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엔 대사ㆍ가사 등 자막
시각장애인엔 몸짓ㆍ표정 등 해설
3월 첫 공연 무대 찾은 장애인들
“생애 처음 뮤지컬… 감사” 호평
내달 두 번째 공연 준비 구슬땀
“예이, 예이, 물렀거라! 여봐라, 길을 비켜라!”
23일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학생회관 4층에 자리한 연습실이 흥겨운 노래로 들썩였다. 한복을 차려입은 여학생, 상투가 틀어진 가발을 쓴 남학생 10여명이 군무를 추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신명 그 자체. 9월 초 예정된 조선시대 종로 피맛골을 배경으로 그곳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다룬 ‘피맛골 연가(戀歌)’라는 제목의 공연 연습에 한창인 뮤지컬 동아리 ‘로뎀스’ 학생들이었다.
이날 연습실에서 만난 기획자 왕경업(24·정보산업공학과 12학번)씨는 “이번 공연은 시청각장애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잠깐,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공연을?’ 의문 가득 담긴 기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왕씨는 웃으며 말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대사, 가사, 효과음, 노래 분위기 등을 자막으로 보여 주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대사, 노래 중간중간에 배우 표정과 몸짓 등을 내레이션으로 들려주는 식이죠.”
왕씨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공연 시작 전 시청각장애인들이 휴대폰에 애플리케이션(앱)을 다운받은 뒤 채팅방에 모이면, 중앙컴퓨터에서 미리 만들어 둔 자막과 내레이션을 송출해 공연의 이해를 돕는단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공연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한 청각장애인이 “대사와 노래를 듣지 못하니 (뮤지컬을 보는 게) 재미가 없더라”고 한 말이 계기. “보건복지부가 얼마 전 장애인(6,824)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1년 동안 뮤지컬을 본 적 있다고 한 사람이 2%밖에 안 되더라고요. 다들 충격을 받고 우리가 한번 해 보자고 했죠.”
그렇게 무대에 올린 게 지난 3월 첫 공연 ‘빨래’였다. 2008년 동아리가 만들어졌지만,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공연은 처음이라 긴장이 배가 됐다. 왕씨는 “‘하던 것이나 잘하라’는 비아냥도 있어 걱정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공연을 본 40여명의 시청각장애인은 “태어나서 처음 공연을 봤다” “행복했다” “감사하다”는 등 후기를 쏟아 냈다.
이번 공연엔 좀 더 세심한 배려를 할 참이다. 장애인들이 ‘또 다른 차별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이다. 왕씨는 “지난번엔 장애인석을 앞줄에 배치했는데, 좌석 선택 자유를 침해한 셈이더라고요. (자막, 내레이션 공유를 위한) 인터넷 비용도 부담이었을 것 같아 아예 공연장 안에 무선인터넷을 깔기로 했어요”라고 했다. 보다 많은 시청각장애인이 공연을 볼 수 있게 150장 정도 무료 티켓도 배포할 예정이다. 대학 동아리라 살림이 풍족하진 않을 터. “팀원들이 후원금을 받으려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용돈을 걷어서 모자란 비용을 충당할까 해요.”
‘내년에도 이런 공연을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왕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실적인 부분(비용)을 생각하면 장담할 수가 없어요. 장애가 문화를 누리는 데 걸림돌이 안 된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언젠가 가능하겠죠?” 이들은 9월 4일 오후 7시 연세대 백주년콘서트홀에서 이번 공연의 첫 막을 올릴 예정이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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