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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10)하춘화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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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10)하춘화와 나

입력
2002.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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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하춘화(河春花)씨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그녀는 오늘의 내가 있게 한 주인공이다. “시간 약속만큼은 절대 깨뜨리지 말라”며 프로 의식을 가르쳐 준 사람이다. 그는 지금도 내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나는 15세 연하인 그녀를 공주님처럼 모셨다. 지역 깡패들이 그녀에게 접근하려면 우선 나부터 상대해야 했다.

이리역 폭발사고 때 나는 머리가 깨진 상태에서도 그녀부터 찾았다. 내 인생에 두 사람을 꼽으라면 하춘화와 박종환(朴鍾煥)이다.

1974년 봄이었다. 얼굴 때문에 최봉호(崔奉鎬)씨와 김영호(金瑛鎬)씨에게 연이어 퇴짜를 맞은 나는 충무로를 다시 기웃거리고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동네 약장수 쇼의 MC도 마다하지 않던 그때, 드디어 기회가 왔다. “주일이, 너 이리로 빨리 와야겠다.” 최씨의 전갈이었다.

지방 공연을 끝낸 하춘화가 서울 국도극장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사회자가 펑크를 낸 것이다.

사회자는 가수 박상규(朴祥奎)씨. 그가 방송 출연 때문에 낮 공연에 참석할 수 없게 되자 최씨가 다급히 나를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대본을 주는데 태어나서 대본을 그렇게 열심히 외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무대에 섰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그날 쇼의 주인공은 김추자(金秋子)와 쌍벽을 이루던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하춘화가 아닌가.

무대에서 무엇을 말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넘어질 땐 확실히 넘어졌고 구를 땐 확실히 굴렀다.

귀를 파고드는 엄청난 웃음과 환호. 무릎에서 피가 나는 줄도 모른 채 넘어지고 구르면서 울고 또 울었다.

아내 생각도 났고 큰 아들 창원(昌元)이 생각도 났다.

그날 밤 여관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최씨가 나를 찾아왔다. “야, 고기 좀 먹어야지. 그래 갖고 힘 쓰겠냐.” 그리고는 여관 옆에 있던 장어 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양껏 먹어. 너 하는 짓 보니까 보통 먹어선 안 되겠다.” 나는 이 몇 마디에 감동해버렸다. 그 맛있는 장어를 어떻게 먹어치웠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다.

그날 이후 나는 하춘화 쇼의 단골 사회자가 됐다. 적어도 500회 이상을 따라다녔다. 그러면서 슬슬 전국무대에 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버지 하종오(河宗五)씨의 엄격한 ‘재산관리’ 때문에 처음으로 서울 금호동에 내 집을 가질 수 있었다.

“연예인은 도태되기 쉽다. 돈 벌 때 아껴 써야 한다”며 월급날이면 내 아내를 불러 직접 돈을 건넸던 것이다.

하춘화씨 이야기는 이리역 폭발사고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생생하고 끔찍한 현장이었다. 정말 전쟁이 난 줄 알았다.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께. 이리역에서 100㎙ 정도 떨어진 삼남극장에서 막 오프닝 멘트를 끝내고 돌아선 순간이었다.

‘꽝’ 하는 폭발 음과 함께 극장 지붕이 모두 날아가버렸다. 극장 단원도 나도 모두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하춘화씨부터 찾았다. 불길이 치솟는 난로 옆에 그녀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나도 머리에 피를 많이 흘린 상태였지만 무조건 그녀를 들쳐 업고 뛰었다. 그녀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3~4㎙의 극장 벽을 어떻게 뛰어넘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극장 밖으로 나오자마자 쓰러졌다.

이때 14명이 죽었고 나는 뒷머리가 함몰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4개월 후 퇴원을 하자 최봉호씨가 말했다. “저 놈 진짜 의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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