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투자 등 모든 분야에서 과거 11번 중 회복세 가장 미약
저금리에 가계 빚 늘어 위험, 미국 독자 성장 계속될 땐 최악
우리 경제가 과거 일본이 겪은 장기침체 국면에 이미 접어들었다는 경제학자들의 진단이 나왔다. ‘일본식 장기침체’ 답습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지만 이미 ‘한국형 장기침체’가 시작됐다는 얘기다. 학자들은 또 내년 세계 경제가 각국의 상반된 경제상황과 맞물려 지금까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스타트렉 존’(영화 스타트렉에서 탐험하는 미지의 영역)이 될 것이라며 자칫 우리 경제가 큰 충격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29일 홍종학(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실 주최로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2015 한국경제, 디플레이션인가 장기침체인가’ 좌담회에 참석한 박종규(이하 가나다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성태윤 연세대 교수, 안동현 서울대 교수, 이동걸 동국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등 경제학자 5명은 최근 국내외 경제 상황을 냉정하게 진단했다. (▶좌담회 전문보기)
우선 국내 경기상황의 심각성. 박종규 연구위원과 성태윤 교수는 “한국형 장기침체가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연구위원에 따르면, 1972년 이후 반복된 11번의 경기 회복기 중 2012년 4분기 이후 최근까지의 경기 회복세가 소비, 설비투자 등 모든 분야에서 가장 미약한 수준이다. 박 연구위원은 “장기침체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게 아니라, 회복기에 못 올라가고 하락기에 뚝 떨어지는 걸 반복하면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라며 “일본 역시 1991년부터 시작된 장기침체를 1997년쯤에야 인식했다”고 주장했다.
성 교수는 장기침체와 더불어 디플레이션 역시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일본도 20년 장기불황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였던 시기는 절반 정도였다. 당장 물가상승률이 플러스 상태이니 디플레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상황 판단을 호도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특히 안동현 교수는 “스타트렉 영화가 시작하면 ‘사람이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간다’고 얘기하는데 전문가들은 바로 내년을 ‘스타트렉 존’이라고 한다”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저성장 등 일찍이 보기 힘들었던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홀로 회복세에 있는 미국과 나머지 국가들 사이의 상호작용 결과에 따라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미국 경제가 나머지 국가들을 견인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반대로 미국마저 나머지 나라들의 불황에 휩쓸릴 경우 최악의 상황이 올 텐데, 이 역시 가능성은 낮게 봤다. 가장 현실성이 높은 건, 미국이 여타 국가 상황과 선을 그은 채 홀로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시나리오다. 이럴 경우 우리 경제에도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게 안 교수의 주장이다.
학자들은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려면 근본적이면서도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동걸 교수는 “가계부채 같은 구조적 취약점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종국에는 미국, 중국 등 경제대국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성인 교수는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년층 빈곤을 어떻게 해결하고 젊은 층의 생계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비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문했다.
김진주기자 pearlkim7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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