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 깊은 편견
동서고금, 종교, 문화 막론하고
‘악마의 손’ ‘버림받았다’ 등
온갖 부정적 이미지 덧씌워져
#고단한 일상
가위, 책상, 마우스, 나사 조이기…
왼손잡이에겐 온갖 장벽 투성이
왼손 필기에 허리 통증 호소도
#한 목소리 힘든 현실
오른손, 왼손 택일 요구하는 사회
불편을 숙명으로 체념하는 분위기
협회, 판매점 모두 1년 만에 문닫아
양경수(34)씨는 요즘 ‘핫한’ 일러스트 작가이다. 직장인의 애환과 부당한 노동현실을 재치있게 풀어낸 웹툰으로 젊은층의 엄청난 지지와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유심히 살펴 보면 특별한 점이 눈에 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캐릭터들이 유독 왼손을 많이 쓴다. 왼손으로 필기를 하거나 음식을 먹는 등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수는 적어도 왼손잡이도 분명 존재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반영했을 뿐인데, 무슨 의도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자체가 편견이죠.” 물론 그 역시 왼손잡이다.
“모두가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난 왼손잡이야!” 1995년 가수 패닉은 억압받는 성(性) 소수자의 삶을 왼손잡이에 빗대 노래했다. 그만큼 왼손잡이는 주류문화에서 소외된 비주류의 상징이었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사용하는 손이 다르다는 이유 만으로 배척 당하는 일은 없다. 국가와 조직이 주는 불이익도 없고, 다른 소수자들처럼 권리 옹호를 위한 전투적 인권 운동의 대상도 아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한국사회는 여전히 적응이 힘든 공간이다. 두 손의 생김새가 같으며 그 쓰임도 다르지 않은데 세상은 별다른 배려 없이 ‘오른쪽 사회’에 길들여질 것을 강요한다. 차별과 무관심, 그 사이 어느 지점에서 왼손잡이들은 불편을 숙명으로 받아 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차별ㆍ억압의 대명사 왼손잡이
서툴다. 불길하다. 음흉하다. 통상 세계 인구의 10% 정도로 알려진 왼손잡이는 동서고금과 종교, 문화를 막론하고 뿌리깊은 편견에 시달려 왔다. 특히 역사를 통해 왼손에는 온갖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기원전 3,000년쯤 유럽 언어의 원류가 된 고대 인도어에는 왼쪽이란 단어가 아예 없었다. 프랑스에서 왼손은 악마의 손으로, 왼손잡이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manchino(만치노)’는 도둑을 뜻하기도 했다. 영어 ‘left hand(레프트 핸드)’에도 “버림받았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옛날 중국 식자층은 왼손을 안 쓰려고 손톱을 자르지 않았다고도 한다.
우리나라는 왼손잡이에 더 가혹하다. 30대 이상 성인 왼손잡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오른손잡이로 ‘강제된 사회화’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양 작가는 스무 살을 인생의 분기점으로 여긴다. 전통 불교미술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 왼손은 무조건 금기시되는 불온한 것이었다. 밥 먹고 글씨 쓰는 모든 생활에서 왼손을 쓰면 체벌이 가해졌다. 아무런 설명 없이 왼손은 그저 안 된다는 윽박지르기만 계속됐다. 왼손에서 비롯된 갈등은 커가면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힙합을 좋아하는, 개성에 대한 통제로 확장됐다. 그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독립한 후 비로소 왼손을 맘대로 쓸 수 있게 됐다. 양 작가는 “왼손은 삐딱한 외부 시선에 맞서 삶의 주인은 나이고, 자유의지를 느끼게 하는 버팀목이었다”고 강조했다.
강제 개조는 대개 ‘밥상머리’에서 시작된다.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김수연(33)씨는 어릴 때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는 날이 많았다. 혹여 왼손을 쓰다 걸리면 지청구가 날아 오기 예사였고, 나쁜 짓(?)을 한 대가로 손등을 맞기도 했다. 김씨는 “갖은 핍박을 받으며 오른손잡이로 길러진 탓에 어쩔 수 없이 양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인 왼손잡이 중에는 김씨처럼 후천적 양손잡이가 된 경우가 적지 않다.
