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실질 성장률 2.6%
5년간 세번째…3년만에 최저
잠재 성장률에도 한참 못미쳐
수출 부진 탓 제조업 성장률 뚝
“추경 편성,주택 경기 부양 등
내수 대책도 약발 떨어져” 우려
우리 경제가 지난해에도 또 다시 2%대 중반(2.6%) 성장하는데 그쳤다. 최근 5년간 벌써 3번째 2%대 성장이자 3%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우리 경제의 잠재적인 성장능력(잠재성장률)조차 계속 밑도는 수준이다.
정부는 여전히 당장은 3%(올해 성장 목표), 장기적으론 4%대(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 성장세 회복을 외치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러다 한국이 2%대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기 힘들 거란 잿빛 전망이 팽배하다. 세계적인 장기불황과 급속한 고령화, 높은 가계부채 등 안팎의 성장 위협을 넘어설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수출 쇼크’에 휘청, 내수 약발은 불안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2015년 4분기 및 연간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6%로 2012년(2.3%)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은 건 무엇보다 수출 부진이었다. 작년 연간 수출 증가율(0.4%)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0.3%) 이후 6년 만에 가장 낮았다. 세계적인 불경기 속에 우리 제품을 찾던 선진ㆍ신흥국들의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수출에서 수입액을 뺀 ‘순수출’이 전체 성장률에 기여하는 정도(성장기여도)도 -1.2%포인트로 2010년(-1.4%포인트) 이후 5년 만에 다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성장 버팀목이었던 수출이 오히려 성장률을 깎아먹었다는 의미다.
이 여파로 수출의 주력부대인 제조업 성장률도 크게 낮아졌다. 작년 국내 제조업은 1년 전(4.0%)보다 크게 떨어진 1.4% 성장에 그쳐 역시 2009년(-0.5%)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흔들리는 수출과 제조업을 그나마 붙잡은 건 각종 부양책에 힘입은 내수였다. 작년 민간소비(2.1%)와 건설투자(4.0%)는 각각 전년(1.8%, 1.0%)보다 성장폭을 키우며 내수의 성장기여도를 3.7%포인트까지 끌어올렸다. 정부의 추경예산 편성과 블랙프라이데이 등 소비활성화 정책, 저금리 속 주택경기 부양책 등이 맞물린 결과다.
하지만 이마저도 점점 약발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작년 4분기 성장률은 6분기 만에 0%대를 벗어난 작년 3분기(전기대비 1.3%)의 기세를 잇지 못하고 다시 0%대(0.6%)로 떨어졌다. 주택거래 증가세 둔화의 영향으로 건설투자 증가율(-6.1%)이 3분기(5.0%)보다 크게 낮아진 타격이 컸다. 개별소비세 인하 등 조치로 민간소비(1.5%)는 여전히 회복세를 이어갔지만 이마저도 새해 들어 정부의 부양책이 끊기면서 ‘소비 절벽’ 사태를 맞을 거란 우려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굳어지는 저성장
수년 전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는 경고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서 1, 2%대 성장이 고착화된 선진국 경로에 지나치게 빨리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 경제의 최근 성장 추세를 보면 3%대 성장률이 오히려 예외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2009년(0.7%)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겪은 우리 경제는 2010년 6.5%의 깜짝 반등에 성공했으나 2011년부터는 줄곧 2~3%대 성장세에 머물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선 잠재성장률 수준에조차 못 미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한은이 추정한 2011~2014년 잠재성장률 수준은 3.2~3.4%로 이 기간 중 실질성장률은 2011년(3.7%)과 2014년(3.3%)에만 이에 부합하는 수준을 보였다. 작년 성장률(2.6%)은 2015~2018년 잠재성장률(3.0~3.2%)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다.
올해 전망도 밝지 않다. 연초부터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세에 중국의 경기둔화 우려, 원자재가 폭락에 따른 신흥국들의 경기하강 위협 등 우리 수출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수두룩하다. 관세청 집계에 따르면 이달 1~10일 수출액(85억2,400만달러)은 1년 전에 비해 22.5%나 급감했다.
작년 성장률을 떠받쳤던 민간소비와 건설투자 역시 올해는 꺾일 가능성이 높다. 1,2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상시적인 소비 제약요인으로 작용하는데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퇴장으로 공격적인 부동산 부양정책도 더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대도시 소매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1분기 경기전망지수는 96에 머물러 3분기째 기준치(100) 이하에 그치고 있다.
탈출구는 없나
정부는 저성장 고착화를 막기 위해 올해도 총력전을 펼 태세다. 우리 힘으로 조절하기 어려운 대외 여건과 별개로, 민간과 내수 중심의 회복세를 지속하기 위해 1분기부터 최대한 재정집행률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 작년 하반기 재미를 봤던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등 대규모 할인행사를 정례화하고 올해부터는 실질성장률에 물가상승률까지 더한 경상성장률을 함께 제시하며 국민의 체감경기 관리에도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누적된 요인들이 복합돼 나타나는 저성장 국면이 쉽게 방향을 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 역시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 그만큼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해 있는 현실이 간단치 않다는 얘기다. “저소득층 중심의 재정 확대와 부채 관리가 가능한 수준에서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성태윤 연세대 교수) “당장 1분기 소비절벽을 막기 위해 정부의 기존 대책들 외에도 춘절 기간 중국 관광객을 끌어들일 획기적 유인책이나 설 연휴 기간 소비를 늘릴 대책 등이 시급해 보인다”(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 등의 주문이 나오지만, 효과가 길지 않은 단기 처방이거나 부작용이 수반되는 것들이다.
그 보다는 긴 안목에서의 중장기 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크긴 하지만, 이 또한 지극히 교과서적인 데다 당장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해 보인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장기 성장세 회복은 결국 시간은 걸리지만, 경제의 내공을 높이는 체질개선”이라며 “여성의 경제활동참여, 이민ㆍ북한인력 활용 등으로 노동력을 유지하고 자본투자를 지속적으로 독려하는 한편, 우선은 적극적인 연구개발로 기술 혁신을 이루는 게 정답”이라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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