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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론의 함정

입력
2014.10.2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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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을 고쳐 권력 구조를 내각제로 바꾸려는 시도는 1980년대 후반 전두환 정권에 의해 이뤄졌다. 인물 싸움이 되는 직선제에선 두 김씨에 맞서 여당이 승리하기 어렵지만, 총선 다수당이 수반을 맡는 내각제라면 관권 동원 등을 통해 충분히 집권할 수 있단 판단에서였다. 두 김씨 세력이 주류였던 야당에도 이에 호응하는 비주류 중진들이 없지 않았다. 정치공학적 계산에 의해 추동됐던 당시 내각제 개헌은 그러나 강력한 반대 여론에 부딪쳐 무산됐다. 사진은 87년 6월29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약속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헌법을 고쳐 권력 구조를 내각제로 바꾸려는 시도는 1980년대 후반 전두환 정권에 의해 이뤄졌다. 인물 싸움이 되는 직선제에선 두 김씨에 맞서 여당이 승리하기 어렵지만, 총선 다수당이 수반을 맡는 내각제라면 관권 동원 등을 통해 충분히 집권할 수 있단 판단에서였다. 두 김씨 세력이 주류였던 야당에도 이에 호응하는 비주류 중진들이 없지 않았다. 정치공학적 계산에 의해 추동됐던 당시 내각제 개헌은 그러나 강력한 반대 여론에 부딪쳐 무산됐다. 사진은 87년 6월29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약속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구불변 헌법은 없다. 문제는 어떤 개헌이냐다. 꼬리로 몸통을 흔들려 하나. 시민을 위해 있는 게 정치다. 나눠 먹으라고 맡긴 권력이 아니다. 여야 담합은 국민 권익을 소외시킨다.

“헌법은 ‘기본권’과 ‘권력구조’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당연히 기본권이 우선이다. 권력구조는 국민의 기본권이란 ‘내용’을 담기 위한 ‘그릇’에 불과하다. 현재의 개헌론은 선후가 바뀌었다. 여야 불문하고 관심이 온통 권력구조에 쏠려있다. (…) 보수의 본산 새누리당이야 논외로 친다 해도, 새정치연합조차 기본권 강화에 무관심한 건 납득하기 어렵다. (…) 결국 지금의 개헌론은 ‘당의(糖衣)’를 벗기면 여야의 짬짜미에 불과하다고 본다. 새누리당은 과거 이명박·박근혜와 같은 강력한 차기 주자가 없고, 새정치연합은 몇몇 유력 주자를 보유하고 있되 당 구조가 취약하다. 이래저래 불안하고 자신감 없는 양당이 나란히 가자며 어깨동무하는 격이다. 권력분점을 매개로 여당은 ‘영구 집권’을, 제1야당은 ‘영구 (의원) 당선’을 도모한다는 혐의가 짙다. 총대를 메고 나선 김무성 대표는 “독식하지 않을 테니 청와대 가는 길 도와달라”, 호응하고 나선 다선 의원들은 금배지를 보전하고 ‘실세 총리’까지 노리겠다는 것 아닌가? 노파심이나 기우인가? 시민들은 권력구조 논의에 숨겨진 함정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 조기 레임덕을 우려해 개헌 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개헌 논의는 국회의 고유 권한인 만큼 대통령이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된다. 다만 헌법 제1조가 말하듯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을 고치든 놔두든 선택은 주권자의 몫이다. 개헌을 한다 해도 시기·방향·내용을 정하는 것 역시 주권자의 몫이다. 국회는 이를 잊어선 안된다. (…) 개헌을 열망하는 의원들은 헌법을 고치면 나와 내 가족이 얼마나 더 자유롭고 안전해지는지 설명하기 바란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같은 전문용어는 의원들끼리만 쓰시길.”

-개헌은 싫다(경향신문 ‘경향의 눈’ㆍ김민아 논설위원) ☞ 전문 보기

“‘오늘은 기쁜 날, 차(茶)값은 무료입니다.’ 87년 6월 29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자 서울 명륜동 ‘가화’라는 다방에 붙은 벽보의 글귀다. (…) 전두환 정부의 내각제 개헌 시도, 이원집정(二元執政)제로의 절충 시도, 호헌(護憲) 시도를 ‘피플 파워’가 무력화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낸 날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30년이 지났다. 다시 1987년 체제(대통령 직선제+5년 단임제)를 바꿔야 한다는 개헌론이 꿈틀댄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대통령·총리가 외치ㆍ내치를 분담하는 이원집정제 지지 의사를 밝혔다. (…) 1980년대에 이원집정제를 말하면 ‘사쿠라’ 소릴 들었는데 격세지감이다. 특히 오스트리아 제도를 콕 찍어 말했다. (…) 다수당 중진이 실질적 권한을 갖는 총리가 될 수 있는 제도라서일까. 여야 중진일수록 선호하는 인상이다. (…) 이원집정제의 출발은 지금 대통령제가 ‘제왕적’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현재의 대통령이 제왕적인지, 혹 제왕적 요소가 있다면 대통령과 여당 간의 수직관계에서 찾아야 하는 건 아닌지, 외치와 내치를 나누면 제왕적 요소가 제거될지부터 따져야 한다. 국민 정서와도 다르다. 한길리서치가 18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대한 지지가 35.9%, 5년 단임제가 26.3%, 이원집정제는 17.9%, 의원내각제가 6.5%였다. (…) 박 대통령 입장에선 개헌보다 경제에 집중했으면 할 테지만 87년 체제에 모순이 존재하는 한 국회에서의 논의 자체를 막을 순 없다. 역사적으로도 개헌에 관한 한 대통령이 주체가 되면 늘 실패였다. (…) 이럴바엔 정기국회 이후 제대로 된 봇물이 터졌으면 한다. 일부 중진을 위한 개헌 논의여서도 안 되고, 개헌을 빌미로 정치세력화를 꾀하려는 시도여서도 안 된다. 개헌은 4900만 국민이 공유해야 할 어젠다다. 국민투표로 완성되는 게 바로 개헌이다. 불순하면 실패한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제라니(중앙일보 ‘강민석의 시시각각’ㆍ정치부 부장대우) ☞ 전문 보기

