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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93.끝)연재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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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93.끝)연재를 마치며

입력
2002.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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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께.일산 국립암센터 병실에 누워있으면 창 밖으로 산이 보입니다. 전에는 진달래가 한창이더니 어느새 녹음이 짙어졌습니다.

그 사이 아카시아 하얀 꽃은 어찌나 많이 피었던지요. 집사람은 그 하얀 색이 싫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까닭인지 불길하게 보인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매미가 시끄럽게 울지만 어느덧 단풍이 들겠지요.

이제 ‘나의 이력서’를 끝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나의 이력서’ 한 귀퉁이에 제 캐리커처를 넣어달라고 신문사에 부탁한 게 엊그제 같습니다. “이왕이면 웃는 얼굴로 그려달라”고 했지요.

3월18일 첫 회가 나갔으니 벌써 5개월째입니다. 차분히 제 인생을 돌이켜 보며 여러분에게 좋은 말씀 많이 들려드리려 했는데 제대로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던 제 인생은 ‘나의 이력서’ 안에서 다시 한번 꿈틀거렸습니다.

홍콩으로 납치된 사연을 쓸 때면 다시 숨이 막혀왔고, 조용필(趙容弼)과 부산 해운대를 쏘다닌 이야기를 할 때면 커다란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말기 폐암 선고를 받은 이 이주일이가 다시 수천 명 관객 앞에 선 환상도 보았습니다.

힘든 적도 많았습니다. 특히 국회의원 시절을 전후로 한 4, 5년 세월은 제게는 참으로 지루하고 재미없던 때였습니다. 글 쓰기도 왜 그렇게 어려웠던지요.

그래도 고 정주영(鄭周永) 회장과 대선 유세를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강원도로 가던 때를 회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딨어?”라는 그 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보람도 있었습니다. 기억 나십니까? 월드컵이 끝난 후 저는 ‘나의 이력서’에 이제부터라도 원로 축구인을 대접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온 국민이 어린 선수들에게만 모든 영광을 돌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박종환(朴鍾煥) 감독이 다음날 이러더군요.

“역시 주일이가 다르구나.” 아무리 차두리가 유명해졌어도 차범근(車範根)씨를 ‘차두리의 아버지’라고 불러서는 안 되겠지요. 차범근씨의 아들이 차두리인 것입니다.

‘나의 이력서’를 통해 금연 홍보도 많이 했다고 자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다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좋은 성과를 보였던 금연 열풍이 한풀 꺾였다는 소식입니다. 무척 마음이 아픕니다.

다시 담배를 피신 분들에게 따지겠습니다. 대체 왜 그러십니까?

혹시 “이주일 보니까 폐암도 별 것 아니네. 오늘 내일 한다더니 아직 멀쩡하잖아?”라고 생각한 겁니까.

그분들은 아마 제가 죽어야 담배를 끊으라는 말을 믿을 것 같습니다. 국민 건강을 위해서는 제가 빨리 죽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제발 제가 죽는 날이 금연광고가 성공하는 날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끝으로 분당 자택까지 먼 길을 방문해주신 장재구(張在九) 한국일보 회장과 장명수(張明秀) 사장, 그리고 제 글 쓰기에 격려를 아끼지 않은 최규식(崔奎植) 편집국장과 서화숙(徐華淑) 문화부장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 이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오래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이주일

※이주일씨의 '나의 이력서' 연재를 마치면서 절친한 지인 두 분의 글을 후기로 싣습니다. 25일(목)에는 박종환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이씨와의 평생 우정을 감회 어린 목소리로 얘기합니다. 26일(금)에는 김정남 전 국민당 국회의원이 가까이 지켜 본 '정치인 이주일'을 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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