체내에 유입되면 척추를 타고 뇌까지 침투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유리앰풀 주사제를 많이 사용하는 중환자실, 신생아치료실 등에 장기간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이 유리파편에 노출될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지속적으로 정맥투여를 받는 어린이나 항암제를 사용 중인 환자군이 이에 해당한다.
남궁형욱 팀장은 “비타민C 등 비타민 주사와 마취유도제 주사 등은 유리 앰풀 주사제를 가장 많이 쓰고 있어 의료진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광준 씨는 “중환자의 경우 필요 시 하루 15개 이상 유리앰풀 주사제를 사용할 수 있다”면서 “소아의 경우 성인보다 혈관이 짧아 유리파편이 인체에 유입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유리입자가 인체로 유입되는 확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유리파편을 거를 수 있는 필터주사기를 사용하거나, 구경이 작은 주사기로 개봉된 유리앰풀 주사제를 흡입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말한다. 소독 솜으로 유리앰풀을 감싸면서 앰플을 개봉하는 것도 유리입자 생성을 감소시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2010년 ‘주사제 안전사용 가이드라인’을 통해 신생아 집중치료처지실 환자, 소아 및 성인 중환자실 환자, 암환자 등의 중증질환자 및 중증의 수술환자의 경우 우선적으로 필터주사제를 사용할 것을 권장한 바 있다.
필터주사기, 가격 비싸 병원 구입 꺼려
하지만 필터주사기의 경우 비급여로 책정돼 있어 병원들이 사용을 꺼리고 있다. 대학병원의 한 관계자는 “필터주사기를 사용할 경우 환자들이 추가 부담을 해야 하기 때문에 괜한 오해를 받기 싫어 기존 주사기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일반주사기 납품단가가 60원이라면 필터주사기는 500~800원대라 병원에서 비싼 돈을 들여 필터주사기를 구입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지난 2012년 국정감사 때 유리앰풀 주사제 문제점을 제기한 김태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국립대학병원조차 식약처의 ‘필터니들 주사기 사용권고’를 무시하고 있다”며 “일반주사기에 비해 값비싼 필터주사기를 구입하게 되면 병원 측 이윤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리앰풀 주사제에 익숙한 의료 환경도 문제다. 대학병원의 한 간호사는 “오랫동안 유리앰풀 주사제를 사용해 손에 익숙하다”며 “필터주사기의 경우 주사제를 필터주사기에 넣은 다음 다시 일반주사기에 주사제를 담아야 해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 간호사는 “환자들이 길게 줄 서 있는데 필터주사기나 소독솜으로 앰풀을 감싸 개봉할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식약처, 문제 알면서도 대책 마련 팔짱
제약업체들의 안일한 태도도 비판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리앰풀은 바이알(플라스틱관) 제품보다 생산단가가 싸고, 기존 생산라인에서 얼마든지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제약업체들이 유리앰풀 시장을 포기할 리 만무”라면서 “질소충전을 해야 돼 바이알로 만들 수 없는 비타민C 주사제는 물론 항암제, 마취주사제 등도 유리앰풀 주사제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도 결국 제약업체의 이익과 관계가 깊다”고 지적했다. 박광준 씨는 “바이알로 생산하다가 생산원가를 줄이기 위해 다시 유리앰풀로 전환된 주사제가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꼬집었다.
제약업계는 유리파편의 발생 가능성조차 부인하고 있다. 유리앰풀 주사제를 생산 중인 제약사 관계자는 “초보자의 경우 실수로 유리조각이 혼입될 수 있지만 절대 다수 유리조각이 혼입되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유리파편에 의한 부작용은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영업을 하면서 수없이 유리앰풀을 절단했는데 유리파편이 혼입된 적이 없다”면서 “일반인인 나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데 의료인들이 그런 실수를 할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현실부인 단계를 넘어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유리앰풀의 파편 혼입 문제점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의료계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주무부서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제품의 사용설명서에 경고문구를 삽입토록 한 것이 지금껏 식약처가 내놓은 대책의 전부다. 경고문구는 ‘앰풀주사기는 용기 절단 시 유리파편이 혼입돼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사용 시 유리파편 혼입이 최소화 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절단사용 하되, 특히 어린이, 노약자 사용 시에는 각별히 주의할 것’이라고 돼 있다. 유리앰풀 개봉 시 유리파편이 혼입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환자들에게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유리앰풀 유리조각 혼입 문제와 관련, 식약처 대변인실과 의약품안전평가과에 공식 질의를 했지만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나몰라라식 태도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마찬가지다. 병원에서 유리앰풀 주사제가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자료 공개 요청에 대해 심평원은 “유리 앰풀 청구량만 데이터화 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