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새벽(한국시간) 중국을 겨냥해 대규모 관세 부과와 투자 제한조치를 담은 ‘중국의 경제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골자는 500억달러(54조원)에 달하는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대미 직접투자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선전포고다. 중국도 즉각 철강, 돈육 등 30억달러(3조2,400억 원)에 해당하는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방침을 발표하며 불퇴전의 결의를 천명했다.
아직 개전의 포성이 울린 건 아니다. 이번 명령에 따라 미무역대표부(USTR)는 15일 안에 관세 대상 리스트를 정한 뒤, 30일 간 여론 수렴을 거쳐 최종 리스트를 확정해 관세를 매긴다. 중국의 응전 역시 적어도 그 때까지는 유예된다. 철강ㆍ알루미늄 고율관세 대상국 제외처럼, 적용 준비기간 중 미중이 타협점을 찾아 정면충돌은 피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명령 제목에 ‘침략’이란 단어까지 동원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이번 조치를 통해 대중 무역적자를 지금(약 3,700억달러)의 25%(약 1,000억달러)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언급한 만큼 전운이 쉽사리 가라앉기는 어려워 보인다.
상황이 더 나빠질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미국은 이번 조치의 배경을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라고 명시했다. 직접투자 등을 통해 중국에 진출했거나, 중국 자본이 인수한 미국 기업들로부터 기술을 빼앗거나 훔쳤다는 미국의 표현이 나온 만큼, 투자 제한조치 역시 강행될 공산이 크다. 관세 부과에 투자 제한까지 강행되면, 중국 역시 항공기 도입 유예, 보유 미국 국채 매각 등 보복대응의 전선을 넓힐 것이다. 우리로서는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교역 위축의 피해보다 훨씬 심각한 국면에 처할 위험이 커진다.
당장 미국은 한국에 대한 철강 관세 유예 조건으로 중국 불공정 무역에 대한 공동대응 등을 내세웠다. 일종의 ‘반중(反中) 동맹’을 제안한 것이다. 반면 중국은 ‘반미 통상전선’에 나서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ㆍ경제적으로 양측의 요구가 가장 첨예하게 충돌하는 나라다. 더구나 양국 간 무역전쟁의 본질이 통상을 넘어 전반적인 글로벌 주도권 경쟁으로 치닫게 되면 우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내세우는 ‘정경(政經) 분리외교’는 비현실적인 몽상이 되기 십상이다. 안보든 통상이든 ‘총력 외교’가 시급하고, 전반적 차원에서 최선을 찾기 위한 정부 시스템 정비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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