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핵 관련 발언이 심상치 않다. 3월에는 북한에 “최대한 제재와 압박은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유지돼야 한다”고 단언했던 그는 지난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난 뒤에는 유해졌다. 북핵 폐기 시점을 ‘천천히’ 해도 된다고 하고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언급은 피했다. 단계별 비핵화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는 다음주 북미 정상회담 개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는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그의 ‘미국 우선주의’ 원칙과 모순된다. 그가 북한 회유책을 꺼내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뒤늦게 깨달은 결과 같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이유가 과거 정부의 실수가 아닌, 복잡한 외교 전략의 손익계산에 내재된 천성적 제약에 있음을 통감했을 것이다.
때문에 북미회담은 의미 없는 선언적 행사로 끝날 공산이 크다. 북미 모두 북핵 문제 해결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게 급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권보장을 원하듯 트럼프도 정권(재선) 보장을 원한다. 두 지도자 모두 정상회담을 사유화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치러야 할 대가가 능력의 한계를 초월하고 지불 용의도 없어 보인다.
우선 트럼프의 국내 정치 입지는 풍전등화 같아서 회담의 실패라는 정치적 리스크는 수용불가다. 그의 수많은 정치, 사생활 스캔들에 미국 국민들은 철저한 조사를 요청하는 청원을 미 의회에 매일 올린다. 미 의회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청문회 개최부터 탄핵설까지 나돈다. 북미회담 실패는 그를 제2의 ‘지미 카터’로 전락시킬 수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국내 정치의 고초를 외교로 극복하려다 실패해 재선에 실패했다.
둘째,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개혁ㆍ개방과 반드시 상응해야 한다. 비핵화 모델로 ‘리비아 모델’이 거론된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될 전제는 핵시설의 사찰과 검증을 위한 북한의 전면적 개방이다. 수백 명의 미군과 정보요원, 수십 개의 국제기구가 북한 전역을 휩쓸 수 있어야 한다. 특히 2년 내 비핵화는 북한이 외국인의 벌떼 같은 엄습을 수용할 수 있는 의지 문제로 귀결된다.
셋째, 북한 비핵화는 과거처럼 아날로그 방식으로 진행될 수 없다. 2만명의 북한 핵과학자
처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제는 모든 핵 관련 데이터와 서버를 제거해야 한다. 이를 북한이 용인할까. 그것을 용인한다 해도 USB나 블록체인으로 제3자에 백업된 데이터까지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과거 국란 속에 우리 선조들이 의궤를 방방곡곡에 숨겨 보존한 지혜의 교훈을 상기할 대목이다.
넷째, 북한 비핵화 경비와 경제 제재 문제다. 이 문제 해결의 열쇠는 미 의회에 있다. 인류 최악의 인권학대 정권의 생존 보장과 그 정권의 군사적 위협 제거가 아닌 감축을 맞교환하는 것으로는 미 의회를 설득할 수 없다. 미 의회의 북한에 대한 강한 불신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 인식은 아직 변화가 없다. 이번 북미회담을 닉슨의 미중 정상회담에 견줄 수 없는 이유다. 미국의 대중 인식 변화는 닉슨 당선 전 대선 유세 기간인 1967년부터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 모두에게서 이미 일어났다. 그 결과 미국의 중국 제재는 1969년부터 해제됐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핵탄두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주 적국인 미국에 넘길 리 만무하다. 한미동맹보다 재래식 무기가 낙후한 북한이 지금까지 버티게 한 건 핵과 미사일이다. 이를 넘기는 것은 북한 핵과 미사일 수준을 공표하는 것으로 자칫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진정 북한의 ‘새 시장’이 열리길 원한다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미 양국에 일방적으로 신뢰를 강요하기보다 서로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실질적 계기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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