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나타내는 말은 대개 음식이나 미각을 가리키는 말을 집어넣어 만든다. ‘밥맛’, ‘물맛’, ‘꿀맛’, ‘장맛’, ‘짠맛’,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떫은맛’ 등이 그렇게 만들어진 말이다.
그런데 맛을 나타내는 말 중엔 ‘입맛’, ‘눈맛’, ‘손맛’ 등처럼 신체 부위 명칭을 포함하는 것도 있다. ‘혀’가 아니라 ‘입’, ‘눈’, ‘손’을 써서 맛을 나타내는 낱말을 만든 것이 흥미롭다. ‘입맛’과 ‘눈맛’은 음식을 섭취하는 ‘입’과 음식을 보는 ‘눈’에서 느끼는 맛의 감각이다. 반면 음식 맛의 영역에서 ‘손맛’은 ‘손’에서 느끼는 맛이 아니라 ‘손으로 내는 맛’을 나타낸다. 음식을 ‘손’으로 만든다는 점에 착안하여 ‘손맛’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근래엔 부쩍 ‘불맛’이란 말이 많이 쓰인다. 국어사전에는 아직 실리지 않은 새말이다. ‘불맛’은 ‘무척 매운 맛’을 뜻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불로 구워서 내는 맛’이란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불맛’은 과연 새말일까? ‘불맛’으로 표현하는 맛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내겐 ‘불맛’이란 말도 오래된 말처럼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2009년에 나온 ‘불맛’이란 시가 있었다.
“어머닌 불맛을 안다고 하셨다/ 불간이 잘 배어야 음식은 맛있는 법이라며/ 여린 불, 센 불/소금 대신 불구멍으로 간을 맞추셨다/ 이 모두,/ 벼락에 구워진 들소의 안창살을 맛봤다던 / 네안데르탈인을 닮았던 아버지 때문이었다” (구광렬의 ‘불맛’에서)
‘큰사전’(1957)에 처음 실린 ‘불고기’는 “숯불 옆에서 직접 구워 가면서 먹는 짐승의 고기”로 풀이되었다. 구운 고기를 ‘불고기’로 이름 지은 걸 보면 한국인들이 오랜 전부터 ‘불맛’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건 분명한 듯하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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