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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란 이유로 살인이라니” 거리로 쏟아진 분노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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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란 이유로 살인이라니” 거리로 쏟아진 분노의 물결

입력
2016.05.1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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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출입구 이틀째 술렁

벽면에 추모메시지 갈수록 쌓여

대학가엔 ‘살아남았다’ 대자보

촛불집회 추진 카페도 가입 몰려

일부 남성 “모욕 말라” 반발도

“오프라인 추모 활동 사실상 처음

여성 혐오에 집단 감정 표출”

서울 강남역에서 18일 오후 시민들이 전날 노래방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여성을 추모 하는 메모지를 붙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서울 강남역에서 18일 오후 시민들이 전날 노래방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여성을 추모 하는 메모지를 붙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강간과 살인을 당하고 싶지 않다’고 적었어요.”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남기고 간 추모 메시지를 읽던 직장인 정모(26ㆍ여)씨는 조용히 펜을 들었다. 일터에서 근무를 마친 정씨가 40분이 걸리는 강남역까지 굳이 발걸음을 한 이유는 ‘여성들이 언제든 모르는 남성에게 해를 입을 수 있다’는 공포에서 벗어나 여성차별ㆍ혐오 없는 한국 사회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과 같은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앞으로 열리는 촛불집회 등에도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17일 새벽 서울 번화가인 강남의 한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일면식도 없던 30대 남성에게 무참하게 살해된 뒤 사건 장소 인근 강남역 10번 출입구 앞은 피해 여성을 추모하고 범죄에 분노를 터뜨리는 시민들로 이틀째 술렁였다. 출입구 벽면은 추모와 분노를 담은 메시지로 가득 덮였고 역 바로 앞에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근조화환들도 들어섰다. 보내는 이가 적히지 않은 화환에는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은 여성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특히 그동안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여성혐오 반대를 외치던 시민들이 직접 거리로 나선 것이 눈에 띄었다. 그동안 여성 대상 살인사건 등에 여성단체의 집단적인 행동은 있었지만,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가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메르스갤러리 등 온라인 활동으로 젊은 여성들이 여성혐오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지하기 시작했는데 이번 사건이 오프라인으로 나와 자기표현을 할 수 있게 한 도화선이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강남역을 찾은 학생 이모(25ㆍ여)씨는 “이런 범죄가 처음은 아니지만 전에는 여성이 피해자인 것에 문제 제기를 해도 크게 파장이 생기지 않고 끝났다”며 “일부 여성들만 불안해하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 직접 강남역을 찾았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남성들은 “왜 남자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냐”며 반발하기도 했다. 18일 오후에는 “이런 걸 계기로 여혐을 일반화하지 마라”는 문구와 함께 여성 커뮤니티 회원들을 비하하는 단어가 적힌 메모지가 강남역 외벽에 붙었다. 19일 새벽에는 극우 성향 인터넷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 한 회원이 “한 인간쓰레기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온 남성을 모욕하지 말라”는 메모지를 붙였다가 3시간 동안 주변에 있던 남녀 5명에게 비판을 받았다는 글을 올려 비난을 자초했다.

강남역에 추모 메모를 남긴 시민 김호수(26)씨는 “남성이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던 여성혐오나 차별 문제들이 모여 큰 사건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만약 남성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몰려 기분이 나쁘다면 범죄 재발을 막는 게 우선이지 더 약자인 여성에게 불만을 표하는 건 살인범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고 일갈했다.

오프라인으로 나온 여성혐오 반대 목소리는 대학가와 촛불집회로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에는 ‘#살아남았다’고 쓴 대자보가 나붙었다. 대자보를 쓴 학생들은 이 대자보를 통해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 ‘여성혐오 살인’”이라고 사건을 알리고 추모 메시지를 적게 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0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신촌에서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를 진행한다. 21일 저녁 강남역 인근에서 촛불집회를 열기 위해 개설된 ‘여성혐오범죄반대추모집회’ 카페에는 하루 만에 700여명이 가입하는 등 거리로 나온 여성혐오 반대 목소리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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