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 이사장 등 첫 이사회 “10억엔 모두 피해자 지원”
시민단체들 재단 반대 시위 속 대학생 10여명 회견장 난입
김 이사장 얼굴에 캡사이신 뿌려

일본 정부 예산을 받아 국내 위안부 피해자 지원 사업을 수행할 화해ㆍ치유재단이 28일 출범했다. 재단은 “피해자 다수가 지원사업 참여 의사를 밝혔다”며 피해자 개개인의 요청을 반영한 ‘맞춤형 지원’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일부 피해자가 재단 설립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가운데, 출범 기자회견이 시위대 난입으로 파행을 겪고 김태현 이사장이 얼굴에 최루액을 맞는 봉변을 당하는 등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했다.
재단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순화동 사무실에서 첫 이사회 회의를 열어 임원을 선임하고 현판식을 가졌다. 이사회는 김 이사장을 포함해 재단설립준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10명으로 구성됐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고문으로 위촉됐다. 재단 사무처에는 여성가족부와 외교부 소속 공무원이 1명씩 파견됐고 추가 인력은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채용할 방침이다.
김 이사장은 이사회 회의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로 찾은 불씨를 키워 피해자 마음을 밝힐 ‘치유의 등불’을 만드는 일이 재단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재단 이름에 ‘화해’를 포함시킨 이유에 대해선 “치유 사업을 통해 할머니들이 가해자를 용서하고 역사와 화해하도록 돕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달 초부터 이달 10일까지 국내 거주 피해자 40명 중 면담을 거절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 거주 3명을 제외한 37명을 직접 방문해 의견을 들었다면서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재단이 설립되면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일본이 재단에 출연할 10억엔(108억원)은 모두 피해자 지원에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재단 관계자는 “재단 운영비, 인건비 등 부대 비용은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손녀의 신장이식 수술 비용을 대고 싶다’ ‘곰팡내 안 나는 전세로 옮기고 싶다’ ‘장학금 지원을 하고 싶다’ 등 피해자들이 면담 과정에서 밝힌 소원을 공개하며 “할머니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용처를 파악해 맞춤형 지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단 출연금의 용도는 한일 양국이 합의해 결정하도록 돼 있어 재단이 뜻대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일본은 출연금 일부를 한국 유학생 장학금으로 사용하자고 우리 정부에 제안하는 등 재단과 이견을 보이고 있다.

재단 설립에 반대하는 정대협 등 시민단체들은 재단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 앞에서 시위로 맞불을 놨다. 이들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일본 정부가 배상이 아니라고 밝힌 10억엔을 훈장처럼 내놓으며 회유와 설득에 혈안이 됐다”며 “피해자의 권리를 돈의 문제로 전락시키는 한일 합의와 재단 설립에 반대한다”고 성토했다. 인근 건물에서 열린 재단 기자회견은 회견 직전 대학생 10여명이 단상을 기습 점거하면서 예정보다 30분 늦어졌다.

김 이사장은 회견 직후 건물 밖으로 나오다가 신모(21)씨가 호신용 스프레이 제품으로 분사한 캡사이신을 얼굴에 맞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이송됐다가 퇴원했다. 김 이사장을 수행하던 공무원 3명도 캡사이신을 맞고 눈 등을 다쳐 치료를 받았다. 현장에서 검거된 신씨는 경찰 조사에서 “위안부 피해자에게 적대적인 재단과 한일 합의에 항의하려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신씨의 범행 동기, 공범 여부 등을 수사한 뒤 필요하면 특수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허경주 기자 fair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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