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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강을 헬강으로 만드나

입력
2016.05.0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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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족 한강을 헬강으로 불러

보행자, 초보들 안전수칙 몰라 혼잡

일부 동호인은 초보에 막말도

자전거문화 자리잡기까지 먼 길

15일 늦은 밤. 잠실 한강공원을 달리는 자전거 동호인들. 팩 라이딩에 전념하다 보면 공원구간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을 때도 있다. 길이 넓어지며 보행자가 보이는 구간에선 서행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15일 늦은 밤. 잠실 한강공원을 달리는 자전거 동호인들. 팩 라이딩에 전념하다 보면 공원구간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을 때도 있다. 길이 넓어지며 보행자가 보이는 구간에선 서행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알고 계세요? 나보다 느리게 운전하는 사람은 전부 멍청이고 나보다 빨리 운전하는 사람은 전부 미친놈이란 사실 말입니다.” (코미디언 조지 칼린)

로드바이크를 타고 처음 달린 한강. 자전거도로는 인내심을 시험하는 사람으로 가득찼다. 걷는 편이 낫다 싶을 정도로 느리거나 바람 소리로 사람을 놀래키는 폭주족들. 나만큼 자전거를 즐길 자격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번쩍이는 새 자전거 샀겠다, 엉덩이 지키는 쫄쫄이 입었겠다. 무엇보다 온라인 자전거 커뮤니티를 탐독하며 안전수칙을 십계명 수준으로 외웠다. 병렬주행은 죄악이고 방향을 바꿀 땐 반드시 손으로 신호한다. 추월은 왼편으로 하고 일찍 알려야 앞선 사람이 불안하지 않다. 이따금 갈지자之로 달리는 불신자를 만나면 어김없이 정의의 지적을 날렸다. 이렇게 안전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 또 있을까, 비켜라 나는 달리련다.

선민의식이 병세를 더한 지 여러 달. 마침내 누님이 폭발했다. 현란한 수신호와 함께 가족 나들이를 마쳤는데 표정이 심상치 않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간 쌓였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무슨 규칙이 그렇게 많으냐, 이래라 저래라 가르치지 마라, 뒤에서 좀 떨어져라 등등. 모두 안전을 위한 것인데 왜 화를 낼까. 자전거는 빨리 달릴수록 재미가 더하는 운동이고, 한강은 혼잡하니 라이딩을 즐기려면 규칙과 수신호를 익혀야 하는데. 한동안 혼자 강변을 달려야 했다. 그저 야속할 뿐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날들이었다.

지난달 말 찾은 여의도 한강공원. 보행자와 자전거가 섞여 달려 곳곳에서 정체가 벌어졌다. 사진은 공원구간 초입이라 그나마 한산한 편.
지난달 말 찾은 여의도 한강공원. 보행자와 자전거가 섞여 달려 곳곳에서 정체가 벌어졌다. 사진은 공원구간 초입이라 그나마 한산한 편.

●헬강(hell江)이 열렸다

자전거 성수기가 시작되는 5월. 이맘때부터 자전거 동호인은 한강을 헬강이라고 부른다. 나들이객으로 붐비는 한강공원을 지옥(hell)에 빗댄 말이다. 한강 이용인구는 4월부터 폭증해 여름철 500만명을 웃돈다. 올해도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헬강은 안 가는 게 진리”라는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엄살만은 아니다. 이달 초 주말을 맞아 찾아간 한강 자전거도로는 곳곳에서 정체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한강공원에 접어드는 구간마다 보행자가 길을 점령해 자전거가 꼼짝할 수 없었다. 여의도 구간 4km를 지나는데 반 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자전거를 탔다기보다 끌고 다닌 셈이다.

보행자는 자전거도로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늘을 찾느라 좌우를 살피지 않고 자전거도로에 뛰어들기 일쑤였다. 자전거도로를 산책로 삼아 걷는 사람도 많았다. 인도와 자전거도로 경계가 흐릿한 것이 무질서를 부추겼다. 한강사업본부가 경계석 설치 등 환경개선에 나섰지만 아직 일부 구간일 뿐이다.

자전거 운전자도 질서를 안 지키기는 마찬가지. 급정거는 기본이고 중앙선은 장식으로 전락했다. 보행자를 피한다고 차선을 넘나든다(왜 멈출 생각을 못할까). 어떤 커플은 자전거도로를 독차지하고 자전거 강습을 벌였다. 균형 잡는 법조차 몰라서 다른 사람이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줘도 비틀거린다. 뒤따르는 사람은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 올해부터 서울 중학생에게 자전거 타는 법과 안전수칙을 가르친다니(그마저 1학년 여학생만!) 헬강이란 오명을 벗으려면 갈 길이 멀다.

강습은 공터에서 마치고 자전거도로로 들어오는 편이 어땠을까. 방향을 예측할 수 없어 보는 사람이 더 불안했다.
강습은 공터에서 마치고 자전거도로로 들어오는 편이 어땠을까. 방향을 예측할 수 없어 보는 사람이 더 불안했다.

●한강을 독점하지 마세요

그러나 한강을 지옥으로 만드는 주범은 따로 있다. 나들이객과 자전거 초보를 윽박지르는 일부 못난 자전거족이다. 그저 몰라서 저지른 실수인데 중범죄를 저지른 것마냥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대다수 시민은 모르는, 동호인마저 알고도 못 지킬 때가 많은 예절과 안전수칙을 누구나 당장 따라야 한다고 소리지른다. 한줌이 안 되는 무리가 전체 자전거족을 욕먹이고, 자전거에 호감을 보이던 사람까지 자전거 혐오자로 만든다. 지인은 오랜만에 어린 딸과 한강을 산책한 이야기를 자랑하다가 대뜸 화를 냈다. “거, 자전거 전부 못 다니게 해야 돼. 아주 못된 놈들이야. 자전거도로로 잘못 나갔다고 애한테 욕을 하더라니까!”

