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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관람석은 맨 앞 구석… '멀고 먼' 영화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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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관람석은 맨 앞 구석… '멀고 먼' 영화 관람

입력
2015.10.0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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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 등 전국 119개 극장 중 장애인 전용석 설치는 50곳에 불과

설치된 좌석도 80%는 맨 앞줄 위치

외국에선 보호자 동반석까지 마련… 영화진흥위, 내년 가이드라인 제시

서울의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맨 앞줄 오른쪽 끝에 장애인석 두 자리가 마련돼 있다. 고개를 든 채 영화를 봐야 해 일반적으로 기피되는 자리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서울의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맨 앞줄 오른쪽 끝에 장애인석 두 자리가 마련돼 있다. 고개를 든 채 영화를 봐야 해 일반적으로 기피되는 자리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지체장애 1급인 양모(45ㆍ여)씨는 지난 추석 연휴 영화를 보기 위해 인천의 한 대형 멀티플렉스를 찾았다가 목에 극심한 통증을 앓게 됐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양씨가 선택할 수 있는 극장 내 좌석은 맨 앞줄 오른쪽 끝에 있는 장애인석 두 곳뿐. 양씨는 “장애인석을 제외하고는 일반석 맨 앞줄에 앉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며 “좋은 영화를 보고 싶어도 매번 불편한 자리에서 고개를 치켜 들고 봐야 한다”고 토로했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장애인 좌석 설치가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 지난 7월 개관한 CGV 천호점은 세계 최초 반구형 스크린 등 최첨단 시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황당한 장애인 좌석으로 네티즌의 공분을 샀다. 지난달 한 관람객이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IMAX 상영관 장애인석 사진을 보면 차마 영화관람용 좌석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야가 절반 가까이 가렸다. 일반석 1열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옆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CGV 관계자는 “애초 장애인석으로 표시는 해놨지만 시야가 좋지 않아 판매하지는 않았다”며 “장애인들이 관람을 원할 경우 일반석 자리를 판매하고 직원들이 도와 자리로 앉히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실제 장애인을 위한 국내 영화관 시설은 미비한 수준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3년 공개한 ‘상영관 반복민원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119개 영화관 가운데 장애인 관람석이 설치된 곳은 50개(42%)에 불과하다. 상영관 좌석 수 대비 장애인석 비율은 0.8%에 그치며 설치된 좌석도 80%는 일반적으로 기피하는 맨 앞줄로 조사됐다.

영화관 측은 구조와 안전의 이유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장애인석을 맨 뒤나 앞에 마련한 것은 비상 시 대피를 감안해 출입구와 가깝도록 한 조치라는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도 300석 이상 영화 상영관은 장애인 관람석, 보조인력 배치 등 편의 시설을 갖춰야 한다고 규정했을 뿐 구체적 기준은 따로 정하지 않았다. 한 대형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장애인이 시야가 좋은 좌석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리프트를 만들거나 계단을 없애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이용자의 편의나 안전 등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구조적으로 상영관 중간에 출입구를 만드는 일도 설계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제약을 감안해도 영화관 측의 배려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지체장애인들은 혼자 거동이 어려워 대부분 보호자와 함께 오지만 영화관 내 동반자석이 따로 있지 않다. 지체장애 1급 전모(52ㆍ여)씨는 “보호자가 같이 와도 상영이 시작되면 멀리 떨어져서 봐야 해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사람이 붐빌 때면 직원들도 장애인을 적극 돕기 어려워 손 빌리기 싫은 장애인들은 아예 극장을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은 장애인차별금지법(ADA)을 통해 동반자석 설치뿐만 아니라 다른 관람객과 동일한 시야를 가질 수 있는 좌석 배치 등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역시 이 같은 장애인들의 처우를 인지하고 올해 영화관 내 장애인 좌석 관련 연구에 나섰다. 전문 연구기관을 통해 전국 상영관의 실태와 수요를 조사한 뒤 신ㆍ증축하는 극장들이 설계 단계부터 장애인 관람석을 고려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내년 초 제시할 계획이다. 김지혜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원은 “비상 시 장애인을 신속하게 대피 시킬 수 있도록 안전 교육과 인력을 강화해 장애인도 다른 일반석에서도 관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영화관을 지을 때부터 선진국처럼 장애인의 관람권을 염두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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