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연수원 기수 막내로 임명
박한철 前 헌재 소장 퇴임 후
최선임으로 38일 동안 이끌어
“감히 이 자리서 할수 없는 말…”
대리인단 시간 끌기에 단호 대처
신속ㆍ공정 노력… 13일 법복 벗어
법 ‘憲(헌)’자가 새겨진 의자에 앉아 20여분간 차분하게 결정문 요지를 읽어내려 간 법관의 입이 10일 오전 온 국민의 시선을 빼앗았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초유의 주문을 읽은 이정미(55ㆍ사법연수원 16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그는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 선고를 끝으로 6년간 몸담은 헌재를 13일 떠난다. 어떤 퇴임사를 남길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릴 정도로 법복을 입은 그의 모습과 목소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 권한대행은 박한철 전 헌재 소장 퇴임 다음날인 올 2월 1일부터 ‘8인 재판관’ 체제의 헌재를 38일 동안 이끌었다. 재판관 중 나이나 연수원 기수로 치면 가장 막내지만 헌재 근무기간을 따지면 최선임이다. 재판 초기 준비절차를 담당하는 ‘수명 재판관’으로도 활동해 이미 쟁점을 꿰뚫고 있었다. 그는 이번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감안한 듯 ‘신속과 공정’ 두 원칙을 지키려고 마지막까지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한대행 첫날 “절차의 공정성과 엄격성이 담보돼야 결과의 정당성도 확보된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재판진행 중 불거질 수 있는 오해의 싹을 자르겠다는 다짐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권한대행은 자신의 퇴임일 전 결정을 ‘졸속 심판’이라고 문제 삼은 대통령 대리인단과의 신경전도 매끄럽게 잘 정리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이 재판 지연전략 일환으로 무더기 증인 신청을 일삼았지만 무조건 거부하지 않고 들어볼 만한 증인은 적정선에서 받아줬다. 다만 납득하기 힘든 사유로 증인이 불출석하면 직권으로 증인 채택을 취소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대통령 대리인단의 시간 끌기용 질문에는 “간단하게 신문하라”며 변론 진행을 이어갔고, 심증 형성에 도움이 안 되는 의견 위주의 질문이 반복되면 “사실관계만 물으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 대통령 측 김평우 변호사의 막말과 논점을 이탈한 주장을 2시간 이상 들어줬지만 인신공격성 발언에는 참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김 변호사가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을 겨냥해 “국회 측 수석대리인”라고 한 발언에는 “감히 이 자리에서 할 수 없는 말이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박한철 전 소장 퇴임 뒤 강단 있는 재판 진행에 어려움을 겪을지 모른다는 일각의 우려는 기우였던 셈이다.
특히 “재판관 8인 체제는 위헌”이라는 등 대통령 측의 막무가내 공세에도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탄핵 결정이 날 때까지 차분하게 헌재의 권위를 지켰다. 그는 이날 선고에서 “8인 재판관 결정은 법률상 문제가 없다”고 못 박으면서 대통령 측 주장을 일축했다.
이 권한대행은 2011년 이용훈 전 대법원장 지명을 받고 최연소로 헌재에 입성해 취임 초기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당시 다른 후보들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6, 7기나 후배여서 ‘기수 파괴’ 인사라는 얘기를 들었다. ‘여성’과 ‘비서울대(고려대)’ 출신으로도 이목을 끌었다.
그는 헌법재판관으로 발탁되기 전 법관 재직 당시 부드러운 재판 진행으로 소송관계자들의 승복률이 높다고 정평이 나있었다. 재임 동안 사회적 약자의 권리보호를 중시했으며,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소신을 지켰다는 평을 주로 받았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사건 주심 재판관으로 ‘찬성’ 의견을, 2015년 교원노조 가입자를 현직으로 제한한 교원노조법에 ‘합헌’ 의견을 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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