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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어디까지… 머리 맞댄 학생ㆍ교사ㆍ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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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어디까지… 머리 맞댄 학생ㆍ교사ㆍ학부모

입력
2018.03.21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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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여중 ‘생활협약 토론회’ 가보니

‘자율적 규율’ 지난해 처음 도입

복장ㆍ두발ㆍ태도 등 규칙 정했지만

합의 내용 모호해 곳곳 갈등 소지

의무화 복귀 대신 재실험 결정

“주체인 학생 목소리 고루 담기길”

16일 서울 성북구민회관에서 동구여중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2018 생활협약 대토론회'를 열고 있다.
16일 서울 성북구민회관에서 동구여중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2018 생활협약 대토론회'를 열고 있다.

“눈두덩이에 새빨간 섀도우를 바르는 정도가 아니면 화장은 허용돼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성북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동구여자중학교의 ‘3주체 생활협약 대토론회’ 현장. 이 학교 1~3학년 전교생 455명과 교사, 학부모들이 2018학년도 생활협약 마련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생활협약이란 ‘머리 염색하면 벌점 3점’ ‘수업 중 휴대폰 사용하면 압수’ 등 과거 학생 규제와 처벌을 중심으로 한 학교 규정에서 벗어나, 모든 주체가 양심에 따라 지킬 수 있도록 설계한 자율적 규율이다. 동구여중은 지난해부터 학생 복장ㆍ두발부터 교사ㆍ학부모의 학생, 자녀를 향한 태도 등까지 협약에 포함시켜 준수토록 하고 있다.

지난해 협약은 첫 도입이니만큼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자율복은 상의만 착용하자’는 데 합의를 이뤄 조항을 명문화 했지만, 교사들은 ‘자율복’의 범위를 교복과 체육복으로, 학생들은 완전한 사복으로 받아들이는 등 해석 차가 컸던 것이 대표적이다. 벌점제 등 처벌조항을 완전히 없애다 보니 학생 지도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고, 복장이나 화장, 액세서리 등에서 자율성을 크게 주니 ‘동구여중 아이들은 학생답지 못하다’는 이웃주민들의 평판을 들어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교사와 학부모는 협약을 강제 규정으로 되돌리는 대신 다시 한 번 아이들과의 토론을 통해 의견 차를 좁혀가는 방법을 택했다. 이 학교 김장문 교사는 “교사와 학생들은 누구를 통제하고 통제 당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협약은 지속돼야 한다”며 “특히 학생들이 자율성을 보장받는 대신 협약 범위를 지키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교사와 학부모도 약속할 부분을 되새기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3주체 간 토론에서 단연 뜨거운 주제는 ‘화장’이었다. 한 학부모가 ‘과도한 펄이나 진한색상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자’는 화장 관련 협약이 두루뭉술하다며 “눈 화장의 허용 범위, 피부 표현의 허용 범위 등을 세분화해 규정하자”는 의견을 내면서다. 실제 학교 측이 토론회에 앞서 학부모 60명을 대상으로 ‘2017학년도 생활협약 중 개정돼야 할 부분’을 설문조사한 결과 화장ㆍ액세서리(33.3%)가 가장 많이 꼽혔다. 하지만 3학년 나서영양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요즘 학생들은 아이라인을 그리는 추세로 가고 있구나’하는 식으로 판단해 주시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교사 46명 설문조사에서 가장 개선돼야 할 항목으로 꼽힌 휴대폰 사용(26.1%) 문제를 두고도 여러 의견이 나왔다. 사회자가 “담임선생님이 등교하자마자 일괄적으로 휴대폰을 걷어서 하교할 때 나눠주는 것은 어떻느냐”고 묻자, 3학년 김성민양은 “전체적으로 거둬가면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휴대폰 사용 시간을 뺏기게 되는 셈이다. 교탁 앞에 바구니를 하나 놓고 수업시간에만 자율적으로 제출하자는 의견이 많다”고 반대 목소리를 냈다. 관중석 목소리도 “수업시간에 꺼놓는 정도의 더욱 자율적인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도 통제가 안 되는 친구들이 있어 어느 정도 강제는 필요하다” 등으로 갈렸다.

이날 세 주체는 우선 ‘여름에는 상의로 자유복을 허용하되 원색만 가능하고 프린팅에 엽기적 사진이 없어야 한다’ 등 복장 부분 협약 시안을 발표하고, 토론에서 의견 차가 확인된 화장과 휴대폰 같은 조항에 대해선 학급별로 재차 토의를 거친 후 오는 30일 학생임원수련회에서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권용규 교감은 “다음달 16일쯤에는 공식 협약식을 가질 계획”이라며 “각 주체의 목소리가 고루 담긴 동구여중의 협약이 모범사례가 돼 다른 학교로도 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런 자율 협약 체계를 도입한 학교는 전국에 손에 꼽을 정도다.

글ㆍ사진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이우진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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