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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기춘대원군’의 잡아떼기

입력
2016.11.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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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지역감정 조장의 원조로 꼽히는 인물은 이효상이다. 대구 출신으로 국회의장까지 지낸 이효상은 1971년 대선 당시 구미 출신인 박정희 후보를 “신라 임금의 자랑스러운 후손”이라고 치켜세우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을 천년 만의 임금으로 모시자”고 했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는 이효상의 주장이 통했는지 경상도는 박정희에게 몰표를 주었다. 그와 쌍벽을 이루는 지역감정의 대가는 노태우 정부 시절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기춘이다.

▦ 김기춘은 14대 대선을 앞둔 1992년 당시 부산시장, 부산경찰청장, 안기부 부산지부장 등을 복집으로 불러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되면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자”며 지역감정 조장을 모의했다. 이 사실이 도청에 의해 공개되자 여당인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는 지지율이 급락했다. 더 놀라운 일은 이때 일어난다. 영남 사람들이 YS를 당선시키겠다며 무섭게 결집했고 언론은 김기춘의 선거 개입보다 도청이 더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결과는 YS의 승리. “권력은 복국집에서 나온다”는 씁쓸한 말이 한동안 나돌았다.

▦ 이 사건으로 김기춘은 지역감정 조장과 공작정치의 대가로 이름을 알렸다. 이미 1970년대에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하고 공안문제의 본산인 중앙정보부의 대공수사국장으로 활동했던 그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 의견서를 작성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는 등 수십 년 동안 음모적이고 반역사적인 일을 해왔다. 그 뒤 한동안 정치와 거리를 두던 그를 다시 불러낸 사람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2013년 일흔 넷의 나이에 비서실장이 된 김기춘은 ‘기춘대원군’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막강 권력을 휘둘렀다.

▦ 김기춘은 불리한 것은 잡아떼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앙정보부 당시의 용공조작과 관련해서는 “모른다” “기억에 없다”고 일관한다. ‘문고리 3인방’은 “자기 직분에 충실한 분들”이라고 두둔하고 최순실씨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만난 일도, 통화한 일도 없다”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김기춘의 소개로 최순실을 알게 됐다고 해 둘 중 한 명이 거짓말을 하는 상황이 됐다.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적 분노에 비춰 김기춘이 이번만큼은 무사히 넘어가기 어려워 보인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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