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한 바퀴 돌아보면, 대한제국 탄생의 현장인 덕수궁부터 서울시청 신청사에 이르기까지 100여 년이 넘는 우리의 근대사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그 중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가 만나는 곳이 있다. 바로 서학당길과 세종대로가 만나는 곳, 예전에는 국세청 별관이 자리했던 곳이다.
지금은 ‘세종대로 특화공간’이라는 새로운 역사광장이 조성되고 있는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보자. 조선의 옛길인 서학당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로마풍의 건축(로마네스크 건축)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한성공회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성당 가장 깊은 곳에는 독특한 형태의 작은 한옥이 있다. 분명 우리의 전통건축물임에도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다각형 형태의 독특한 모습이다.
지금은 성당의 사무동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한옥 건물은 1926년 현재의 성당과 함께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옛 ‘성공회사제관’ 건물이다. 야트막한 언덕 아래 작은 마당을 감싸는 다각형의 한옥 건물은 거대한 로마네스크 성당 건축의 규모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붉은 벽돌로 이뤄진 외관이 아늑함을 더하며 성당의 품격을 거든다.
이곳 성공회사제관은 ‘전통건축’하면 흔히 떠올리는 북촌의 한옥이나 궁궐과는 다른 모습이다. 성공회 성당 초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분명 전통건축이지만 서구의 삶을 담아내도록 지어졌다. 입식생활에 맞춰 현관, 거실, 업무공간, 방을 만들었고 거실 한쪽에는 벽난로도 있다. 상상만 해서는 한옥에 왠 벽돌인가 싶지만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양 조화롭다.
사제관에는 100년 전 이질적이라고만 여겨졌던 서구 문화를 우리 건축으로 풀어낸 조상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길이 간직해야 할 이유다. 지금은 사무공간으로 진화해 감사하게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전통 건축과 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져 우리의 ‘오늘의 삶’을 담아내는 이곳을 보고 있으면 근현대에 적합한 전통 건축을 말할 때 북촌의 도시 한옥만 꼽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실 성공회는 이미 강화도 성당에서도 전통 건축이 서양의 교회 건축을 얼마나 잘 담아낼 수 있는지 보여준 바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둘러 보면 서울 곳곳에서도 한옥 창살의 창호와 기와가 마치 한지나 조각보의 느낌을 가진 스테인드글라스와 어우러져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성공회는 이렇게 우리의 전통과 하나돼 존재해 왔다.
안창모 경기대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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