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지주ㆍ사업사 분리 뒤
지주사와 삼성물산 합병 땐
이재용 부회장측 지분 40%까지
앨리엇, 지주회사 이사회서
삼성전자 적극 견제 의사도
5일(현지시간)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삼성전자 분할 요구는 삼성 입장에선 지배구조 재편의 명분을 얻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의미가 적잖다. 그러나 엘리엇이 삼성전자 전체 주식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는 외국계 자본의 ‘행동대장’으로 목소리를 높일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자사주 의결권 제한 등 지배구조 재편 시 부담이 되는 법안도 국회에 발의된 상태여서 삼성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엘리엇은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한 뒤 지주회사는 삼성물산과 합병, 삼성 지배 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회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삼성전자가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불확실한 지배 구조에 묶여 주식이 경쟁사에 비해 30~70%나 저평가 됐다는 게 엘리엇의 주장이다. 엘리엇은 이어 “이건희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이 적어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총수 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은 이건희 회장 3.55%, 이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0.76%, 이재용 부회장 0.59% 등으로 5% 정도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지분 1%(164만327주)를 확보하려면 주당 가격을 160만원으로 계산해도 2조6,245억원이 든다. 그러나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이렇게 큰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 삼성측 지분을 늘릴 수 있다. 삼성전자 인적 분할→삼성전자 홀딩스와 사업회사간 주식 교환→자사주 의결권 부활→삼성전자 홀딩스와 삼성물산(이 부회장 지분율 17.08%) 합병 등의 과정을 거치면 이 부회장측은 삼성전자 홀딩스의 지분을 40%까지 올릴 수도 있다.
반대급부로 엘리엇은 삼성전자 분할 이후 삼성전자 사업회사가 30조원의 특별배당 혹은 1주당 24만5,000원의 배당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또 삼성전자 잉여현금흐름(FCF)의 75%를 지속적으로 주주 친화정책에 쓸 것을 주문했다. 이 경우 엘리엇은 지분율(0.62%)로 계산해도 1,800억원을 손에 쥐게 된다.
모양새는 삼성전자와 엘리엇이 서로 이익을 공유하기 위해 한 배를 탄 듯하다. 그러나 엘리엇의 속내는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이사회에 각각 새로운 사외이사 3명 이상을 선임해야 한다’는 요구에 숨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엘리엇은 ‘다양성과 독립성을 위해 내부 임원의 겸직을 배제하고 해외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선임해야 한다’며 이사회를 통해 삼성전자를 적극 견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엘리엇이 이사회의 40%를 장악하겠다는 것”이라며 “삼성전자 지분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는 외국자본의 대표라고 자처하고 나서면 총수 일가의 경영권이 휘둘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변수는 야권을 중심으로 지배구조 재편을 힘들게 하는 법이 준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소야대 정국 속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발의한 상법개정안은 기업 분할 시 삼성전자가 보유한 자사주(12.8%)만큼 지주회사에 신주를 배정하는 것을 막고 있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삼성이 조만간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것이고, 27일로 예정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등기이사 선임도 그 준비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서한 원문>http://www.sevalueproposals.com/disclaimer?lng=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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