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신종플루 전쟁 치르고
전문성 높인다더니… 역부족
'병원 내 감염' 관리 조직도 없어
질본 직원 60%가 비정규직 한계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공포가 갑자기 나타나자, 당황한 정부는 촘촘한 방역망을 칠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런 반성 뒤 이듬해 1월 질병관리본부(질본)가 탄생했다. 2009년 이번에는 신종 전염병 신종플루와 전쟁이 벌어졌다. 사태가 진정된 이듬해 11월 보건당국이 내놓은 백서에는 질본 강화에 대한 반성과 주문이 담겼다. 6년 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백서는 전염병 대응 전문성이 필요하고, 연구인력과 행정력이 확충돼야 하며, 질병 정보를 해외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로부터 다시 6년 뒤인 2015년, 의료인들조차 생소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덮쳤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도리어 악화됐다. 같은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재연되는 것인데, 질본 안을 들여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었다.
‘책상머리’ 대응의 현실
질본은 10년 넘게 무기력한 복지부 산하 기관에 머물러 있다. 2011~13년 본부장(4대)을 지낸 전병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말이 질병관리본부지, 감염병이 창궐한 현지에 가 조사할 수도 없다. 인터넷으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의 정보를 보고 그걸로 끝내는 상황이다.” 질본의 2013년 백서는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백서는 ‘메르스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지적과 함께, 그 해 8월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메르스 의심환자에 대한 조사 기록을 공개했다. 하지만 실제 감염환경과 경로, 환자 증상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는 없었다. 당시 이런 역학조사가 진행됐더라면 이번 사태에서 질본의 대응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 이유에 대해 정은경 질본 질병예방센터장은 지난 24일 “전문인력이 없어서”라고 설명했다.
세계에서 메르스 경험이 가장 많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르스는 ‘병원 내 감염’이 대부분이었다. 한국형 메르스 확산도 보건당국이 강조한 대로 ‘의료기관 내 감염’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질본에는 별도의 ‘병원 내 감염관리’ 조직이 없다. 2010년 질본에서 ‘병원들 내부 감염관리와 관련된 연락 책임자와 그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작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년 뒤에 동일한 사안이 재 추진됐으나 예산문제로 다시 무산됐다. 규정상 200병상 이상 병원은 감염관리실을 운영하도록 한 것도 보건당국의 병원감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이런 사정이니 이번 사태에도 ‘밀접접촉(2m), 1시간 이상 접촉’같은 경직된 국제기구 지침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셈이다. 이번 사태에서 입증됐듯이 전염병은 세계 각국과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질본에는 국제협력 전담부서가 없어 국제기구에서 전화를 걸어와도 이를 응대할 조직이 따로 없는 실정이다. 홍보업무의 경우 예방의학을 전공한 감염병관리과장이 겸하고 있다.
전문인력 진출 길 막힌 질본
질본의 한계는 독립성과 인력, 예산 등의 소외가 초래한 측면이 크다. 2004년 보건학 박사인 김화중 장관을 빼면 줄곧 정치인이나 관료 등 비전문가가 복지부 장관에 임명돼 ‘복지’중심으로 조직을 이끌었다. 복지부 올해 총 예산 53조4,000억원에서 보건의료 부문은 2조2,793억원(4%)에 그친다. 1급(실장급)인 본부장도 공모제이지만 그간 복지부에서 공공보건정책관 등 요직을 지낸 관료들이 가는 게 관행이었다. 임기는 ‘2년+a’로 정해져 있으나 윗선의 입김이 세다는 게 전직 본부장들의 얘기다.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인사를 복지부가 하니 적재적소에 전문 인력을 두기 어렵고, 정권에 따라 보직이 휘청거리니 가려던 의사들도 고민만 거듭한다”고 말했다.
더구나 석박사 출신 연구원조차 계약직이라 전문인력 확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질본 전체 직원 420~430명의 60%가 비 정규직이다. 6년 전 신종플루 때부터 국정감사 때마다 지적되는 사안이지만 그 누구도 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질본에는 내과 전문의는 있지만 감염내과 전문의는 없고, 역학조사관 34명 중 예방의학을 전공한 연구관급 의사공무원은 1명뿐이다. 여기에 공중보건의가 32명, 수의학 전공자가 1명이다. 이번에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 통과로 역학조사관이 두 배인 64명으로 늘지만, 최소 100명은 돼야 적절한 역학조사와 방역 조치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2007~11년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이종구 서울대 의과대 교수는 “서울과 떨어진 충북 오송에 본부가 있어 유능한 인력을 구하기 힘든데다 비정규직 대우로 일과 이후 일하기를 꺼린다”고 했다. 그는 “역학조사관의 경우 일이 고된 만큼2,3년 현장 경험을 쌓게 한 뒤 보직을 줘 전문인력으로 양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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