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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을 견디는 법… 덴덕후, 스덕후를 아시나요

입력
2017.05.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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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덕후(덴마크 덕후)와 스덕후(스웨덴 덕후)들이 모였다. 북유럽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부 모임인 ‘북유러브’ 회원들이 지난달 모임에서 프리허그를 하고 있다. 북유럽을 배운다는 건 이들에게 헬조선을 견디는 방법 중 하나다. 이눅희씨 제공
덴덕후(덴마크 덕후)와 스덕후(스웨덴 덕후)들이 모였다. 북유럽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부 모임인 ‘북유러브’ 회원들이 지난달 모임에서 프리허그를 하고 있다. 북유럽을 배운다는 건 이들에게 헬조선을 견디는 방법 중 하나다. 이눅희씨 제공

지난달 20일 저녁 서울 연남동의 북유럽 전문 레스토랑 스뫼르에 다양한 연령, 직업을 가진 3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덴마크의 대표 음식인 오픈샌드위치와 건강 주스, 차를 함께 나눠 마시는 이들은 ‘북유러브’ 커뮤니티 회원들이다. 지난해 커뮤니티를 만든 이정민(43)씨는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북유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북유럽의 작은 것이라도 알고 싶고, 접하고 싶은 이들도 늘고 있습니다. 함께 북유럽에 대한 경험을 얘기하며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모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두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는데 입소문이 나서 그런지 참가자도 늘고, 참가하고 싶다는 이들이 줄을 서고 있어요.”

세 번째인 이날 모임은 처음 참가한 신입 회원들이 자기 소개를 하고 환영 인사를 겸한 포옹을 한 뒤 북유럽여행전문가 김희진(39)씨로부터 ‘디자인을 주제로 북유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여행 꿀팁’ 발표로 진행됐다. 모임 때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휴먼 북’이라는 이름으로 북유럽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나 특정 분야에 대한 자료를 발표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덴덕후(덴마크 덕후)’ ‘스덕후(스웨덴 덕후)’ ‘핀덕후(핀란드 덕후)’ ‘노덕후(노르웨이 덕후)’ ‘아덕후(아이슬란드 덕후)’. 50대 사업가, 40대 사진작가, 30대 가정주부, 20대 대학생 등 연령대와 직업이 제각각인 이들을 묶어주는 것은 북유럽에 대한 애착이다. 교환학생, 유학, 워킹홀리데이, 여행 등으로 북유럽을 접한 이들도 있고, 직접 가보지 못했지만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북유럽에 빠진 이들도 있다.

북유럽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북유러브' 회원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연남동 북유럽 전문 레스토랑 '스뫼르'에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배우한 기자bwh3140@hankookilbo.com
북유럽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북유러브' 회원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연남동 북유럽 전문 레스토랑 '스뫼르'에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배우한 기자bwh3140@hankookilbo.com

가족과의 따듯한 삶에 빠지다

이씨는 “세련된 북유럽 디자인의 물건을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고, 북유럽 스타일의 가구를 사고, 한국과 너무 다른 북유럽의 교육 방식에 관심을 갖는 것이 입문 단계라 할 수 있어요. 나아가 많은 이들이 북유럽의 시스템, 삶의 방식, 가치관을 알고 이를 자신의 삶에 접목시키려 합니다”라고 말했다. 북유럽 덕후의 첫발은 북유럽 국가들이 늘 흐린 날씨 속에 살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지, 북유럽 사람들이 어떤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갖고 있길래 늘 모델 국가로 거론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취업, 육아, 직장 생활, 사업 등 일상생활에서 출구 없이 꽉 막힌 한국의 대조적인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헬조선을 견뎌내기 위한 돌파구를 북유럽에서 찾고 싶어하는 것이다.

남편, 두 아이(고1, 초6)와 호주에서 8년 동안 살다 돌아온 경험이 있는 김희수(43)씨는 요즘 덴마크 ‘휘게’(Hyggeㆍ아늑함 따뜻함을 가리키는 덴마크어로 일상의 행복을 중시하는 것)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고 한다. “호주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문화지만 북유럽하고는 다른 느낌입니다. 호주에서도 바비큐 먹고 맥주 마시며 즐기지만 그것이 전부에요. 반면 덴마크의 휘게는 집에서 촛불을 켜고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따뜻함이 있어요. 마치 어렸을 적 시골에 가면 굴뚝에서 연기가 나고 밥 짓는 구수한 냄새가 퍼져 나오는 그런 분위기라고 할까요. 한국의 정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요즘 김씨는 특히 덴마크 음식에 푹 빠져 있다. “평소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덴마크의 오픈샌드위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호밀빵에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신선한 재료를 얹어 먹으면 되는데, 정성이 담기고 건강한 홈 메이드 요리죠. 친정 식구들에게도 알려 줬는데 매우 좋아했어요. 집(남양주)에서 오는 데에 꽤 시간이 걸리지만 모임에 또 와서 이것저것 배우고 싶네요.” 김씨는 다음 가족여행을 덴마크로 가기로 남편과 뜻을 모았다.

