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시민들로 가득 차겠죠, 빈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요. 그 사이로 제가 들어가는 겁니다, 둘둘 말아놓은 500m 길이의 천을 천천히 풀면서. 그럼 시민들 사이로 길이 열릴 거에요,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말입니다.”
민중미술가 임옥상(66)이 예상한 26일 서울 광화문 총궐기의 한 풍경이다. 그는 이날 오후 3시부터 광화문 사거리에서 대한문까지 거리에 길이 500m, 폭 1.5m의 흰 천을 펼치며, 양손에 대형 붓을 들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새긴다. 퍼포먼스 이름은 ‘백만백성.’ 퍼포먼스가 끝나면 시민들과 함께 긴 천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한다.
임 작가는 24일 한국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어떤 분들이 현장에 나오실 지, 어떤 목소리가 터져 나올지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 지 전혀 알 수가 없기에 기대되고 설렌다”고 말했다.
비슷한 퍼포먼스는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쳤던 촛불 집회서도 진행했다. 당시 임 작가는 이명박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100m 길이 천을 바닥에 깔았고, 시민들은 여백의 공간을 자신의 글로 채웠다. 이어 그는 가운데 총이 한 가운데를 찢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시민들의 환호가 “한마디로 엄청났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비슷하게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라고 임옥상 작가는 선을 그었다. 발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 종이 위에 남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각적 효과도 크다. “시민들이 직접 쓴 글씨는 크기가 작아 보기 어려웠지만, 이번에는 1.3m 길이의 거대 붓을 이용해 제가 대신 작성하기 때문에 알아보기 쉬울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천의 길이도 5배나 늘었다.
기획자조차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퍼포먼스를 앞두고 그는 시민의 ‘힘’에 신뢰를 보냈다. “아마 시민들에게 양해의 말씀을 구할 일도 많을 거에요. 천을 미리 깔아놓는 게 아니기 때문에 천을 펼치는 과정에서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요청도 해야 하고, 작업이 끝난 후 500m나 되는 천을 들고 청와대로 가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힘이 필요하니까요.”
임 작가는 “이 과정에서 분명 새로운 집회 문화가 탄생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천을 들고 이동하면서 구호를 외칠 수도 있고, 천으로 파도를 탈 수도 있겠죠. 이런 시민들의 행위들 하나하나가 모여 하나의 축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 그는 “천을 함께 들고 행진하며 시민들은 개별 시민으로 집회에 참여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가슴 벅찬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올해 상반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민중미술 재조명 움직임 속에서 1980년대 민중미술을 이끈 대표인사로서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왔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나고 또 자신의 이름이 속해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더욱 바빠졌다.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를 선언하며 그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블랙리스트에 대해 그는 “늘 당해왔던 처지라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는)매우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졌다”고 의외로 담담하게 말하며 “‘블랙리스트’ 예술가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건 ‘블랙리스트’로만 끝난 게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주 그는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며 박을 터뜨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퍼포먼스 이후 동료 예술가들에게 “더 이상 못하겠다. 나도 내 작업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엄살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26일이 가장 중요한 집회다. 중요한 순간 빠지면 어떡하냐”는 동료들의 만류에 ‘못 이기는 척’ 다시 거리로 나오겠다 결심했다. “미술계뿐만 아니라 연극계, 문학계, 건축계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요. 믿기 힘든 엄청난 드라마가 전개되고 있으니까 눈을 뗄 수가 없고 다른 일을 할 힘도 없는 거죠.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심각하잖아요, 상황이.”
“민주화 운동사에서 정말 중요한 순간이에요. 민주화의 정점을 찍는 엄청난 시간과 공간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 현장에 나온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그래서 가치가 있고, 저는 그걸 기록하겠다는 거고요.”
임 작가는 “삼보일배도 하는데 겨우 500m 못 채우겠어요? 이러려고 내가 그 동안 체력 단련을 했나 봅니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치며 이렇게 덧붙였다. “저도 럭비공 같아서 현장에서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어요. 붓을 가지고 갔지만 칼춤을 추게 있을 수도, 천 위에서 뒹굴고 있을 수도 있겠죠.”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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