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 중 3명은 메신저 대화
“한꺼번에 메시지 보내 편리
만나거나 전화하면 스트레스”
가족 간 대화도 메신저 선호
#‘손가락 대화’ 곳곳 갈등
중년층 사이에선 “예의 없다”
젊은 층선 “시대가 변했다”
어느 장단에 맞출지 헷갈리기도
#간섭 받고 싶지 않다
미디어에 익숙한 20대 절반
“모르는 사람 의도적으로 피해”
아예 대화 자체를 꺼려
긴 추석 연휴에도 업무 때문에 친척집 방문을 하지 못했던 강조현(25)씨는 ‘못 간다’는 말을 카톡으로 대신했다. 아버지가 ‘큰집에 전화를 하라’고 수 차례 말했지만 할말이 딱히 없어 전화를 하기 껄끄럽다는 이유에서다. 대학생 조은영(24)씨도 ‘명절을 맞아 친척 언니, 오빠와 점심식사라도 한 끼 하면 어떻겠냐’는 어머니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조씨는 “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사촌들과 식사하는 동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부담스럽다”고 했다.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한자리에 모이지만 왁자지껄한 풍경은 금세 사라진다. 안부 인사를 전하고 나면 침묵이 이어진다. 얼굴을 맞대는 식사자리마저 저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TV 시청하기에 바쁘다. 회사원 정모(51)씨는 “연휴 고향 한 식당에 3대가 모인 가족 10여명이 앉아 밥을 먹는데 절반이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있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꼭 ‘말’로 할 필요 없잖아?”
지방자치단체에서 예산 업무를 담당하는 3년 차 공무원 고모(27)씨는 10일 연휴를 이용해 아예 ‘나 홀로 여행’을 떠났다. “해외여행을 가기 좋은 절호의 기회”라 둘러댔지만 “평소 왕래도 없고 안부조차 주고받지 않던 친척과 마주앉아 불편한 대화를 주고받느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낫다는 판단도 없지 않았다”는 게 그의 얘기다.
“명절에 혼자 보내면 외롭지 않겠냐”는 주변 우려도 있었지만 고씨는 “낯선 경험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집이나 회사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는 게 일상이기 때문. 대화 자체를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입’보다 ‘손가락’을 이용할 뿐이다.
가족에게 하는 ‘말’이라곤 출근 전 “다녀오겠습니다”, 퇴근 후 “다녀왔습니다”가 전부. 그 외는 모두 가족 ‘카카오톡(카톡)’ 단체대화방에서 이뤄지는데, 보통 하루 50개 남짓 메시지가 오간다. 회사에서도 ‘말’이 없긴 마찬가지다. 업무는 대부분 이메일로 처리한다. ‘업무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굳이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크다. 퇴근 후엔 가죽공예 강습을 받거나 헬스장을 찾는데, 거기서도 꼭 필요한 질문 외 대화는 최대한 삼간다. 고씨에 따르면 하루(평일 기준)에 ‘말’ 하는 시간은 1시간 남짓, 그마저도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누군가 말을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톡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인스턴트 메신저는 등장한 지 10년이 안 돼 현대인의 필수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사진과 동영상 첨부는 물론 상황에 따라 적절히 이모티콘을 쓸 수 있는데다 한 번에 여러 명에게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할 수도 있으니 “이 편리한 메신저를 쓰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게 더 힘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전화를 걸거나 직접 만나 대화하는 행위는 그만큼 등한시되고 있다. ‘전화를 하고 직접 대면 대화를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생각은 이내 촌스러워졌고, ‘글로 해도 될 걸 굳이 말로 하는 게 비효율 아니냐’는 논리가 유행처럼 번졌다.
이는 본보가 8월 13일부터 약 2주간 네티즌 3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실시한 설문 결과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응답자 4명 중 무려 3명(75.7%, 227명)이 대화를 주로 메신저(문자 포함)를 통해 한다고 답했다. 전화, 대면이란 응답은 각 10.7%(32명), 8.7%(26명)에 불과했다. 가족 간이라고 해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메신저가 43.7%(131명)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전화(27.0%, 81명) 대면(25.7%, 77명)이 뒤를 이었다.
메신저 선호는 압도적이다. 절반 가량(49.7%, 149명)이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메신저가 편하다’고 했다. 상대가 가족일 땐 그나마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게 좋다’(46.7%, 140명)는 응답이 메신저(24.3%, 73명)보다 많았지만, “마주앉아 대화하기엔 여유가 없다”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한꺼번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결국에는 카톡 등을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부모와 함께 사는 직장인 박모(30)씨는 “회사에 다녀오면 몸도 마음도 지쳐 집에 와서도 시시콜콜 말로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
메신저를 찾는 이유로 역시나 ‘편리하다’는 점이 첫 손에 꼽혔으나, ‘직접 만나거나 전화하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답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대화 중간 공백이 견딜 수 없이 불편하다”(응답자 A씨)거나 “밝은 목소리와 표정을 유지하는 게 ‘감정소모’라 느껴지는 데다, 직접 만나 돈을 쓰고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깝다”(B씨)는 것이다.
