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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71)1960년대 스카라극장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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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71)1960년대 스카라극장 주변

입력
2002.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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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연예인들을 보면 이해가 안 갈 때가 많다. ‘스타’라는 자리에 그리 연연해 하지 않는 것 같다.쉽게 스타가 돼 쉽게 잊혀지는 것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아닌가 보다. 나같이 어렵게 스타가 돼 그 자리를 어떻게 하든 지키려 했던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1984년의 일이다. 40일 동안 미주순회공연을 다녀온 직후였다. 당시 나는 미주 한국일보사 초청으로 돈 한푼 받지 않고 80년부터 내리 미주순회공연을 해오던 터였다.

나름대로 한국일보에 끈끈한 정을 느끼며 최선을 다 했는데 정말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귀국한 바로 다음날 한국일보 문화면에 ‘이주일 시대는 갔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온 것이다. 후배들의 도전에 내 인기가 위협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곧바로 한국일보사를 찾아갔다. 어떻게 올라간 스타 자리인데, 더욱이 다른 신문사도 아닌 한국일보가 내게 이럴 수는 없었다.

그 기사를 쓴 김주언(金周彦ㆍ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집행위원장) 기자는 “기사 내용과 제목이 다르게 나온 것일 뿐 선생님을 욕하려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책상을 두들기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길 1시간 여. 주위 사람들의 만류로 그냥 돌아오고 말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그리고 매우 불쾌하다.

우리 세대만 해도 스타가 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최소 10년은 유랑극단에서 온갖 잔심부름을 하며 선배 수발을 들어야만 겨우 이름 석자를 내밀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유랑극단 시절보다 더 고달프고 쓰라렸던 것이 바로 1960년대 중반 서울 충무로 스카라극장 주변을 배회하던 때였다.

62년 군 제대 후 친구 방일수(方一秀)와 함께 스카라극장 뒤 속칭 ‘스타의 거리’를 근 1년 동안이나 헤집고 다녔던 것이다.

당시 스카라극장 주변에 줄지어 있던 스타다방 신천지다방 대림다방 등은 우리 같은 무명에게는 역 대합실 같은 곳이었다.

유랑극단 단장에게 뽑혀가기 위해, 마치 소 시장에 나온 소처럼 목을 빼고 기다리던 우리는 그야말로 ‘삼마이’(삼류) 인생 그 자체였다.

온갖 무명 연예인과 쇼 관계자들이 모여들어 서로를 사고 파는 인간 시장이었다.

전차표 한 장 들고 아침 9시부터 다방으로 출근해 점심도 꼬박 굶고 저녁 6시까지 죽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나마 몇 십원 하던 커피 값도 없을 때는 근처 구두닦이들 옆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 꽁초만 빨기도 했다.

극단에 안 팔리는 날이면 당시 내가 살던 상계동 무허가 판자촌까지 터벅터벅 걸어가야 했다.

그러다 유랑극단의 MC로 발탁되기라도 하면 어찌나 기뻤던지…. 그런 날은 다방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두꺼비집’이라는 허름한 술집에서 잔치가 열렸다.

선불 받은 돈 중에서 무대에 입고 갈 의상 비용만 빼고 나머지는 안 팔린 동료들에게 한 턱 내는 자리였다.

그 집의 안주는 돼지 삼겹살이었다. 동동주보다 더 독한 밀주에다 지글거리는 삼겹살 안주를 놓고 우리는 울분도 씻고 회포도 풀었다.

당시 일수와 나는 콤비로, 때로는 홀로 무대에 섰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르겠지만 ‘수지 큐’는 몸통과 엉덩이를 따로 흔들며 원을 그리며 걷거나 춤을 추는 내 인기 레퍼토리이다.

80년 TV 데뷔 후 전 국민에게 알려진 이 춤도 사실은 그 두꺼비집에서 일수와 내가 머리를 맞대고 개발해낸 것이다.

그래서 ‘수지 큐’는 무대에서 나와 일수가 같이 했을 때 가장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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