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의 중재 결정적 역할
경찰·민노총도 유연하게 자제
불상사로 얼룩졌던 구습 탈피
"사회갈등 해결 새 이정표" 주목
경찰, 소요죄 적용 방침 정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서울 조계사에 은신한 지 24일 만에 스스로 나와 경찰에 검거됐다. 우여곡절을 겪긴 했어도 경찰과 조계종, 민주노총 등 이해 당사자 간 큰 충돌없이 사태가 일단락됐다는 점에서 지난 5일 평화롭게 끝난 도심집회에 이어 우리사회 갈등을 대화와 타합, 화해로 해결하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지 주목된다.
한 위원장은 10일 오전 10시25분 은신 중이던 조계사 관음전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조계종 화쟁위원장인 도법 스님과 함께 나타난 그는 대웅전으로 들어가 절을 올린 뒤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과 면담을 했다. 한 위원장은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법정에서 광기 어린 공안탄압의 불법적 실체를 낱낱이 밝히고, 혼돈에 빠진 불의한 정권의 민낯을 까발릴 것”이라며 경찰 출두 전 마지막 심경을 밝혔다. 그는 이어 조계사 정문 격인 일주문을 거쳐 대기하고 있던 경찰에 인계돼 오전 11시20분쯤 호송차를 타고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이송됐다.
조계종은 경찰의 조계사 검거 작전 등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던 이번 사태를 불상사 없이 마무리한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한 위원장 은신 직후부터 조계종 화쟁위원회는 한 위원장과 경찰, 정치권을 오가며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다. 특히 경찰의 경내 진입이 시작되기 직전 자승 스님이 “한 위원장 거취를 10일 정오까지 해결하겠다”며 최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결과적으로 평화적 문제해결을 위한 ‘신의 한 수’가 됐다는 평가다. 오종호 한국갈등해결센터 사무국장은 “양측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카드만 되뇌는 상황에서 조정자의 소임을 기꺼이 받아들인 조계종과 화쟁위의 역할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강경 자세를 고수하던 경찰이 막판 유연하게 돌아선 점도 사태 해결의 배경이 됐다. 경찰은 한 위원장이 자진퇴거 시한으로 못박은 6일 이후에도 미동을 않자 체포영장 강제 집행이라는 강수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조계사 경내에서 무리한 진압에 나섰을 경우 향후 정교(政敎) 충돌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위기의 순간 경찰 수뇌부는 조계종 중재안을 전격 수용하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법 집행’과 ‘불교계 달래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 됐다.
한 위원장 강제 검거를 둘러싸고 극한 반발이 예상됐던 민주노총 역시 폭력행위를 자제해 최소한의 명분은 챙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한 위원장이 언론에 집중 보도되면서 노동계의 주장들이 여론에 충분히 전달된 점도 성과로 평가된다.
한 위원장에 대한 본격 수사를 시작한 경찰은 그에게 소요죄를 적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한 달 가까이 법리 검토 과정을 거쳐 소요죄 적용에 무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경찰이 한 위원장 검거를 기점으로 민주노총 수사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여 동투(冬鬪)를 앞두고 노동계와 정부 간 갈등은 한층 격화할 전망이다. 노동개혁 5대입법 저지 등을 내걸고 16일부터 총파업을 예고한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한 위원장이 어디에 있든 민주노총은 총파업 투쟁을 더욱 강력하게 실천할 것”이라며 투쟁 의지를 다시금 확인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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