식품 유통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이민우(44)씨는 핀란드에 한번도 간 적이 없지만 삶의 절반 이상이 핀란드라고 했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그는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8분짜리 교향곡 ‘핀란디아’에 완전히 반해 이 나라에 푹 빠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핀란드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관련 책이나 사진 자료를 마구 모았다. 주제도 디자인부터 사회민주주의까지 가리지 않았다. 현재 소장 중인 북유럽 관련 책만 110권이 넘는다고 한다. 책이 너무 많아 집에 둘 공간이 모자라자 차 트렁크에 책장을 짜 넣고 다닌다. 그렇게 책을 통해 모은 정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퇴근 뒤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핀란드 관련 책을 보고 블로그에 글과 사진 등을 올리는 데 주로 시간을 보낸다. 최근 주말에는 핀란드 라이프 스타일과 디자인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다녀왔고, 핀란드 대사관 관계자나 한국에 있는 핀란드인들과 꾸준히 교류를 하고 있다.

2013년 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직후 핀란드는 이씨에게 더욱 마음 깊이 다가왔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재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직장이다 뭐다 하며 아무래도 가족과의 관계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게 새삼 후회스러웠어요. 그 때 문득 북유럽 사람들의 가족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핀란드 사람들의 행복의 원천은 회사나 조직이 아닌 가족이라고 알고 있어요. 행복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씨는 올 추석 연휴에 그토록 바라던 핀란드 여행에 나선다. 최대한 길게 다녀오기 위해 추석 연휴를 골랐고, 적금 붓듯 여행경비를 마련했다. 핀란드에 가서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설레기만 한다.

북유럽 공부 모임 '북유러브' 정기 행사에 참석한 한 회원이 활짝 웃고 있다. 이눅희씨 제공
북유럽 공부 모임 '북유러브' 정기 행사에 참석한 한 회원이 활짝 웃고 있다. 이눅희씨 제공

헬조선의 탈출구 북유럽

올 여름 덴마크로 유학을 떠날 예정인 강모(27)씨는 지난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6개월을 지냈던 교환학생 경험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그는 삶의 목적지를 아예 덴마크로 정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는 당초 미국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하려 했다. 교환학생도 캐나다로 가려 했다. 그러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덴마크로 계획을 변경했는데 이 우연이 인생의 계획을 바꾼 것이다.

“다들 행복한 나라, 좋은 나라라고 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처음 도착했을 때 흐리고, 비 오고, 해일까지 오는 날씨를 보고 역시나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날씨에 가려져 있던 덴마크의 매력이 다가왔죠. 특히나 돈, 돈, 돈 하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하루 열심히 일하면 하루, 이틀 일하면 1주일치 식재료비를 마련해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요리해 먹으면서도 행복해 하는 덴마크 사람들 모습에서 과연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강씨는 “저를 비롯해 한국 사람 대부분이 미국식 자본주의가 규정한 행복에만 집착해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도 매우 달랐어요. 높은 점수, 좋은 학점을 위해 또래끼리 경쟁하고 에너지를 다 써야 하는 한국과 달리 항상 토론식으로 진행하며 점수를 위한 공부가 아닌 취업 혹은 지식을 쌓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도 그렇고요. 덴마크가 왜 혁신을 선도하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강씨는 덴마크에서 창업 관련 공부를 한 뒤 자기 사업을 차릴 계획이다.

2011년 대학 3학년 때 스웨덴에서 교환학생 학기를 보낸 양모(27)씨는 2015년 취업 후 첫 여름휴가를 스웨덴으로 다녀왔다. 2012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스웨덴 친구의 집을 찾아간 여행이었다. 지금도 양씨는 북유럽 관련 강의를 찾아 듣고, 틈틈이 스웨덴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스웨덴이 한국과 가장 큰 차이가 사소한 부분까지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약속을 철저히 지킨다는 점이었어요. 학교에 무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리필은 안 됩니다’라고 쓰여있으니 단 한 사람도 리필하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이런 점이 모여서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좋은 사회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사람들에게 북유럽의 이런 점들을 설명하면서 우리 사회도 조금씩 나아지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북유럽의 삶은 어쩌면 너무 심심하고 단조로운지도 모른다. 세금을 많이 걷어야 복지가 가능하며, 1등이 아니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건 너무 뻔한 상식인지도 모른다. 그 단순한 삶에서 우리는 바로 곁에 있지만 잊고 있었던 것을 비로소 발견한다. 경쟁이 아닌 공존을, 행운이 아닌 행복을.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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