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진행된 ‘사법농단’의 후폭풍이 법원 안팎에서 거세다. KTX 해고노동자들이 사상 초유의 대법정 점거 시위를 하는가 하면 ‘통합진보당 재판’과 ‘전교조 시국선언 재판’ 당사자들도 반발하고 있다. 전국 각급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예정돼 있고 전국법관대표회의가 6월 11일 임시회의를 열기로 하는 등 내부 분위기도 심상찮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양 전 대법원장 등 관련자들에 대한 고발 여부를 숙고하고 있지만 사법부가 이 문제를 덮고 넘어갈 상황은 이미 지났다.
애초 특별조사단이 사법행정권 남용의 실상을 파악하고도 적당히 넘어가려 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조사단은 25일 밤늦게 조사보고서를 내면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수백 쪽의 보고서를, 그것도 마감이 임박한 시간에 언론에 던져 놓고는 알아서 쓰라는 식이었다. ‘양승태 대법원’ 체제의 잘못은 파헤쳤지만 법원 조직에 대한 외부 개입은 피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보고서에서 “재판 독립은 침해했지만 고발할 정도는 아니다”는 결론을 내린 데서도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사법적폐’ 청산을 내걸고 1년여 동안 세 차례나 조사한 명분을 스스로 깎아 내리는 처사다.
특조단이 조사과정에서 확보한 410건의 문건 중 단 3건만 내용을 공개한 것도 떳떳하지 않다. 나머지 407건의 제목만 봐도 사태를 축소하려 했다는 의구심이 든다. 가령 ‘BH(청와대) 민주적 정당성 부여 방안’ ‘VIP(대통령) 거부권 정국 분석’ ‘한명숙 판결 이후 정국전망 및 대응전략’ 등의 문건은 청와대나 여당에서 만든 것이 아닌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하지만 특조단은 최종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는 하지도 못했다. 이번에도 ‘셀프 조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셈이다.
법원행정처가 판사 뒷조사를 하고 청와대와 재판을 거래한 정황이 드러난 것만으로도 사법부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이런 마당에 어느 시민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를 바로 세우는 심정으로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사법개혁의 무거운 책임을 안고 출범한 ‘김명수 사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