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둥회의서 평화 10원칙 인용
'침략' 표현엔 부정적 입장 확인
전후 70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담화의 테마가 ‘깊은 반성’으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아베 총리가 지난 22일 아시아ㆍ아프리카 정상회의(반둥회의) 연설을 통해 이 문구를 핵심키워드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연설은 8월 아베 담화 발표를 앞두고 올해 처음으로 해외에서 자신의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상징 무대였다.
그는 연설에서 “앞선 대전(大戰)의 깊은 반성과 함께…”란 대목에 이르자, 유독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이는 그가 이 부분을 강조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이처럼 ‘반성’은 필요하지만 ‘사죄’나 ‘침략’이란 단어를 포함시키길 극도로 꺼리고 있다. 역대 내각의 과거사 핵심문구를 배척함으로써 실질적인 일본정부 공식역사인식의 변경을 시도하는 것. 이와 관련 요미우리(讀賣)신문은 23일 ‘침략의 정의는 명확하지 않다’고 말해온 그가 “(내가 사죄하면) 전후 80년, 전후 100년에도 계속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주변에 얘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총리관저 연설 준비팀이 반둥회의 평화 10원칙을 인용하면서 ‘침략’을 간접 언급하는 변칙을 짜낸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일본은 ‘침략 또는 침략의 위협을 통해 타국 영토 보전…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반둥 원칙을 지킨다”는 애매한 화법을 구사하는 대신 침략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지지기반인 보수층은 물론 아시아 국가들과의 외교를 동시에 고려한 정치적 수사인 셈이다.
현재 아베 총리가 쓰고 있는 ‘앞선 대전의 반성’은 1941년 12월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을 참전케 한 태평양전쟁을 지칭한다는 게 중론이다. 만주사변(1931년)과 관련된 중국이나 그보다 더 거슬러올라가는 한국(1910년 한일병합) 경우는 제외된다. 다만, 중국과 관련해선 만주사변까지 침략으로 인정하는 발언이란 해석이 공존한다. 그렇더라도 한국은 대상에서 빠지게 된다.
실제 일본은 한국과 중국의 틈새를 벌리는 분리전략을 펴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웃는 얼굴로 중일 정상회담에 응한 배경과 관련 “시 주석은 철저한 반부패 노선으로 민중의 지지를 획득해 권력기반을 다져가고 있다”며 “국내의 대일 강경론을 억제할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근혜정부와 달리 대일 유화책을 점차 꺼내 들 것이란 얘기다. 때문에 중일관계가 급진전되면 결국 ‘식민지 지배’란 문구에 ‘집착’하는 한국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마련이고, 여론 피로증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아베 정권은 반둥회의 연설로 국내외 반응을 떠보는 수순에 들어갔다. 내주 미 의회 연설로 또 한번 여론동향을 참고하면서 8월 담화까지 간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중일정상회담 하루만인 이날도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무상 등 아베 내각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는 등 국제사회 비판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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