좋은 소리도 강요하면 듣기 싫은 법이다. 전달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다. 안전수칙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한 소리 들었다고 갑자기 자전거를 바르게 탈 수 있을 리 없다. 누님처럼 가족을 붙잡고 설명해도 지나치면 듣기 싫은 법. 모르는 사람 옆으로 쌩- 지나가며 외친다면 반감만 산다. 보행자를 떼어놓고 자전거 인구만 따져보자. 지난해 한강 자전거도로 이용객은 1,481만명. 대다수는 태어나서 한번도 체계적인 자전거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오랜만에 맑은 날씨에 십수년 묵혀둔 자전거를 끌고 나온 사람, 데이트 나왔다가 자전거 대여소가 보이니까 한번 빌려 타보는 사람이 많다. 똑바로 가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아, 똑바로 달리라고" "한 줄! 한 줄!" 이 아닌 점잖게 “한 줄로 가셔야 안전합니다” 한마디면 충분하다.

지난해 자전거길과 산책로 경계에 분리대를 세운 잠실 한강공원 구간. 아직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보행자는 드물지만 서로 동선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점이 소득이다.
지난해 자전거길과 산책로 경계에 분리대를 세운 잠실 한강공원 구간. 아직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보행자는 드물지만 서로 동선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점이 소득이다.

●한강은 경륜장이 아니다

동호인 중에는 안전수칙만 지키면 속도를 내든 말든 무엇이 문제냐는 사람이 꽤 있다. 커뮤니티에서는 때때로 살벌한 말싸움이 벌어진다. 핸들이 닿을락말락한 간격으로 빠르게 추월하는 자전거에 놀란 누군가가 포문을 연다. 시속 20km 이상 속도를 내지 말라는 팻말이 여기저기 섰는데 쫄쫄이 입은 무리는 왜 그렇게 빨리 달리나요. 금세 반박이 올라온다. 성인이면 조금만 밟아도 속도가 오르는데 제한속도가 비현실적이라는 불평으로 시작해서 “그건 법적 제한속도가 아니잖아요!”라는 역공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제한속도 20km는 법으로 정한 기준이 아니다. 설계속도일 뿐이다. 포털 토목용어 사전은 설계속도를 ‘도로 설계의 기준이 되는 속도. 도로 상황, 교통 상황 및 기후가 양호한 상태에 있을 때의 도로의 안전, 연속 운전의 최고 속도를 취한다’라고 설명한다. 즉 한강 자전거도로 제한속도는 한강사업본부가 “이 정도면 안전하겠다”라고 생각해서 써 붙인 속도, 라고 자전거도로 관리 담당자는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제한속도를 지켜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그 속도 아래로 달려야 안전하게끔 도로를 만들었으니까.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부 동호인 말대로 사고의 본질적 책임은 갑자기 좌회전한 초보 운전자, 지그재그로 달리는 세발자전거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과속 운전자 역시 사고 위험을 높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법으로 강제하지 않았다고 방심한다가 발생한 불행한 사고를 우리는 넌더리 나도록 봐 왔다.

매년 여름이면 마음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월급을 털어 자전거를 사고 처음 맞은 여름, 뚝섬유원지 다리 밑에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서 있던 여학생들이다. 자전거도로는 꼬리를 물고 빠르게 달리는 동호인이 물결을 이뤘다. 아이들은 촘촘한 대열에 끼어들 용기를 내지 못하고 대여소에서 빌린 자전거 핸들만 꼭 붙잡고 서 있었다. 마주보고 “어떡하지, 어떡하지”만 말하던 얼굴들. 자전거에 재미를 붙였을까? 아니면 불편한 기억으로 남았을까. 언제쯤이면 그런 표정을 마주치지 않을까. 한강 자전거도로는 모두의 것. 그런 마음을 품는다면 지금 당장도 가능하다.

◆ 한강공원에서만이라도 서행 어때요?

동호인뿐만 아니라 많은 자전거 이용자가 한강과 지류의 자전거도로를 일종의 자전거 고속도로로 이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자동차와 달리는 부담 없이 넉넉잡아 2시간이면 서울을 동서로 가로지를 수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반포, 뚝섬 등 한강공원에 진입하기 직전만큼은 ①20km 이하로 속도를 줄이고 ②팩 라이딩 대열을 잠시 분리하는 것이 어떨까? 지난달 서울시가 국내 최대 자전거 온라인 커뮤니티인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과 협력해 '자전거 안전수호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안전문화 확산을 위한 협약도 맺었단다. 자전거길 제한속도 등 아직 공백으로 남겨져 있는 기준을 분명히 하는데 한걸음 나아간 셈이다.

◆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신다면

자전거 도로주행 규칙이 궁금하다면 다음 링크를 누르세요 (▶ 글 보기). 이밖에 요즘 자전거는 왜 비싼지(글 보기), 초보자도 갈 수 있는 수도권 자전거길은 어디가 있는지(글 보기)도 한국일보 연재 [두바퀴 찬가]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기사 A/S

여러 네티즌 말씀대로 한강공원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 대부분의 자전거도로가 자전거-보행자 겸용 도로가 맞습니다. 그러나 한강의 경우는 자전거와 보행자 도로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섞여 달릴 수 없을 정도로 자전거 이용자가 많으니 구분해야 서로 안전하고 편하죠. 한강사업본부도 두 가지 길을 지속적으로 분리해 나가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보행자도 자전거도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더 좋은 자전거 이야기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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