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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67)내가 암에 걸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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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67)내가 암에 걸렸다고요?

입력
2002.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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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집 거실에는 내가 요즘 들어 가장 자주 보는 큰 사진이 걸려 있다.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때 내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성황봉송주자로 서울 거리를 뛰는 사진이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다시 일어나 뛰어야 한다고 다짐을 한다.

지난해 7월이었다. 기침도 나고 몸이 좀 이상한 것 같아서 어느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면 그렇지. 이 이주일이가 누군데…. 몸 하나는 무쇠로 만들어졌다니까’.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곧바로 제주도로 내려갔다.

골프도 치고 술도 마시고 즐겁게 보냈다. 대학병원에서 보증해준 몸이니 안심하고 평소보다 배 이상 술을 마셨다.

제주 서귀포시에는 내가 1990년대 초 구입한 두 칸짜리 농가주택이 있다. 그리고 서귀포 아래쪽에는 지기도라는 섬이 있는데 나는 혼자 있고 싶을 때마다 두 곳을 왔다 갔다 하며 며칠씩 머물곤 했다.

종합검진 후 제주도에 내려갔을 때에도 라면 2박스, 소주 1박스를 배에 싣고 지기도에 가 며칠 동안 신나게 놀았다. 바다낚시도 정말 많이 했다.

그런데 3개월쯤 지나자 자꾸 몸이 아파왔다. 피곤하고 졸리기도 했다. 살아오면서 이런 일이 없었다. 다시 검사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로 올라오니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친구 박종환(朴鍾煥)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몸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어쩌면 좋냐?” 그러자 박 감독은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병원에 가봐”라고 말했다.

다른 대학병원의 종합검진 결과는 뜻밖이었다. 의사는 나를 보더니 불쑥 “주변 정리를 하세요”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뭘 정리하라는 말인가.

의사는 “말기 폐암입니다. 폐암 중에서도 남자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암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화가 났다. “의사라면 고쳐보겠다고 해야 정상이 아니냐?”고 따졌다. 의사는 “너무 늦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대학병원은 엉터리였다.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처음 검진을 받은 대학병원에서 제대로 발견만 했어도 감기치료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환자 심정은 헤아리지도 않고 처음부터 “주변 정리를 하세요”라고 말한 그 의사의 의도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최소한 “말씀 드리기 힘듭니다만” 정도로 말을 꺼내야 하는 게 아닐까. 그 의사는 국립암센터에서 통원치료를 받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하도 답답해 박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축구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잘못하면 월드컵도 못 볼 것 같구나. 천추의 한으로 남으면 어떻게 하냐?”

이 통화 후 박 감독이 내가 암에 걸렸다는 얘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한 모양이었다. 이때부터 사방에서 전화가 오고 난리가 났다. 신문에 보도된 것은 한 달 후인 11월 말의 일이다.

암 선고를 받은 내 심정이 어땠는지는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만 암이란 놈이 참 고약한 병인 것만은 분명하다.

몸 중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을 찾아 질병을 일으키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이다. 항암치료를 잘 받으면 사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암보다는 암이 유발하는 염증과 고통이 무섭다.

어쨌든 벌써 암투병 8개월째를 맞고 있다. 3개월 사형선고를 받고서도 월드컵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이진수(李振洙) 국립암센터 부속병원장과 의사, 간호사 덕분이다.

아니,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주위 분들의 성원과 격려 덕택이다. 우리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한 것이 국민 성원과 응원 덕분이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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