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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판 세월호' 변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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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판 세월호' 변한 게 없다

입력
2015.09.06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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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추자도 21명태운 낚시어선 전복 10명 사망ㆍ3명 구조

사고 발생 20시간 지나도 승선자조차 파악 못해

안전불감증 여전 제도적 허점도 곳곳서 드러나

제주 추자도 인근에서 낚시 관광객들을 태우고 전남 해남으로 가다가 통신두절됐던 낚시어선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가 6일 오전 6시 25분께 추자도 남쪽의 무인도인 섬생이섬 남쪽 1.2㎞ 해상에서 뒤집힌 채 발견돼 해경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제주해경 영상 캡쳐
제주 추자도 인근에서 낚시 관광객들을 태우고 전남 해남으로 가다가 통신두절됐던 낚시어선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가 6일 오전 6시 25분께 추자도 남쪽의 무인도인 섬생이섬 남쪽 1.2㎞ 해상에서 뒤집힌 채 발견돼 해경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제주해경 영상 캡쳐

지난 5일 21명의 사상자(사망 10명ㆍ실종 8명ㆍ부상 3명 추정)를 낸 제주 추자도 앞바다 낚시어선 돌고래호 침몰 사고는 안전불감증에 빠진 우리사회의 민낯을 또다시 드러냈다. 사고 발생 하루가 지났지만 관리 당국은 누가, 몇 명이 배에 타고 있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하루 종일 허우적댔다. 낚싯배 입출항 관리는 어처구니 없게도 민간인 손에 맡겨져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온 국민이 외쳐댔던 “안전”은 먹통이 된 해상안전시스템 앞에 헛구호로 전락했다. 하추자도에서 낚시를 마친 낚시객 등 21명을 태우고 출조항인 전남 해남군 북평면 남성항으로 가던 9.77톤급 돌고래호가 함께 출조한 돌고래1호와 연락이 두절된 건 5일 오후 7시44분쯤. 몇 분 전 기상 불량으로 회항하던 돌고래 1호 선장 정모(41)씨가 돌고래호 선장 김철수(46)씨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수화기 너머로 “잠시만”이라는 김씨의 다급한 목소리를 끝으로 통화는 끊겼다. 돌고래호가 하추자도 신양항을 떠난 지 20여분 만으로, 당시 돌고래호는 신양항에서 북동쪽으로 500여 ㎙ 떨어진 해상에서 전복된 것으로 해경은 추정하고 있다. 돌고래1호는 이날 오후 7시50분쯤 출조 해역 어항인 추자항으로 회항했다.

사고 직후 이모(49)씨 등 3명은 배 밑바닥을 드러낸 채 뒤집힌 돌고래호 위에 가까스로 올라가 하룻밤을 꼬박 새운 뒤 6일 오전 6시 25분쯤 우연히 인근을 지나던 어선에 의해 구조됐다. 그러나 구조 당국은 이날 오후 4시 30분 수색 상황을 브리핑하던 순간까지도 실종자가 몇 명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해경은 “사고 당시 21명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돌고래호가 5일 오전 2시쯤 해남 남성항 출항 당시 신고한 승선자 명부에는 모두 22명으로 기재돼 있다. 하지만 사고 직후 확인 결과 명부에 있는 4명은 승선하지 않았고, 대신 명부에 없던 3명이 승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구조 당국이 사고 발생 이틀째에도 기본적인 승선 인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는 데는 부실한 해상안전관리 때문이다. 현행 낚시 관리 및 육성법에 따르면 낚시 어선 업자는 출입항 신고서와 승선원 명부를 첨부해 출입항 신고기관장에게 의무적으로 제출토록 하고 있지만 현실을 정반대다. 돌고래호가 출조한 해남 남성항처럼 소규모 어항인 경우 해당 지역 어촌계장 등 민간인이 신고 접수를 대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민간 대행의 경우 신고과정에서 출항서류를 제대로 확인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실제 해남 남성항도 민간인이 해경을 대신해 입출항 신고 접수를 대행했고, 이로 인해 돌고래호의 승선인원 및 정원 초과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어민은 “낚시객들이 몰리는 기간에는 정원을 초과해 운항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개인의 안전불감증도 여전했다. 이번 사고엔 낚시객들의 방심으로 인한 ‘안전수칙 미준수’도 한몫 했다. 제주도는 낚시 어선의 이용 등에 관한 조례를 통해 구명조끼를 의무적으로 착용토록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사망자 10명과 생존자 3명 중 4명만이 개별적으로 가져온 간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사고 당시 풍랑이 거세게 일며 기상 여건인 악화하고 있었는데도 무리하게 출항한 것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당시 사고 해역에는 비가 내리고 초속 9~11m의 강한 바람이 불고 파도는 2~3m 높이로 일었다. 기상청이 풍랑주의보를 내리지 않았지만 너울성 파도가 상당했다고 생존자는 전했다. 낚시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기상특보가 발효되지 않으면 해경이 선박의 입출항을 제재할 수 없는 탓에 선장이 입출항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선장이 무리하게 운항에 나섰다가 종종 사고를 당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돌고래호 침몰사고 유가족들이 6일 오후 희생자들의 시신이 운구된 전남 해남군 해남종합병원 장례식장 입구에 모여 오열하고 있다. 제주 추자도 신양항에서 낚시객을 태우고 출항한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는 이날 오전 6시 25분께 추자도 남쪽 무인도 섬생이섬 남쪽 1.1㎞ 해상에서 통신이 두절된 뒤 11시간여만에 뒤집힌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돌고래호 침몰사고 유가족들이 6일 오후 희생자들의 시신이 운구된 전남 해남군 해남종합병원 장례식장 입구에 모여 오열하고 있다. 제주 추자도 신양항에서 낚시객을 태우고 출항한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는 이날 오전 6시 25분께 추자도 남쪽 무인도 섬생이섬 남쪽 1.1㎞ 해상에서 통신이 두절된 뒤 11시간여만에 뒤집힌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한편 오후 8시 40분쯤 추자도 해경안전센터를 전화로 사고 사실을 신고했으나 제주해경 상황실에 접수된 것은 23분이 지난 오후 9시 3분으로 드러나, 지연신고 논란도 제기됐다. 또 해경이 당시 현장 날씨 상황 등을 간과한 채 표류예측시스템에만 의존해 실종 위치를 오판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해경은 경비함정과 항공기 등을 투입, 수색을 벌였고 날이 어두워지면서 야광탄까지 동원했으나 추가 승선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해경 관계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저체온증과 탈수증 등으로 실종자의 생존 가능성은 낮아지는 만큼 수색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김영헌기자 tamla@hankookilbo.com

해남=박경우기자 gw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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