“메신저, 때와 장소 가려야” 곳곳서 갈등
‘입과 귀’가 아닌 ‘손과 눈’으로 하는 대화에 대한 반감도 표출된다. “카톡으로 할 말이 따로 있고, 안 할 말이 따로 있다”는 반박이 대표적이다. 특히 메신저 없이 살아온 날이 함께 한 날보다 몇 배는 길었을 중년층 사이에서는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 메신저를 ‘툭’ 던져놓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완강한 목소리가 나온다. “사회가 변하면 대화 수단이 변하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니냐”는 젊은 세대에게 ‘예의와 존중’ 등을 내세우는 것이다.
얼마 전 결혼한 주부 이모(28)씨는 “몇 달 전 시부모에게 ‘제대로’ 혼이 났다”고 했다. “신혼여행지에 도착하니 한국시간으로 새벽 1시더라고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연락을 못 했고 다음날 아침 일찍 ‘어머님, 아버님^^ 잘 도착했어요’라고 카톡을 했어요. 국제전화비가 비싸기도 하고. 답장을 않으시기에 ‘무슨 일 있으신가’ 싶어 전화를 했더니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혼을 잔뜩 내시더라고요. ‘죄송하다’고는 했지만 뭘 그렇게 잘못한 건지 모르겠어요.” 이씨는 여전히 시부모의 꾸짖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명절 등 특별한 날을 핑계 삼아 1년에 한두 번씩 했던 안부전화도 카톡이 대체한 지 오래다. 20년 가까이 학원을 운영한 신모(50)씨는 “제자들이 카톡이나 SNS를 통해 보내는 ‘명절 잘 보내라’ ‘생신 축하 드린다’는 메시지도 고맙지만 전화로 주고받는 안부만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업무 관련 메신저 사용 여부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카톡으로 얘기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기록으로도 남게 되니 나중에 내용을 찾아보기도 쉽다”(직장인 장모씨)는 긍정론이 있는 반면, “지시사항이나 보고 누락, 특히 오해 방지를 위해 최대한 직접 만나는 게 좋다”(대학생 C씨)는 반론도 있다. 은행원 D씨는 “얼마 전 누군가 은행에 지갑을 두고 갔기에 찾아주려 전화를 걸었는데 ‘고맙다’는 말은커녕 ‘왜 대뜸 전화를 하냐, 문자를 해야지’라는 호통을 듣고 적잖이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이렇다 보니 가끔 어느 장단에 맞출지 헷갈리게 된다. 나이나 직급을 과하게 고려, 직접 전화를 했다가 오히려 핀잔을 듣는 경우도 있다. 인턴사원으로 근무 중인 정서영(26)씨는 “회식 참석 유무를 조사하는데 윗사람에게 카톡을 보내는 게 너무 가벼워 보여 말을 걸었더니 ‘왜 카톡으로 하지 않느냐’고 되묻더라”고 했다. 아랫사람 눈치 탓에 마지못해 메신저를 사용하는 상사도 있다. 올해 초 팀장이 된 남모(40)씨는 ‘카톡보단 전화가 좋다’고 선언했지만 지금은 팀원들과 카톡 대화를 주로 하고 있다. 그는 “팀원들이 거부감을 느끼는데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과는 아예 ‘대화 거부’도
아는 관계에서도 ‘글’을 우선하니, 굳이 모르는 사람이나 몰라도 되는 사람과는 아예 ‘말’ 자체를 꺼리게 된다. “미디어를 매개로 한 관계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 지난해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20대 남녀 643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응답자 절반(50.1%)이 ‘처음 만났거나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피한 적 있다’고 할 정도다. “개인신상을 알리고 싶지 않다” 혹은 “알려서 좋을 것 없다”는 게 이유로 꼽혔다.
자연스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대화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피하는 방법까지 고민하게 된다. 직장인 이정민(28)씨는 “상점 직원들이 말을 걸면 대답 대신 은근한 미소를 짓곤 한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최민식(26)씨는 “자주 가는 카페에서 ‘무슨 공부하냐’는 질문을 받을까 부담스러워 말을 거는 순간 이어폰을 착용해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는 걸 알린다”고 귀띔했다.
‘내가 누군지 상대가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직장인 심모(27)씨는 “식당 주인이 ‘간만에 왔다’고 아는 체를 하는 순간 감시 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며 “이후 식당을 찾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반대로 불가피하게 말을 걸 수밖에 없는 입장에선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서울 용산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조규화(70)씨는 “손님들에게 ‘뭐 드실 거냐’고 묻는 것조차 눈치가 보일 때가 있지만 말을 거는 게 주인으로서 친근함을 표시하는 유일한 방법인데 어쩌겠냐”고 한숨을 쉬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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