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선 기자

등록 : 2017.03.15 04:40
수정 : 2017.03.15 04:40

미술품 투자, 즐겁고 보람되지 아니한가

기자가 맛본 미술 시장의 쓴맛

등록 : 2017.03.15 04:40
수정 : 2017.03.15 04:40

초저금리 시대에 힘을 못 쓰는 재테크 대신 ‘아트 테크’에 눈을 돌려 보자. 아트 테크(Art+Technology)는 미술품 투자로 재산을 불리는 전략적 기술.

미술품의 가치는 가격으로 따지는 게 아니라고 배웠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나 이번에 윤병락 작가 ‘청사과’ 한 점 샀잖니”라는 자랑이 ‘돈이 튀는 이의 허세’가 아닌 ‘우아하고도 영리한 투자 활동’으로 해석되는 세상. 그 세계를 살짝 들여다봤다.

실망으로 끝난 미술 시장 첫 도전

‘재(財)가 있어야 테크를 한다’는 투자의 기본 원리. 갖고 있는 미술품의 가격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부모님 소장품인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와 헝가리 옵아트 작가 빅토르 바자렐리의 석판화 두 점과 ‘매우 귀한 조선시대 작품’으로만 알고 있었던 까치 그림의 시세를 문의했다. 미술품 시세 감정 애플리케이션인 ‘프라이스 잇(Price It)’을 이용했다.

기자 부모님의 소장품. 헝가리 옵아트 작가 빅토르 바자렐리의 판화(왼쪽 위),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의 판화(왼쪽 아래), '환금성 없음' 판정을 받은 까치 그림.

작품 사진을 찍어 올리고 며칠 만에 감정가가 나왔다. 모바일 버전의 ‘TV쇼 진품명품’인 셈. 결과는 엄청난 실망. 1990년대 서울 삼청동 화랑에서 오르내린 가격이 수백만 원이었다는 석판화 두 점의 시세는 각각 100만~300만원. 그나마 석판화는 “진품으로 최종 확인되면 경매에 내놓을 수 있다”고 했지만, 까치 그림은 “시세 10만~30만원으로 시장에 내놓을 가치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작가들의 이름값을 굳게 믿었던 아버지, 이사할 때마다 까치 그림을 모시고 다닌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무어와 바자렐리는 유명하기는 하지만 요즘 미술 시장에서 각광받거나 활발하게 거래되는 작가는 아니다. ▦야요이 쿠사마, 요시토모 나라를 비롯한 극소수 작가 작품이 아니면 판화는 별로 인기가 없다. 미술품 감정 평가사의 설명이다. 미술 시장은 작가의 이름이나 왕년의 가격만 믿고 덤비면 안 되는 냉정한 곳이라는 깨달음. 결국 무지가 문제였다.

주식 시장의 개미 같은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미술과 시장을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서울옥션’의 서울 평창동 센터에서 7일 열린 ‘마이 퍼스트 컬렉션 경매’. 중ㆍ저가 미술품 경매인 만큼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초보 컬렉터, 컬렉터를 꿈꾸는 이, 안목 훈련을 하려는 이들이 모였다. 천경자, 이왈종, 배병우, 장 미셸 바스키아, 데이미언 허스트, 다카시 무라카미 등 유명 작가의 작품 약 100점이 1시간30분 사이에 수십만~수천만 원대에 낙찰돼 팔려 나갔다.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는 “월급을 아끼고 아껴서 미술품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미술품 투자가 재벌가와 부유층이 독점하는 취미 생활 또는 탈세 수단이던 시절이 저물고, 미술 시장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얘기다. 경매에서 만난 회사원 박영미씨는 “1, 2년 지나면 옷장에 처박히는 명품 핸드백 대신 미술품에 투자하려 한다”며 “미술 시장이 어떤지 살펴보러 왔다”고 했다. 일본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는 이정민씨는 “미술품이 고유의 예술적 가치가 아닌 외부 요인으로 평가받고 즉석에서 가격이 매겨지는 장면이 혼란스럽다”고 했다.

7일 서울옥션 '마이 퍼스트 컬렉션'에서 낙찰된 작품들. 사이드쇼의 다스베이더 피규어(낙찰가 50만원,왼쪽부터) 장 미셸 바스키아 ‘Cabeza, from Prtfolio Ⅱ’(4,200만원) 로메로 브리토 ‘무제’(360만원) 요시토모 나라 ‘Doggy Radio’(350만원).

우아한 투자… “보고, 느끼고, 공부하라”

세계 경제 흐름에 울고 웃는 금융 상품, 감가상각 비용이 크고 중고 가격이 확 떨어지는 사치재, 리스크가 큰 부동산… 미술품이 대체 투자품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컴퓨터 모니터의 숫자나 무게로만 존재하는 금융자산이나 금과 달리 취향에 따라 고른 작품을 즐기면서 보유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문제는 세상은 넓고 작가는 많다는 것이다. 모든 미술품이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문화예술 교육컨설팅 업체 에이트 인스티튜트의 박혜경 대표가 제시한 미술 투자 입문자를 위한 현실적 팁.

①원로 대가의 회화, 드로잉, 소품에서 시작하는 게 안전하다. 판화보다는 사진이 낫다.

②저평가된 젊은 작가, 미술계에서 검증 받았지만 아직 회고전을 열지 않은 작가를 부지런히 찾아내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언젠가 뜨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자.

③사려는 작품이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자. 작가의 화집을 살펴보고 공부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④스스로 보는 눈이 없다고 생각하면 경매사를 택하라. 현 시점에 가장 잘 팔릴 만한 작품들이 세심하게 선별돼 나온다. 경매사가 출품 가격을 낮추려 하기 때문에 합리적 가격에 좋은 작품을 구할 기회가 많다.

⑤취향이 분명하고 안목에 자신이 있다면, 또 장기 투자를 고려한다면 화랑으로 가자. 역량 있고 검증된 화랑이 개최하는 개인전과 회고전을 노려라. 다양한 전시를 찾아 보고 자신과 취향이 맞는 화상을 만나라.

1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화랑협회 주최 '2017 화랑미술제'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인간의 가장 수준 높은 정신을 감각적으로 구현해 내는 능력’(헤겔) ‘삶의 긍정이자 축복, 삶을 완성시키는 것’(니체) 그런 예술의 환금성과 시장성을 따지는 게 여전히 불편한가. 그러나 예술은 열심히 그리고 만들고 찍어 내는 예술가들의 열정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고 후원해야 한다. 화랑에서, 경매에서, 아트 페어에서, 온라인 상점에서 치르는 가격은 신진 작가, 젊은 작가, 가난한 작가에 대한 투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위한 투자다. 침실에 건 화사한 꽃 그림을 보면서, 거실 장식장에 놓아 둔 백자를 보면서 기뻐할 수 있다면, 당장 대박이 나지 않아도 즐겁지 아니한가.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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