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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양떼구름에 ‘지진운’ 누명을 씌웠나?

입력
2016.09.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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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강진 이후 인스타그램에

지진운 관련 사진 2000여건 올라와

갈비구름ㆍ계단구름 등 이름도 다양

22일 서울 용산의 한 아파트 단지 상공에 신비스런 모양의 권적운(양떼구름)이 떠 있다. 최근 SNS 상에서 지진의 전조로 지목된 구름 사진 대부분은 낭만적인 양떼구름이다. 전문가들은 ‘지진운 공포’를 유사시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불안감의 집단적 표출로 진단했다.
22일 서울 용산의 한 아파트 단지 상공에 신비스런 모양의 권적운(양떼구름)이 떠 있다. 최근 SNS 상에서 지진의 전조로 지목된 구름 사진 대부분은 낭만적인 양떼구름이다. 전문가들은 ‘지진운 공포’를 유사시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불안감의 집단적 표출로 진단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지난 8월 27일 촬영한 권적운(양떼구름) 사진을 거꾸로 뒤집어 보니 푸른 바다 위 작은 섬들이 연상된다. SNS에는 이러한 모양의 구름 사진을 올리며 지진운이 맞는지를 묻는 경우가 많다.
경기 고양시에서 지난 8월 27일 촬영한 권적운(양떼구름) 사진을 거꾸로 뒤집어 보니 푸른 바다 위 작은 섬들이 연상된다. SNS에는 이러한 모양의 구름 사진을 올리며 지진운이 맞는지를 묻는 경우가 많다.

“예전엔 양떼구름이라고 예쁘다 했었는데 이젠 무섭네.”(인스타그램 아이디king_chulb***)

“소름 돋는 구름, 설마 지진운?? 무섭다” (pia***)

낭만적인 가을 구름이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띠 또는 물결모양의 구름을 지진의 전조, 즉 ‘지진운’으로 확신하거나 비슷한 형태의 구름 사진과 함께 불안을 호소하는 글들이 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11일 경북 경주에 리히터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한 이후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지진운 관련 사진은 2천여 건, 그 사이 이 지역에선 430여 차례의 여진이 이어졌다. 지진운으로 의심되는 구름 사진들 중에는 양떼구름 외에도 갈비구름. 계단구름, 밭고랑구름 등 새로운 명칭들이 붙는 경우도 있다.

기상청 “가을철 흔한 권적운일뿐

지진활동과 구름의 연관성 없어”

범상치 않은 모양의 구름에 ‘불길한 전조’의 꼬리표를 붙인 시초는 지진을 앞두고 발생한 전자파 에너지가 파동 모양의 구름을 만든다는 가설이다. 중국 쓰촨성 대지진 직전 지진운이 등장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직 아무도 지진과 구름의 연관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지는 못했다. 사실 SNS상에서 지진운으로 지목된 구름 대부분은 가을철에 빈번하게 만들어지는 권적운이다. 대기 중 수증기 양이 적어 구름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 낮은 고도에 비해 6km 이상의 높은 고도에서 수증기가 얼음 입자로 승화한 후 엉키면서 양떼나 물결 모양으로 얇고 넓게 퍼지는 형태의 구름을 생성한다. 기상청 관계자는 “권적운은 평상시에도 자주 나타나는 흔한 구름이며 지진을 구름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아직 없다”고 밝혔다.

한 인스타그램 이용자가 자신이 계정에 ‘지진운’해시태그와 함께 올린 사진. (withen** 인스타그램 캡쳐)
한 인스타그램 이용자가 자신이 계정에 ‘지진운’해시태그와 함께 올린 사진. (withen** 인스타그램 캡쳐)
지난 8월 27일(왼쪽)과 7월 4일 경기 고양시에서 촬영한 권적운(양떼구름). SNS상에서 지진운으로 지목된 구름과 흡사하다. 그러나 이 구름이 나타난 후 아직까지 경기 고양시 지역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보고는 없다.
지난 8월 27일(왼쪽)과 7월 4일 경기 고양시에서 촬영한 권적운(양떼구름). SNS상에서 지진운으로 지목된 구름과 흡사하다. 그러나 이 구름이 나타난 후 아직까지 경기 고양시 지역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보고는 없다.
10일 서울 용산구 길 바닥에 생긴 웅덩이에 권적운(양떼구름)이 비치고 있다.
10일 서울 용산구 길 바닥에 생긴 웅덩이에 권적운(양떼구름)이 비치고 있다.

과학적 근거가 희박한데도 지진운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는 이유가 뭘까. 심리학에서는 ‘현상과 원인의 연관성을 끊임없이 추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 때문으로 설명한다. 박성현 서울불교대학원대학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경주 지진과 같이 생존이 위협받는 불확실한 상황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불안으로부터 심리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예측을 하려 든다”면서 “그러나 우연성에서 확실한 해답을 찾으려는 욕구가 지나칠 경우 근거 없는 소문이나 괴담 같은 사고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ㆍ지진 미흡한 대처 탓

국가에 대한 불신ㆍ불안감 쌓여

‘지진운 공포’ 빠르게 확산

대중의 호기심과 ‘각자도생’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이 SNS를 만나 증폭된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박진규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지진운 공포의 확산은 미스터리적 현상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과 이미지를 통해 소통하는 SNS의 특성이 묘하게 맞아 떨어진 경우”라며 “눈앞에 등장한 구름을 찍고 올리고 퍼 나르면서 지진운을 일종의 놀이처럼 즐기는 현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근본적으로는 세월호 참사나 지진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대처 등을 겪으며 누적돼 온 국가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이 각종 괴담에 대한 집단적 관심으로 표출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25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상공에 나타난 일명 ‘갈비구름’.
25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상공에 나타난 일명 ‘갈비구름’.
지난 8월 27일 경기 고양시에서 촬영한 권적운(양떼구름).
지난 8월 27일 경기 고양시에서 촬영한 권적운(양떼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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