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통령 결선 투표를 8일 앞둔 지난달 29일 파리 근교 신도시 라데팡스의 광장. 행위예술가 올리비에 드 사가장(58)은 개 짖는 소리를 내는 퍼포먼스를 했다. 퍼포먼스의 의미를 묻자 그는 “이것은 국민전선(FN)을 피하기 위해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투표하라는 호소”라며 “마크롱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마린 르펜이 더 나쁘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답했다. 세 시간 남짓 계속된 그의 퍼포먼스에 지나가던 시민 2명이 더 동참했다.
프랑스와 유럽의 향방을 좌우할 결선 투표일(7일)이 임박하면서 파리에서는 연일 반(反)르펜전선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과 사회당 브누아 아몽을 비롯한 많은 정계 인사들이 이미 ‘앙마르슈!’(전진)의 마크롱 지지를 선언하며 르펜에 대항할 ‘공화주의 전선’을 세우고 있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가치 중 하나인 형제애를 수호하기 위해 극우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파리 북쪽 10구 한 바에서 만난 엠마(21)는 망설임 없이 “르펜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내 신념에 반한 투표지만, 위협에 맞서 투표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반면 프랑스 언론이 전하는 지방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언론, 자본 등과 결탁해 온 기존 정치 엘리트들이 지방 중산층을 홀대했다는 반발은 기득권 세력을 상징하는 마크롱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북부 베툰에서 보석을 파는 프랭크(50)는 “3년 동안 좌파냐 우파냐, 우파냐 좌파냐만 계속됐고 이제 질렸다. 우리는 과두제에 의해 통치 받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마크롱을 ‘올랑드의 문하생’이라며 “마크롱의 이미지는 완전히 정치권력에 굴복한 언론이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1차 투표에서 공화당 피용 후보를 지지했던 안느(63)는 “원래 기권을 하려했으나, 정치와 언론이 결탁해 르펜에 반대하기 위해 벌이는 음모에 화가 난다”며 르펜에 표를 던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국민전선 대표 사퇴를 표명하는 등 극우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르펜의 노력이 마크롱과 르펜의 지지율 격차를 59%대 41%(2일 현재ㆍ엘라브)까지 좁힌 가운데, 현지에서는 어떤 후보에 대해서도 지지의 뜻을 밝히지 않은 장뤽 멜랑숑(좌파당) 지지자들의 선택이 대선 향방을 결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택배일을 하는 조(40)는 1차 투표에서 멜랑숑에게 투표했으나, 2차 투표에서는 르펜을 뽑을 생각이다. 그는 “국민전선에 투표하는 것은 구역질 나는 일이지만, 전략적으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급진적 자유주의자인 마크롱의 집권은 “올랑드와 사르코지 정부의 연속”이라고 비판했다.
기권의사를 표시한 이들도 적지 않다. 멜랑숑 자신도 “르펜은 뽑지 말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마크롱 지지를 선언하는 것은 거부한 상태라 지지자들에게 기권을 권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르고뉴에 사는 작곡가 장이브(63)는 “파시스트 독재자건 자본가 독재자건 누구도 뽑지 않겠다”고 말했다.
프랑스 제 5공화국 정부 설립 이래 처음으로 공화당과 사회당이라는 양대 정당 후보 없이 이루어질 결선 투표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당장 2차 선거 참관인을 어떻게 채울지가 문제다. 파리 남쪽 근교 에손지방의 경우 1차 투표에서 국민전선과 앙마르슈의 선거 참관인은 각각 85명과 280명 남짓이다. 이는 공화당 1,200명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국정 운영에는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 의회 전체 925석 가운데 국민전선과 앙마르슈 의석은 각각 3석과 0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크롱ㆍ르펜 중 어느 쪽이 당선되더라도 기존 세력과의 공동 정부 수립은 불가피하다는 게 프랑스 언론의 공통된 예상이다. 6월 중순에 이루어질 총선은 ‘대선 3차 투표’라고 까지 불리는 등 전보다 더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빌쥐프ㆍ파리=엄태연 통신원ㆍ파리10대학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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