엄마는 퇴근을 서두른다. 해가 시들면 애는 찬밥처럼 식는다. 육아는 돈 못 버는 노동이다. 기회마저 앗아간다. 어쩌면 야근은 남자의 특권이다. 저녁이 없는 삶을 빼앗아야 공평하다.

“모성은 ‘부모애’라는 양성 평등한 용어로 대체돼야 하며, ‘부모애’는 신화에 필적하는 형태로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양성평등이란 게 공허한 이론일 뿐이어서 한때의 페미니스트였던 나는 하루 두 번 꼴로 경력 단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찢겨진 자아의 워킹맘이 되었고, 기형도의 시 ‘엄마걱정’은 내면의 BGM으로 자리잡았다. (…) 여성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현재의 정부 대책은 그 어느 때보다 여성 친화적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엄마를 예외적 노동자로 만드는, ‘이급 근로자’로 도태시키는 차별과 배제의 정책이어서 출산율이나 고용률 제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애 팽개치고 일만 했다”고 술 취한 나에게 부당하게 비난 받았던 내 선배 세대의 여성들은 여성이 ‘일급 근로자’일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남자처럼 일했다. 여성의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해준 그들 덕분에 고용보험을 유지하며 내 손으로 자식들을 키우는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의 최종적 해법일 수는 없다. 내 후배들, 내 딸들을 위해, 이제 우리는 남자들이 여자처럼 일하는 세상을 감히 꿈꿔야 한다. 유신시대의 통행금지처럼, 오후 5시 이후 근로금지제가 전 국가적으로 시행되는 상상을 해본다. 남편도, 아내도, 거래처도, 하청업체도, 사장님도, 대리도, 국회의원도, 어린이집 교사도, 낮 동안 부지런히 일하고 오후 5시면 모두 퇴근한다. 모두가 집에 가 있으니 혼자 남아도 할 일이 없다. (…) ‘오후 5시의 정치학’. 이게 실현된다면, 단언컨대 나는 더 이상 일과 육아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만 기다리지 않고 아빠도 기다릴 것이며, 나는 더 이상 같이 출발했으나 혼자만 저만치 앞서 있는 남편을 미워하는 협량한 인간이 아니어도 된다.”

-오후 5시의 정치학(한국일보 ‘36.5°’ㆍ박선영 문화부 기자) ☞ 전문 보기

“저출산의 근본적 원인은? 가족도 부부도 아닌, ‘여성’의 돌봄부담이다. 더 나아가 돌봄부담을 기꺼이 하려는 여성을 시장이 채용 기피와 경력단절 강요로써 벌주는 현상이다. ‘남성=취업노동 담당자, 여성=무보수 가사ㆍ돌봄노동 담당자’ 구도를 ‘성별노동분리’라고 표현한다. 성별노동분리를 우리사회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남성은 취업노동에만 전념해도 되고 여성은 취업노동에 가사ㆍ돌봄노동을 이중으로 부담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래도 이중부담을 어떻게 해서든지 견뎌보려고 하는 여성에게 기업은 채용기피와 취업노동 중단 강요를 한다. 이중부담을 견뎌야 하고 원하는 취업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는 방향으로 개별 여성이 무의식적으로 집단 반응을 하는 결과가 저출산의 지속이다. (…) 어린이집을 아무리 만들어도, 퇴근시간 되자마자 엄마가 뛰어야 하는 현실에서 이른바 직장맘은 한 명은 낳아도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는다. (…)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야근하고 회식 가서 남성 동료와 함께 제때 승진하고자 한다고 생각해보자. 임신ㆍ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의 대가로 국가 지원을 받는 것보다, 중단 없는 취업노동으로 양육비를 스스로 벌고 넉넉한 노후도 스스로 만들고 싶다는 여성의 소망을 인정하자. (…) 물론, 성별노동분리 극복을 국가정책으로만 할 수는 없다. 기업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인력에 대한 시장 수요 변화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성별노동분리 극복’을 명백한 정책 목표로 내세우지 않는 이상 저출산 극복의 길은 시작할 수 없다.”

-꺼져 가는 아이 울음소리를 되살리는 길(10월 17일자 한국일보 ‘아침을 열며’ㆍ정재훈 사회복지학과 교수)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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