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소영 기자

등록 : 2017.09.08 11:51
수정 : 2017.09.10 21:48

성평등 교육 하자는데 ‘전교조냐, 항문성교 가르쳤냐’니

[사소한소다]<49>성평등 교육 교사를 향한 수상한 항의

등록 : 2017.09.08 11:51
수정 : 2017.09.10 21:48

지난 7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초등성평등연구회,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민주노총여성위원회,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등 '페미니즘 교육과 페미니스트 교사를 지지하는 단체'들이 '페미니스트 교사 공격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가진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제공

최근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진행하는 교사와 학교가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학생들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기 위한 교사들의 교육이 정치적 공격을 받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 7일 페미니즘 교육과 페미니스트 교사를 지지하는 단체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페미니스트 교사들에 대한 공격을 멈출 것”을 촉구했다.

초등성평등연구회, 정치하는엄마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이하 띵동), 민주노총여성위원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한국여성의전화 등 시민단체 20여곳이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이들은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고 이를 실천하는 교사들이 일부 네티즌들과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들로부터 민원 폭탄과 집단 공격을 당하고 있다”며 “반인권적이고 반성평등적인 혐오세력을 더는 좌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가진 이유는 지난 7월 한 인터넷 언론과 페미니즘 교육을 주제로 인터뷰를 한 초등학교 교사 B씨에게 과도한 비난과 조직적 항의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B교사는 인터뷰에서 “왜 여자아이들은 운동장을 갖지 못하냐”며 “초등학교 운동장은 여자아이들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노는 것은 남자아이들”이라며 “교사들이 이를 보고 남자아이들이라 뛰어노는 것을 좋아한다고 흐뭇해 하면 안된다. 왜 여자아이들은 운동장을 갖지 못하는지, 신체적인 활동의 장을 남자아이들이 다 전유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B교사의 인터뷰 영상은 인터넷에서 수십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하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남성 이용자가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 일부 네티즌들이 B교사에게 ‘남혐(남성혐오) 교사’라는 비난과 함께 신상정보를 파헤쳤다. 또 소속 학교와 담당 교육청에도 항의성 전화를 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평등 교육교재를 개발하는 교사들의 모임인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교사 C씨는 “B교사가 언급한 운동장 문제는 서울시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여학생 신체활동 프로젝트를 언급한 것”이라며 “이 사업은 달리기나 축구부 신설 등 여학생의 체육활동 증진에 예산을 투입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도 교육청에서 두 번이나 성평등 교육을 강조하는 공문이 내려왔는데 페미니즘 교육을 남혐으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성평등 교육 교사에게 “전교조냐, 항문 성교를 가르쳤냐”며 집단 항의

이후 B교사에 대한 산발적 비방은 일부 단체들의 조직적 항의로 바뀌었다. 학교인권조례폐지운동본부와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전학연) 등 보수 시민단체와 보수 학부모단체들은 성명서를 내고 지난 5일 서울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앞에서 B교사의 파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B교사의 사회관계형서비스(SNS) 계정에 게시된 그의 책상 사진을 문제 삼아 동성애 조장 교사라고 비난했다. 사진에 성소수자들의 축제인 퀴어 문화축제에서 판매한 물품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B교사가 동성애를 학생에게 권유하는 교사”라는 공격과 함께 “학생에게 항문성교를 가르쳤다”는 확인되지 않은 비방까지 쏟아졌다. 인권단체들은 보수 단체들이 성명서에 ‘항문섹스는 인권이다, 정말 좋단다’, ‘남자는 다 짐승?’ 등의 표현을 마치 B교사가 사용한 것처럼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메갈’, ‘한남충’ 등 이성을 공격하는 은어를 사용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손해배상청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학연은 공격을 전교조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게로 확대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해당학교 교사 전원이 전교조라는 제보가 있다’, ‘해당학교 교장도 조 교육감의 선거공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출범한 전학연은 교육감 직선제 폐지, 교원 경쟁 우선하는 교원개혁, 전면 무상급식 및 전면무상보육정책 수정, 학생인권조례 거부 등을 요구해 왔다.

뿐만 아니라 공격은 성평등 교육을 표방하는 교사들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교사 C씨도 항의전화에 시달렸다. C씨는 “강남 초중고 대표 학부모라고 밝힌 사람이 전화를 해서 대뜸 그 학교 교사들이 전교조냐, 항문 성교를 가르쳤냐는 항의를 했다”고 말했다.

인권단체들은 민원에 위축될 수 밖에 없는 교사들의 상황을 보수단체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욜 띵동 대표는 “단체들이 정확한 사실 파악 없이 반 동성애 입장만 갖고 학교와 교사를 공격해 교사들이 계속 위축되는 상황”이라며 “교사의 입을 막으면 학생들이 다양한 소수자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고 성인이 될 수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가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 폐기를 위한 16,698명 서명 제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성차별하는 학교성교육표준안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도 도마에 올라

교육부가 제시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도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30일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인권단체들은 학교 성교육 표준안 폐지 서명운동에 1만 6,698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교육부에 서명을 전달하며 “보수적 성 관념으로 차별을 재생산하는 성교육표준안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2015년 3월 교육부가 성교육을 체계화하겠다며 6억원을 들여 제작해 각 학교에 배포한 성교육 가이드라인인 성교육 표준안은 인권단체들로부터 인권침해적이며 시대를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표준안은 ‘여성은 무드에 약하고 남성은 누드에 약하다’ 등의 문구와 성폭력 예방법으로 만원 지하철에서 가방끈을 길게 해서 뒤로 메는 방법을 제시해 논란이 됐다.

더불어 표준안이 성소수자들을 외면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정욜 대표는 “성소수자 논의는 등장하지도 않고 교사들에게도 ‘성적지향’이라는 단어를 아예 쓰지 말라는 지도 지침을 담아 학교가 성소수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도록 만든다”고 지적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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