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제 국정연설은 그가 한 말보다 하지 않은 말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그는 북핵이 미국 본토까지 위협한다며 ‘최대 압박’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정부의 기존 입장에서 볼 때 새로울 게 없는 얘기다. 주목할 것은 그가 평창올림픽이나 이를 계기로 펼쳐지고 있는 잇단 남북교류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평창을 통한 남북대화를 비핵화 북미대화로 이끌겠다는 게 우리 정부 생각이다. 그가 이런 해법을 존중했다면 북핵 문제를 꺼낸 마당에 평창의 남북교류를 거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현재 한반도 문제의 최대 이슈는 평창올림픽과 남북대화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지옥 같은 인권상황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언급하면서도 평창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는 미국이 평창을 고리로 한 남북 해빙기류를 그리 무겁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대화의 손을 내민 것은 제재와 압박을 회피하려는 위장전술 성격이 짙고, 여기에 한국 정부가 이용당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 트럼프 정부의 눈은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평창 이후’에 가 있다. 마식령 스키장으로 가는 우리 전세기가 미국의 제재 예외조치 인정을 받지 못해 이륙 직전까지 공항에 발이 묶였던 것이 좋은 예다.
주한 미국 대사로 내정됐다가 낙마한 빅터 차에 관한 논란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미국 언론의 보도 이후에야 “아그레망을 준 이후에도 절차가 진행되지 않아 이상기류를 느꼈지만 내정 철회는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했다. 주미 한국 대사관은 언론보도 이후에도 “실체가 파악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백악관이 알려주지 않으니 모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만에 하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그레망까지 받은 대사 내정을 철회하고도 우리 정부에 일절 알리지 않은 트럼프 정부의 무성의가 두드러진다. 미국이 과연 동맹국인 한국을 존중하고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백악관이 내정 철회를 이미 한 달 전에 결정했다는 소식은 더욱 충격적이다. 정부가 “백악관이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전에 외교정보력의 빈곤을 반성하는 동시에 양국 사이에 틈이 벌어진 것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양국이 동맹으로서의 최소 의무와 책임조차 등한히 한다면, 찰떡공조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북핵 문제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인가. 특히 우리 외교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