젊은 세대가 이럴진대 중ㆍ장년층의 고충은 비길 바가 아니다. ‘옳지’ 않고 ‘바르지’ 않은, 왼손에 대한 배타적 관념이 훨씬 강고했던 시절을 겪은 이들은 태생적 차이를 고스란히 차별로 감내하면서 살아야 했다. 소설가 이순원(60)씨는 2005년 3월 한국일보에 연재한 에세이 ‘길위의 이야기’에서 “왼손잡이라 오른손 감각이 무뎌 주산만은 어쩔 수 없어 그걸로 낙담한 시절이 있었다”고 썼다. 한국은행 입사를 목표로 상업고교에 들어갔지만, 오른손잡이용 주판에 적응 못해 포기했다는 고백이다. 농사일을 하다 왼손잡이용 농기구가 없어 낫이 흉기가 됐던 기억, 등단한 뒤 초대받은 서양식 식사자리에서 원형테이블 방향을 헷갈려 옆 사람 포크를 집었다가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좌빵우물’ 원칙을 되새겼다는 일화까지…. 왼손잡이를 대하는 세상의 태도는 언제나 적대적이었다. 이 작가는 “오른손 환경에 억지로 맞춰 살다 보니 가장 고도의 기능을 수행하는 손의 미세한 감각을 잃어 버렸다”고 했다.
일상이 불편투성이
자의든 타의든 차별을 받아들이는 순간, 왼손잡이에게는 고단한 일상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글씨쓰기는 왼손의 본능을 꺾게 만드는 거대한 장벽이다. 학부모 이모(41)씨는 원래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왼손 쓰기 방식을 고칠 계획이 없었다. 생각이 바뀐 건 아이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허리 통증을 이따금 호소해 병원에 갔더니 한쪽 척추에 무리가 왔고, 잘못된 쓰기 자세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씨는 “왼손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필기를 할 때마다 몸이 틀어지는 데다 거의 누운 자세로 글자를 봐야 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아도 할 수 없이 오른손으로 교정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글씨 쓰는 방향, 한글 획순 모두 좌에서 우로 진행하는 방식으로 가르쳐 오른손잡이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대전 송림초교 김선화 교사는 “요즘에는 자녀의 특성을 살려주는 쪽으로 양육관이 변해 왼손으로 필기하는 학생이 늘었으나 건강 문제로 상담을 요청하는 부모들도 아직 있다”면서 “때로는 교사들이 교정을 권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013년 실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스스로를 왼손잡이로 인식한다고 답한 성인 남녀는 세계 평균의 절반인 5%였다. 그 중에서도 필기를 왼손으로 한다는 비중은 1%에 불과했다. 교육 과정에서 오른손 쓰기 훈련을 받은 왼손잡이들이 꽤 많다는 의미다.
글쓰기 외에도 왼손잡이로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은 인터넷만 조금 검색해 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흔히 알려진 가위ㆍ마우스 사용부터 냉장고문 여닫기, ‘ㄱ’자형 대학 강의실 책상, 지하철 개찰구, 카메라 셔터, 총 쏘기, 나사 조이기 등 난관은 셀 수 없이 많다. 심지어 신발끈을 묶는 방법마저 왼손잡이 아이에게는 배우기 버거운 도전 과제이다.
연대가 힘든 왼손들
왼손잡이들에게 하루하루는 고난의 연속이지만 이들이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는 일은 드물다. 왜 그럴까. 조수민씨는 지난해 다니던 회사에서 사내 프로젝트 형식으로 왼손잡이용 노트를 출시했다. 시장규모가 확실한 만큼 어느 정도 수익만 보장되면 제품군을 늘려 왼손잡이들을 위한 종합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 요량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금세 빗나갔다. 초도물량으로 찍은 2,000부 가운데 판매량은 겨우 절반을 넘겼다. 조씨는 “막상 판매처를 찾다 보니 모임ㆍ커뮤니티가 활성화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왼손잡이를 대표하는 단체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타깃 마케팅을 하기가 여의치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1999년 출범한 한국왼손잡이협회는 2000년대 중반 문을 닫았고, 국내 최초 왼손잡이 용품 사이트도 비슷한 시기 수지 악화로 자취를 감춘 이후 변변한 전문매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1992년 ‘세계 왼손잡이의 날(8월 13일)’을 제정한 영국왼손잡이협회나 왼손잡들에게 필요한 맞춤형 용품을 지원하는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의 행보와 대조적이다. 왼손잡이 협회를 창립했다가 운영을 중단한 강미희 광주보건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집단의 권익을 증대하려면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적인 지향성을 보여야 하는데 협회 활동은 동호회 수준에서 서로 고민을 나누는 차원에 머물렀다”며 “왼손잡이들이 스스로에게 길들여져 편견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진단했다.
왼손잡이들은 이런 체념이 오른손이냐 왼손이냐 택일을 요구하는 우리사회 특유의 작동 방식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이순원 작가는 “복잡해진 사회구조는 점점 오른손잡이들에게 맞게 설계되고 효율성도 높여가는데 딱히 해결책이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왼손 신화’를 부추기는 미디어는 오히려 평범한 왼손잡이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대학생 이지혜(22)씨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이탈리아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왼손잡이 유명인들의 성공 스토리를 열거하면서 ‘천재가 많다’는 식의 이야기가 부각될수록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것 같아 배려 받기를 포기했다”고 토로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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