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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망고는 왜 과일에 속하지 않는가

입력
2015.03.2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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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있는 날, 우리 동네 공연장에서 듣고 싶은 소규모 클래식 공연의 장르는 무엇인가’라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들려주실 건가요? 자, 여기 삐딱한 선택지를 드리겠습니다. 1번 기악, 2번 성악, 3번 타악. 왜 삐딱하냐고요?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셨나요?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 물어 볼까요. ‘농림부로부터 1년 동안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면 과일, 채소, 망고 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자, 이제 알아차리셨나요? 망고는 과일에 속하잖아요. 사람들은 흔한 과일 채소 대신 희귀한 망고에 현혹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굳이 독립시켜 물었다는 것은 망고를 강조하고 싶은 질문자의 의도일지 모릅니다. ‘타악’도 망고처럼 쉽게 접하지 못하는 장르입니다. 한해 입학한 음대생 120명 중 단 2명이 타악 전공자일 정도로 음악인구 자체가 적으니까요. 그리고 엄연히 기악의 범주에 속해야 합니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융성위원회가 주최하는 ‘문화가 있는 날’입니다. 전국 각지의 공연장에서 무료로 음악회를 감상할 수 있지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하우스 콘서트’의 노력과 국가의 경제적 지원 덕택이었습니다. 얼마 전,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는 공연장 관계자를 대상으로 사전수요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설문의 선택지는 독주와 앙상블로 세분화 되었는데, 과일가게(기악)에서 유독 망고(타악)를 독립(혹은 강조)시켜 묻고는 다음과 같은 설문 결과를 얻었습니다. 기악독주(10%), 기악앙상블(29%), 성악독창(11%), 성악합창(19%), 타악독주(6%), 타악앙상블(25%).

이 설문 결과는 올 한해 ‘문화가 있는 날’의 강력한 지침이 되었습니다. 전체 음악회의 31%를 타악기로 편성해야 하는 것이죠. 희귀하고도 희귀한 타악기 주자들을 섭외하기 위해 난리가 났습니다. 타악기 주자들은 신이 났겠다고요? 아니요, 꼭 그렇지 만도 않습니다. 타악기는 부피가 크고 운반이 어렵거든요. 레퍼토리도 제한적이어서 20세기 이후 현대음악에 편중되어 있습니다. 타악기만 등장하는 작품은 과일가게 망고보다도 더 희귀해서요. 대게 다른 악기와의 협업으로 연주됩니다. 바르토크의 ‘현과 타악기,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처럼 말이지요. 게다가 음악회의 지원금은 약 200만원. 여기에 연주자 개런티와 악기 운반비, 스태프 인건비 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음악계의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 설문의 오류를 지적하자, 정책결정자로부터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한 번 만든 카테고리는 변경될 수 없다.” 아, 관치행정은 왜 이토록 전형적일까요. “국민들이 타악기를 원한다는데 기악으로 분류해버리면, 구체적으로 선택할 수 없지 않느냐” 공연 관계자를 평범한 국민의 표본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요? 이들은 과일을 풍성히 섭취하는 청과물 가게의 직원과 같아 보통의 과일에 싫증난 것은 아닐까요. “클래식 타악 공연이 힘들다면 대중적인 영화음악도 좋겠다.” 망고 슬러쉬, 망고 사탕과 같은 괴이한 변형을 도모해야 하는 것일까요. “난타와 사물놀이는 클래식 공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도 애써 피력해야 했습니다. 정책 결정자의 무지와 맞선 절망적 장면이었던 것이지요. 난타와 사물놀이는 ‘클래식 공연’의 범주에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별도의 범주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사업이 존재합니다.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관의 지침을 ‘농림부의 망고 정책’으로 에둘러 토로해준 ‘하우스 콘서트’측에 많은 음악가들이 공감과 분노를 표하고 있습니다. 작년 한해, 836명의 음악가가 전국 각지 250여개의 무대에 설수 있었습니다. 국가보다 먼저 움직여 새로운 문화를 일군 ‘하우스 콘서트’ 기획자의 자발적 의지 덕택이었지요. 그러니 예술과 현장에 관한 정책기관 실무자들의 몰이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음악계에 새로운 불씨를 독려하지 못할지언정 찬물을 끼얹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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